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고임순

 

 

날이 갈수록 급물살타고 유행처럼 번져가는 휴대전화. 이 앙증스런 요술쟁이가 두께마저 1센티미터 미만으로 줄어들어 얇고 가벼워서 더 휴대하기에 편리하게 되었다.

휴대전화로 인한 새 풍속도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경례하듯 전화기를 귀에 대고 통화하는 모습들이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벨이 울리면 모두들 막혔던 귀가 뚫리기라도 하듯 시선이 집중되는 광경들이다. 그럴 때 나도 허둥지둥 핸드백 속을 뒤지며 내 것이 울린 것 같은 환청을 겪는다. 누구의 벨이 울리든 간에 당장 확인하지 않으면 무엇인가 놓칠 것 같은 ‘잠재적 상실효과’를 뿌리치지 못한다.

요즈음 나는 휴대전화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당뇨합병증인 신장질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남편과의 연결고리인 휴대전화. 상한 마음을 달래는 따뜻한 목소리가 전선을 타고 서로의 가슴으로 녹아흐른다.

강남에 있는 대형 종합병원은 마치 공항처럼 붐볐다. 병자들이 모여들었다 흩어져가는 인생 터미널. 이곳에서 휴대전화는 필수품이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 투석실 등 복도에서 대기하는 보호자들이 사활이 걸린 긴박한 상황을 전화기로 호소하기에 바쁘다. 환자들도 비상시에 대비하듯 전화기를 목에 걸거나 손에 쥐고 진찰실을 드나들고 있다.

16층 6호, 병실 문을 들어서니 병세가 악화된 남편은 산소호흡 줄을 코에 대고 링거 주사를 맞으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손에 전화기를 쥔 채로. 순간 전신에 전율이 일었다. 내 몸속 세포들이 알알이 깨어난 듯 요동을 치는 게 아닌가. 저 작은 기계가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들자 덥석 남편의 손을 잡고 기도하며 참회하는 시간에 빠져들었다.

살아갈수록 선명해지는 것은 늙고 병든 육체 속에서도 번득이는 맑은 영혼이다. 사탄처럼 번지는 병마와 싸우면서도 남편의 얼굴은 그늘이 없다. 누군들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비밀을 짐작이나 하랴. 묵묵히 모든 것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오직 ‘자기 자신’을 온통 다 받쳐서 사랑을 되돌려주고 싶을 뿐이다. 이것만이 내가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벨이 울리자 번쩍 눈을 뜬 남편은 황급히 전화기를 열고 귀에 댔다. 어제 다녀간 큰아들의 목소리였다. 조금 후에 사태찜을 해 오겠다는 딸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부산에서 막내아들의 문병전화도 걸려왔다. 금세 웃음이 번져 환한 남편의 얼굴은 그 옛날 아이들을 번갈아 안아주며 볼을 비비던 그런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점점 병세가 기울어져 호흡곤란과 고열에 시달리게 된 남편은 CT 촬영 결과 폐장에 이상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곧바로 폐 안에 고인 물을 빼내는 시술 등으로 지친 남편은 식욕마저 잃고 기진맥진이 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의식을 잃지 않고 강한 의지력으로 병을 극복해 나갔다. 이 모두가 현대 첨단의술의 힘이 절대적이지만 한편 가족 사랑이 담긴 휴대전화도 한몫 단단히 한 것이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나는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밖으로 나가 녹지를 산책했다. 성큼 다가선 가을. 시원한 바람 속을 한발 한발 땅에 각인하듯 걸으며 지난 여름날을 더듬어본다.

남편을 간병하면서 매순간 체험한 기적. 우리의 만남 자체가 기적이지만 남편의 발병과 치유, 그리고 힘든 간병생활을 감당해내는 내 저력도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남편 한사람의 존재감이 이토록 충만할까. 그러나 무엇보다 못 견딘 것은 눈앞에 죽음의 그림자가 수시로 어리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열병을 앓듯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과 함께 무엇으로도 메우지 못했던 가슴의 공동. 벌컥벌컥 연거푸 냉수를 들이키고서도 돌아서면 이내 목이 마르던 나날들. 허한 가슴패기로 거침없이 들어온 거센 비바람이 아우성치며 한바탕 속을 뒤집어놓고 사라지곤 했다.

가시덤불 속 칠흑의 터널. 살이 찢기고 피 흘리며 비명을 지르더라도 입 벌려 뱉어내지 않았던 가슴앓이 앙금. 뱉으면 그대로 모래알뿐이지만 꼭 품으면 진주알이 되는 것을. 한 알의 진주는 그렇게 오랜 고통 속에 잉태되는 것이 아니던가.

저만치서 지팡이를 짚고 내 쪽으로 걸어오는 등 굽은 백발 노인이 눈부시다. 우리 아파트에 사는 최고령 93세 윤 할머니의 운동 시간이다. 조심조심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목에 건 휴대전화가 시계추처럼 흔들거린다. 햇볕에 반짝이는 백발과 은빛 전화기가 찡하게 가슴을 친다.

큰아들마저 외국으로 가면서 목에 걸어주고 갔다는 저 기계 속에는 젊어서 혼자 되어 키운 3남6녀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다. 지금 셋째딸 집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인 휴대전화. 저 한 줌밖에 안 되는 것이 할머니의 텅빈 가슴에 훈장처럼 매달려서 눈물도 한숨도 삼키고 외로움을 달래주는 버팀목이 아닌가. 할머니 가슴 속에서 자라는 진주알은 몇 개일까.

싸하게 몸 안으로 들어오는 가을 햇살. 높푸른 하늘 우러르며 나는 부랴부랴 휴대전화를 열고 1번을 눌렀다.

‘오늘 기분은 어때요? 내일 우족탕과 오이소박이 만들어 갈께요.’

남편에게 가장 부드러운 목소리를 보내면 돌아오는 메아리.

‘고마워. 이제 내 걱정 말고 당신 건강 챙겨요.’

허공에서 마주치는 우리의 목소리가 서로의 가슴 속 진주알 부딪치듯 영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