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야 소나무(2)

 

                                                                                   許世旭

잘생긴(그러니까 꾸부정한) 소나무 한 그루 만나면 그 등걸을 베개삼아 허리를 슬그머니 펴고 싶다. 가을이 매캐하게 익을 무렵 노오랗게 떨어진 솔잎들을 주섬주섬 긁어모아 그 황톳빛 방석에 푹신푹신 눕고 싶다.

누워서 하늘을 보고 싶다. 지금 막 산등에서 들쭉날쭉 나뭇짐을 지고 길다란 작대기 앞세운 채 지겟다리 끌리면서 하산하는 초부樵夫의 숨소리가 들릴 법하다. 이리저리 가로세로 누비면서 끊어질듯 끊이지 않고 하늘로 기어올라가는 소나무의 가지를 보면 다람쥐가 아니래도 오르고 싶다. 아니면 거기 줄기와 가지가 헤어지는 삼거리쯤에 궁둥이를 붙이고 길다란 피리를 곤두세우고 있는 목동 같은 소년이고 싶다.

선인들은 소나무를 용의 몸통으로 보았다. 걸핏하면 용의 수염, 용의 맥동, 용의 비상으로 미화했지만 그건 당치도 않은 황공한 대접이다. 몸통은 굵어도 어느 한 살결인들 미끈한 데가 없고, 수염은 바늘인 양 꼿꼿해도 에헴 쓰다듬도록 치렁치렁한 데가 없다.

옛날, 산적 난리에 밤이면 밤대로, 새벽이면 새벽대로 외양간의 소를 몰고 어디론지 피난길에 오를 때, 우리 마을 안산에다 망루를 쌓고 거기다 야경꾼을 불러모아 우리 마을을 지키자던 그 나룻수염의 아저씨가 생각난다. 소나무는 용이라기보다 그 아저씨의 용모, 그 아저씨의 속마음이었다.

그 줄기는 여름날 긴긴 장마에 갈 데 없어 길가에 나와 웅크리고 있는 두꺼비, 그 떡두꺼비 수백 마리의 등짝을 말려서 덕지덕지 판을 찍어놓은 것 같았다. 어쩌면 코는 비뚤어진 채로 눈꼽이 달린 머슴애, 하지만 울퉁불퉁 알통이 배여 있는 작은 머슴의 사지라면 좋겠다.

까칠까칠 영양 결핍에 걸린 듯한 두터운 껍질을 벗기면 하얀 근육에 지르르 흐르는 단물이 있다. 다시 위아래를 더듬으면 옹이가 불근거린다. 옹이에는 송진이 엉기고, 송진이 엉긴 가지를 잘라서 가늘게 장작개비를 만들면 관솔이 된다. 그러니까 소나무 밑둥에는 불길이 묻혀 있다.

관솔에 성냥을 댕기면 피시식 불똥이 튕기면서 그 불빛이 깜깜한 어둠을 밝히고 깊디깊은 골짜기를 비출 수 있게 활활 저 불길을 살려야 한다. 저 불길 소리에는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의 말씀과 마을을 지키자고 외마디 소릴하는 아저씨의 외침이 범벅되어 있다.

 

절을 가는 일은 감동을 한아름 안는 일이다. 절에는 소나무가 있다. 소나무가 없는 절이면 어쩐지 영기가 모자란 느낌이다. 서울 북한산의 도선사 입구 그 벼랑길, 고창의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옆, 운주암 와불의 그 머리맡에서 만난 소나무가 모두 그랬었다.

그때마다 멀쑥한 키다리는 싫었다. 숱이 많은 단발머리인 양 축 늘어진 솔잎 또한 별로였다. 반질반질 기름기가 묻어 있는 얄팍한 껍질 또한 곱질 않았다. 굽을수록 운치가 났고, 얽을수록 예스러웠고, 짧고 꼿꼿할수록 소나무의 심덕이 보였다.

꾸부정 얽은 얼굴의 소나무, 그 까칠한 껍데기를 만지면 천년 전 진묵 서첩의 먹내음이 난다. 솔잎, 그 파아란 바늘 끝에는 하얀 눈발의 소리가 남아 있다. 소나무 등걸, 그 썩은 잎 검은 흙더미에 묻힌 관솔은 긴긴 겨울밤 선비의 가난한 방을 밝힐 촉광이다. 나는 그래서 때로 소나무 아래 정좌했다. 굳이 합장하거나 머리를 조아리지 않았다. 다만 눈을 감고 솔 여울을 들었다. 종일토록 솔바람을 맞으면 행여 내 주머니에 솔내음이 고일지 몰라서였다.

달밤이면 어디론지 나서고 싶다. 쌀쌀한 밤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작은 오솔길로 통하는 사립을 살며시 열면 좋겠다. 어디 나랑 함께 거닐 도인이 없을까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널따란 반석 위에서 꾸부정한 소나무를 만나면 금상첨화다.

파란 달빛에 푸른 솔, 싸늘하리 만큼 맑지만 너울너울 두루마기 자락처럼 파란 안개가 일렁이는 느낌이다. 신비로운 순간이다. 무엇을 은밀하게 만날 것만 같아 조용히 눈을 떠보았다. 어쩌다가 푸른 가지 사이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만날 때면 파란 쟁반에 하얀 구슬의 원반이 걸려 있다. 그럴 때마다 초승달이 못내 그리웠다. 그 쇠잔한 달빛에 솔잎 하나하나가 부스스 일어나 점점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 솔잎에 맺힐 영롱한 이슬을 기다리리라. 그것을 따다가 차를 달이기 전 우선 입을 벌리고 내 깡마른 입천장을 적시리라.

내 마음 속에 오직 한 그루 소나무, 달빛 희미한 안개 속에 여느 잡목은 한 그루도 보이지 않는다. 소쩍새 한 마리 울었으면 좋으련만.

어느 날, 개벽만큼 큰 물이 저서 온 천지가 뒤죽박죽인 날, 저 산이 와르르 무너지고 저 나무들이 혼비백산할 때, 내가 사랑하는 소나무는 저 앙칼진 뿌리로 버티다가 마지막 찰나 차라리 머리를 거꾸로 박고 꼬꾸라질지언정 여느 잡목과 함께 뿌리를 뽑힌 채 누런 탁류를 타고 둥둥 떠내려가지 않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