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천 소의 웃음

 

 

                                                                                  배정인

나는 섭천이라는 동네에 삽니다. 우리 집 앞 모퉁이 십자로 저편에 소문 난 가게가 있습니다. 온통 돌가루로만 조형된 마을입니다만 그 집만은 예외입니다.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여남은 그루가 뒤란 모퉁이를 둘러싸고 있어서, 먼데서 보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복 받은 집이지요. 글쎄요, 그런 집에서 지금은 괴기를 팝니다. 9층에 있는 내 방에서 보면 납작 엎드린 듯한 그 집채의 넓은 지붕은 언제나 조는 듯이 조용한데 처마 위에 높이 치켜든 ‘하씨푸주’는 밤낮 커다란 눈에 불을 켜고 있습니다.

저 푸주의 주인은 칼을 얼마나 자주 갈아야 할까? 포정처럼 백정질에 매우 익숙하여 대학 졸업 때 상으로 받은 칼을 아직도 그대로 휘두르고 있을까? 이런 쓸모없는 공상을 해 봅니다만, 아마도 그는 포정 같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고 칼을 자주 갈지도 않구요. 그가 잘라주는 괴기는 보기 좋게 먹기 좋게 저며지기는커녕 잘 씹히지도 않아 먹을 수 없는 살점이 예사로 들어 있습니다. ‘이것 좀 잘할 수 없을까’ 백정질에는 판 문외한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는 괴기 손질에 전념을 하지 않는 게 분명합니다.

어떨 땐 그가 잡포雜庖라는 점이 목에 걸립니다. 이왕이면, 내가 잘 가는 가게의 주인이 백정이면 백정다운 철학을 가졌으면 하는 거지요. 구매에도 자존심이 있는 거거든요. 그러면서도 그 푸주엘 자주 가는 이유는, 아마도 가깝다는 편의주의에 빠진 탓일 겁니다. 칼 갈기마저 게을리 하는 잡포와 편의주의자가 뭣이 다를 게 있나 자괴하면서도, 걸핏하면 돌아서는 정치배의 천박과는 다르다고 내 스스로 값을 올려 매깁니다. 단골이라는 의리는 지키니까요. 정말이지, 거저 얻을 부스러기라도 있을까 하여 그 가게를 들락거리는 건 아닙니다.

아, 물론 남정네지요. 여자가 어찌 그 짓을 하겠습니까. 칼 들고 소 잡아 살 뼈 자르는 백정이 아닙니까? 그런 그가, 워낙 바빠서 갈아입을 겨를이 없을 때도 있을 겁니다만, 어느 날은 노을빛 옷을 입고 나옵니다. 그 핏물 옷이 사람을 잡아당기는 마술을 부리는지도 모릅니다. 붉은 옷을 걸치고 나오는 날은 괴기를 사려는 사람들로 가게 앞길이 다 막힙니다. 그럴 때 그의 눈엔 흥기가 마르지 않는데, 키는 땅딸막하지만 풍채가 그럴듯하고 둥글 넙적한 얼굴에 혈색은 더욱 번질거립니다. 그게 요즘 푸주 주인들의 공통점이라네요.

괴기를 많이 먹어서 그럴 테지요. 맛있는 부위라 도려 먹고, 마라톤 선수가 날마다 달리기 연습을 하듯이, 그들은 금가루까지 발라서 주야로 먹는다 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파는 제품이 얼마나 영양가가 높은 보약인지, 믿고 사가게 하려면 몸소 먹어 보여야겠지요. 그런 걸 지행일치라 하는 모양입니다.

대통령이나 정상배들, 하다못해 동 의회의원들까지 없는 쥐뿔을 쥐고는 대개 거들먹거리는 게 인간되는 도리라는 요즘이긴 합니다만, 그도 그럽니다. 소 죽여 파는 사람이 좀은 삼가기도 해야 할 터인데 푸주의 주인만 되면 그들은 뽐내기를 좋아합니다. 처음부터야 그러겠습니까. 장사에 이골이 나다 보니까, 돈을 많이 둠쳐놓다(나중에 가져갈 요량으로 물건 따위를 슬쩍 감추어 두다) 보니까, 돈 귀신의 발에 입술이 빌붙게 되고, 혀가 헤실거리려니(아양을 떨며 싱겁게 자꾸 웃다) 얼이 나가서 제 주제를 잊고 자신을 향수 장수쯤으로, 착각의 늪에서 노는 거지요.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면서도 믿게 하는 모르핀을 놓습니다. 어제 오늘에 생긴 말은 아닌 듯, 글쎄 이 ‘하씨푸주’의 주인은 하씨가 아니라 진짜 성이 유가라는 겁니다. 어떤 덴 부가라고도 한다네요. 거기에 그럴싸한 내력이 붙어 다니는데, 좀 흥미로운 구석도 있어서 입질이 끊이지 않습니다.

