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을 그리며

 

 

                                                                                          류인혜

아흔 해가 넘도록 이 땅에서 소풍놀이를 하던 시어머님이 기운을 놓으셨다.

모든 가족의 일정이 어머님에게 맞추어 전쟁 아닌 전쟁이 시작되었다. 죽 한 수저라도, 몸에 좋다는 음식이라면 한 모금이라도 더 드시도록 권하는 아들과 이제는 먹는 것 그만두고 어서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머니와 어떤 상황이 닥치든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소매를 걷어붙인 며느리가 날마다 제각기의 마음과 싸움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살다가 때가 되면 당연히 하늘로 돌아갈 것이다. 그 가는 길에 매듭이 없이 순탄하기를 바랐다. 이 땅에서의 할일이 다 끝나면 편안히 가시도록 기도를 해 왔으니 그 기도대로 되기를 도와드린다고 생각했다. 잠자리에서 꿈꾸듯이 하늘로 가게 된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남편은 부모를 먼저 보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어떤 모습인가를 알면서도 ‘내 어머니인데’라는 연민의 자락을 두 손으로 굳게 잡고 있다. 점점 아이가 되어가는 어머님은 아들에게 계속 당신의 의지가 되어 달라고 은연중에 요구를 하시는 모양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지금까지보다 더 튼튼한 줄로 얽혀들고 있다. 피가 섞이지 않는 며느리의 마음이 더 독한 것인지 조금씩 이별 연습을 하라고 조심스럽게 일렀다.

사람이 일상으로 행하는 모든 일이 점점 고통이 되었다. 화장실 출입도 벽을 의지하여 천천히 움직이다가 차츰 양편 모두 부축해야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어머니의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을 위해서 정성을 다하고 싶은 남편은 목욕을 도와줄 때마다 거친 숨을 내쉰다. 결국 손녀처럼 기저귀를 사용하게 되었다. 당신도 지금까지 숫한 경우를 봐 왔으니 예상은 했겠지만 막상 닥치는 상황이 멀쩡한 정신으로는 적응하기 어려운가 보았다. 그런데 며느리는 살판이 났다. 마주 쳐다보기도 어렵던 시어머니의 엉덩이를 마음대로 벗겼다 입혔다 한다. 집안에 배이는 냄새를 없앤다고 장식용 작은 초를 사와서 날마다 축제처럼 불을 밝힌다. 손바닥만한 작은 물 티슈도 사치품인 듯 사들기 어려워서 손에 들었다 놓았다 했는데, 비싼 수입품을 상자째로 사와서 곁에 두고 수시로 푹푹 뽑아 쓴다.

어머님은 가끔 세상과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눈치다. 임종을 원하면서도 목숨의 줄을 놓기 싫어하는 마음이 어서 가고 싶다는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 갈등을 작은아들에 대한 염려로 나타낸다. 쓰고 남은 돈이 몇 푼 남았다며 어머님을 따라온 가방과 옷 보퉁이째 전부 주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애를 쓰고 있는데 무슨 소린가 싶어진다. 왜 나누어주지 않느냐고 심술을 부리자, “돈이 쪼금밖에 없다”라며 맏이인 너희는 내가 끝까지 수호신이 될 것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한다. ‘수호신’이라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의 전쟁은 하늘로 돌아가는 사람과 땅에 남아 있을 사람의 영원한 교류를 위한 준비 작업이란 말인가.

당신이 평생 믿고 의지해온 천국에 대한 희망보다 조상의 은덕을 믿는 뿌리 깊은 인식이 더 크게 지배하고 있다. 죽어서도 자손을 돌볼 수 있다는 믿음은 병들어 약한 몸을 의지할 곳이 있고, 마음을 다해 모시는 자식이 있다는 것에 대한 보답인 듯하다. 그런 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당신의 복이다. 더구나 원하시던 대로 장남의 그늘에서 마지막을 정리하고 있으니 그런 복을 느끼는지 미안하다, 고맙다 하신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사노라고 며느리를 물 보듯 했던 지난날이다. 수십 년 미묘한 갈등으로 대치하던 관계가 마무리되는 예감이 도리어 두렵다.

어느 날, 당신이 계실 하늘나라의 집에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셨다.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신다. 고맙게도 그 후부터는 한결 편안해지셨다. 이제 하늘로 가서 장남을 수호할 천사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으신다.

사람의 사는 일에 답답하고 막연하던 모든 것이 죽음의 일 앞에서는 한갓 어린애 같은 모색이었구나, 깨달음이 온다. 아마 그런 것을 깨달아 앞으로 다가올 마지막을 잘 예비하라고 고된 훈련을 받는 모양이다. 두어 달 치른 전쟁과는 달리 어머님이 주무시듯 조용히 가시던 날, 내 인생의 연극에서 한 막이 내려졌다.

 

 

<한국수필> 봄호 ‘우물’로 추천 완료(84년). 한국수필작가회 회장 역임.

제18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풀처럼 이슬처럼』, 『움직이는 미술관』, 『순환』. 시집 『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