네 탓, 내 탓

 

                                                                                   정인호

원숭이가 눈을 가리고 귀를 틀어막고 입을 싸쥐고 있었다. 사람의 흉내를 낸다고 하기에는 별스럽고 원숭이들만이 하는 특별한 행동으로 보기에는 어째 걸맞지 않아 보였다. 구경꾼들은 그런 원숭이가 자못 이상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자연 속에서 활개를 치며 자유롭게 살아야 할 원숭이가 얽매인 지금의 삶이 보기도 듣기도 말하기도 싫어서 지어보이는 표현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원숭이가 딱한 생각이 들었다.

이따금 나도 그 원숭이처럼 귀를 막고 눈을 감았으면 싶은 때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 늘 조용하기만 어찌 바랄 수 있는가. 저마다 생각이 다르고 환경이나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가 있으니 서로 다른 의견을 갖게 되는 일은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짐승 세계를 방불케 하는 일도 부지기수여서 날만 새면 서로 아옹다옹한다.

노사가 대립하고 정당끼리 멱살잡이로 싸우는가 하면,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부부 사이에도 티격태격 할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좀처럼 내 탓보다는 남의 탓하기에 바쁘다. 하기야 속담에도 못난 목수가 연장 나무란다고 하며, 잘되면 내 탓이요, 못되면 조상 탓으로 돌린다. 그러니 원숭이조차도 자신을 괴롭히는 것을 사람 탓으로 돌리고 귀를 틀어막고 입을 싸잡는 것은 아닌가 싶다.

가끔 나는 서울에 갈 일이 있다. 그때마다 KTX를 이용한다. 예전에 비하면 그 엄청난 스피드에 넋을 잃곤 한다. 하지만 아쉬운 건 좌석의 앞뒤 공간이 좁고 의자를 자유롭게 젖힐 수도 없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비싼 요금을 물고서도 이처럼 여행이 즐겁지 못하다면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서울에서 부산까지 지척간이 되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전 같으면 서울에서 아예 하룻밤을 묵었을 것이고, 설사 당일치기로 돌아온다 해도 예닐곱 시간 밤차를 타는 고역을 견뎌야 했다. 서울에서 대충 볼일을 끝내고는 이내 KTX 편으로 부산에 돌아와 아내가 해 주는 따뜻한 저녁밥을 먹으며 “세상 참 좋아졌다”는 감탄사를 연발하곤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며칠 전 서울 다녀온 이튿날 아침 허리가 몹시 아파 전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가 없었다. 퍼뜩 떠오르는 게 열차의 등받이 때문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지구상에서 손가락을 꼽을 정도의 최첨단이라는 KTX가 허리가 아프게 되도록 의자가 불편했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덜커덩거리는 시골 버스를 타서 허리가 아프다면 할 말이 없지만 KTX를 타고 허리가 아프다니 자존심이 상하는 노릇이었다.

명색이 최첨단이라면 승객들이 안락하게 여행을 해야 할 텐데 허리병까지 나게 하다니 그런 모순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찌 되었든 멀쩡하던 허리가 불편한 이유가 그 의자 때문인 것만 같았다.

내 허리를 진찰한 정형외과 의사는 통증의 원인이 KTX 의자 때문만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어느 정도 쓸 만큼 써먹었으니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발병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생각하는 오해는 하지 말고 가벼운 운동을 자주 해서 허리 근육을 강화하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날 서울에서 일감을 얻어보려고 긴장한 자세로 딱딱한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본 것이 시작이 아니었던가 싶다. 늘상 살기 위해 아등바등 하다 보니 몸을 돌보지 않아 무리가 온 것은 분명한데, 하지만 KTX 의자 등받이가 편했다면 등받이에 기대어 내 지친 몸의 긴장을 풀 수 있고 허리의 긴장을 풀어주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에 여전히 원망의 눈길이 KTX에 가는 것이다.

나는 오늘 종일 허리 통증으로 시달리면서 원효대사의 ‘물타훼 막자찬(勿他毁 莫自讚)’이란 말씀을 생각했다. 남의 허물 탓하지 말고 나 잘났다고 뻐기지 말아야 세상이 평화스러워진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은 자기모순9自己矛盾)에 빠져 산다고 했던가 보다. 나도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고 눈을 감아버리고 내 생각만을 내세우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아직도 의사의 말을 믿고 싶지 않으니 남의 탓만 하고 싶은 심사가 흉물스럽기만 하다. 사람의 너울을 쓰고 내가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것만 보아도 내 그름을 모른 채 살고 있음인데, 그래서 요즘 사람들, 나조차도 뻔뻔스러워진 것은 아닌지 모른다.

“남의 탓으로만 돌린 제 생각이 진정 부끄럽습니다” 하며 내 잘못을 인정하는 사회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부끄러운 심사에, 내 귀를 열고 내 눈을 뜨고 공장에서 거리에서 목청을 돋우는 사람들의 소리를 먼저 귀담아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네 탓 내 탓이라는 변명의 구실을 찾기에 앞서서.

 

 

<현대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 태창수도상사 대표.

수필집 『천성대로 사는 재미』, 『꽃을 든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