옛날 옛날에 공짜로 양식을 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하늘 씨가 떼어주는 살은 살아 있어서 그걸 먹으면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의 먼발치에서 심부름이나 하던 유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어깨 너머로 슬쩍슬쩍 훔쳐보고는 상금도 받을 겸 못된 왕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 ‘공짜로 양식을 나누어준다고?’ 눈이 휘둥그레진 왕은 ‘혹세무민의 죄’를 씌워 그분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유가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렇게 되지 않았지요. 떼어내기만 하면 괴기가 되고 마는 겁니다. 그 조화를 누가 알겠습니까. 불행하게도 겉은 번지르르 해서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독수리 날개로 차양을 치고 당초에 탐냈던 대로 괴기를 팔아 돈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퍼져 있는 푸주의 주인들은 거의가 유가의 후손들인데, 칼 솜씨도 포정 같을 리 없거니와 개가 물어가 버린 지 오래된 양심이니 무슨 성의가 있겠냐는 겁니다. 독점업주라는 거지요. 그 말엔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괴기는 푸주에서만 팔지 않습니까? 유가의 특허품으로 등록된 상품인데다 푸주 운영권은 세습되는 것이고 보면 독점은 콧대를 벼랑처럼 세우지 않던가요. 이젠 유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런 줄도 모르고 하씬 체 우쭐거리는 그들의 속빈 꼴이, 원래 빈 껍데기가 더 우쭐거린다고 경멸하는 이도 있습니다.

웃을 일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유가는 왜 돈만 챙길까 하는 문답입니다. 마지막 심판 날 뇌물로 쓰기 위해서 모으는데, 워낙 떠들썩한 재판일 거라서 웬만한 돈뭉치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유가도 계산에 넣고 있다네요. 재판관도 돈을 그렇게 좋아한다지 뭡니까. 그런데 이름 없는 사람들은 제법 그럴듯한 말을 합니다. 마지막 날, 혼령은 생전에 쌓아올린 돈의 높이에 비례해서 천 배쯤 아래로 아래로 더 깊은 나락에 떨어지게 된다고. 옛 성인의 말씀이라면서, 마음속으로 티 없이 웃어주는 것입니다. 민심이 천심이라니, 그 믿음이 맞을 거라 여깁니다.

오늘도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저만치에서는 반짝이는 보석들이 광주리로 모여 서서 종알거리고 있습니다. 우월주의는 어디를 가나 시끄럽지요. 밍크털이 돋은 사람들은 요량에 맞춰서 괴기를 부위별로 골라 사간다고 옆 사람이 눈짓을 해줍니다. 한몸에 붙은 괴깃점에 천 원짜리, 만 원짜리를 따로 붙이는 모양입니다. 그게 아롱사탠지 제비추린지 누가 구분하겠습니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그 칼잡이의 말이 그게 그거라니까 그만 그렇게 여기는 거지요. 입가에 미소만 띠고 있는, 타동사처럼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가난하여 그렇게 갖은 짓은 못합니다. 그저 감사하며 묵묵합니다. 물건이 동나면 어쩌나, 괜히 조바심을 내기도 하면서. 선한 사람들의 세상살이는 갈수록 어지리 하고 참으로 바쁘거든요.

‘여기에 복이 있나니’ 유가가 돈타령에 대고 확성기를 열심히 불면서 미리 포장해 놨던 괴기뭉치를 마구 던져줍니다. 돈 받고 주면서 거저 주듯 거드럭거리는 게, 밸이 주리를 틀어 올리지만 어쩌겠습니까. 굴욕을 의식하지 않는 게 삶이라는데. 그나마도 그게 양식이라니 다른 도리가 없는 게지요. 늘 피 같은 돈을 들고 괴기를 삽니다.

낮잠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키가 훤칠한 사람이 상수리나무 아래로 바람처럼 성큼성큼 걸어옵니다. 옷이 햇빛 같습니다. 얼굴은 볼 수가 없습니다. 어릴 때 동화에서 본, 마치 천사를 거느린 하느님 같습니다. 해무리가 뒤따라갑니다. 긴 은빛 수염이 안개 같은 빛을 뿌리며 조는 듯한 그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가 누구인지 유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음흉하게도 휘장 뒤에 숨어 있다가, 유가가 그분의 정수리에 도끼를 내리칩니다. 아주 사정없이 모질게. 유가는 도끼질을 멈추지 못합니다.

‘괴기를 먹고 사망에 이르지 않은 자가 없거늘.’ 정수리에 도끼를 맞아 쓰러지면서도 불쌍하다는 듯 그 긴 은빛수염이 허공을 보며 웃습니다. 그러자 섭천(경남 진주에 있는 지명. 조선 때 백정이 모여 살았다 함)골이 웃음느리*에 메아리처럼 자물쓰였습니다(귀신에 쓰여 의식을 잃다. 힘이 모자라 함몰당하다). 나는 소스라쳐 깼습니다. 그 하느님 같은 분이 웃음을 그치지 않습니다. 지금도 웃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는 까닭을 알고 싶습니다.

허, 허허허, 허허. 허, 허허허, 허허.

 

*~느리─ ‘늘어난 서리’가 줄어 된 말. 는개가 내린 듯이 매우 두텁게 낀 서리.

 

<월간 에세이>로 등단(92년).

진주수필문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