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고 있는 씨앗

 

                                                                                 김영자

앞 베란다 창문 너머에서 봄을 만들고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머지않아 꽃을 달고 잎을 달고 깊은 그늘을 드리우는 푸른 숲이 되리라.

며칠 전 도봉산에 갔다가 ‘100년 동안 잠자는 씨앗’이라는 안내판을 보았다. 그것은 무엇이랄까, 단순하게 그냥 읽고 지나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다가왔다.

숲 속에 수많은 씨앗들은 싹을 틔우고 그 싹이 자라서 숲을 이루어간다. 그런 씨앗들이 잠들어 있는 산은 생명이 내재된 산이다. ‘100년 동안 잠자는 씨앗’이란 잠자고 있는 씨앗이 언제고 싹을 틔울 기회만 되면 싹을 틔울 수 있는 생명이니, 그것이 내재된 그 땅을 잘 지키라는 의미로 새겨야 할 것 같았다. 문득 ‘내가 발 딛고 있는 숲 어딘가에도 잠자고 있는 씨앗들이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쳐지나가는 바람에서도 꿈틀거리는 씨앗의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씨앗이 100년 동안 혹은 수천 년 동안 유물과 함께 묻혀서 죽은 듯이 잠자고 있다가 유적을 발굴할 때 세상에 나와 싹을 틔우는 것도 있다고 하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을 씨앗들을 생각하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잠자고 있는 씨앗은 숲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요즘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잠자던 씨앗으로 보인다.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수천만 명이 죽었다는 그 세균이 요즘 조류독감의 바이러스와 유사하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잠자는 씨앗의 출현 같기도 하다.

지난 10월 미국 연구진은 알래스카에 묻혀 있던 스페인독감 희생자의 한 여성 폐 조직에서 동면상태의 스페인독감을 발견했다고 한다. 70년 간 얼음 속 시체의 폐 조직에 붙어 잠자고 있던 이 바이러스는 잠자는 씨앗이었음이 틀림이 없다. 이런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슈퍼 독감 바이러스도 잠자는 씨앗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세상 도처에 잠자고 있는 씨앗들이 많은 것 같다.

카뮈는 그의 소설 『페스트』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페스트의 병균은 죽지도 않고 절대로 사라지지도 않으며, 그것은 수십 년 동안 가구나 옷 속에서 방에서 지하실에서 트렁크 속에서 손수건, 종이쪽 속에서 잠든 채 남아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가 언젠가는 잠을 깨고 또다시 우리들을 위협할 것이다.’

이 말은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잠자는 씨앗에 대한 경고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고 보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자기를 지키려는 열망과 끈질김이 기나긴 시간을 숨죽여 기다리면서 때를 기다리는 집요한 생명력이 잠자는 씨앗인지 모른다.

결코 죽지 않은 생명에는 미래가 담겨 있다. 그것이 싹트지 않는 한 미래는 현실이 되지 못하지만. 씨앗이 잠에서 깨어나 싹을 틔워 자라기 시작하면 미래는 현재가 되어 에너지로 활동을 하게 된다. 씨앗에서 싹이 튼 나무는 여린 생명으로 눈을 뜨지만 자라면서 우람한 한 그루 나무가 되듯이. 나는 내 안에도 잠자는 씨앗이 있을 거라고 그날 산을 오르고 내려오면서 계속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들 가슴 속에도 꿈이라는 잠자는 씨앗이 있다. 발아 조건을 찾아서 그것을 잘 싹 틔워 가꾸었을 때 꿈은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씨앗은 십 년 혹은 이십 년, 어쩜 죽기 바로 전에 싹을 틔우기도 하지만 발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나면 영원히 잠자는 씨앗으로 일생을 마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꿈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을 가슴에 간직하는 것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아직도 가끔 나를 들뜨게 하는 것이 있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놓아지지 않는 그것. 그것은 내 가슴에서 이미 발아한 씨앗으로 빛을 향해 발돋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내게 물어보셨다.

“너의 꿈은 뭐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요.”

나는 눈을 반짝이면서 선생님께 대답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나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곤 했다. 즐거웠다가 슬펐다가 아슬아슬했다가 가슴이 조마조마하니 무서워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야기 속에서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는 하느님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 이미 내 안의 씨앗은 싹트기 시작한 것이었을까?

나는 외롭고 슬플 때 또는 기쁘고 행복할 때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본다. 잎을 피우는 나무, 꽃을 활짝 매단 나무, 열매가 풍성한 나무, 나목이 되어 겨울 벌판에서 아픔을 참아내는 나무. 그런 나무가 되어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가슴에 간직할 수 없는 별은 언제나 내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그 별은 언제나 나를 깊은 잠에서 흔들어 깨운다. 바람이 지나가면서 물이 오르기 시작한 나뭇가지들을 흔든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는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있는 듯하다. 두꺼운 겨울 눈을 뚫고 꽃망울들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겨우 내내 잠자면서 봄을 준비해 온 시간들이, 내 가슴 속에서 나도 모르게 싹튼 씨앗의 함성으로 뛰쳐나오고 있는 듯도 하다.

‘100년 동안 잠자는 씨앗’ 그 보이지 않는 꿈의 잠재력이 이 우주를 이끌어가는 원천이듯이 나는 내 안의 잠자는 씨앗의 힘에 이끌려 오늘을 살아간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꿈만이 잠자고 있는 숲으로 존재한다면 진정 내일의 세상은 아름다우리라. 내 가슴에도 한 그루 꽃피는 나무가 있어 봄을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일상이 행복할 수 있듯이.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2000년)

수필집 『흰빛 유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