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에 따라서

 

 

                                                                                     권태숙

단풍의 계절이 왔다. 풍요로운 색의 향연은 야외로 산으로 사람들을 불러댄다. 가을 산의 여왕은 단연 단풍나무일 것이다. 다홍색 잎이 나무를 치장하고 거기에 태양빛이라도 가세한다면, 그 황홀한 눈부심은 한숨을 쉬지 않고 바라볼 수 없다.

그런데 단풍나무를 보면 나는 곧잘 생각했다. 저처럼 아름답게 물들었다가 뭇 나무들처럼 스산한 늦가을 바람을 못 이긴 듯 낙엽지면 어떨까. 도저히 아쉬움이 남는다면, 눈보라 날리는 겨울날 눈송이 벗삼아 하강무下降舞를 추면 어떨까. 봄이 되도록, 이웃들이 새 눈에서 잎을 피우도록, 심지어 산수유 같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도록 그 옆에서 말라 쪼그라진 잎을 가지에 달고 있지는 말았으면 하고. 아마 내가 아는 나무 중에 가장 늦게까지 헌 잎을 달고 있는 것이 단풍이다.

새 생명이 피어나는 곳에 어울리지 않는 고엽의 단풍나무를 보면 노추老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병 깊어 누워서도 곳간 열쇠를 움켜쥔 시어머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지난해 우연히, 그런 얘기를 하다가 은사 한 분이 “마지막까지 생명을 태운다고 볼 수 있지요” 하는 말을 들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관점이었다. 하기는 만지면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부스러질 것처럼 보이는 잎이 그 모진 칼바람을 견디고 겨울을 지나온 것은 신기한 일이다. 묵은 잎이 떨어지자 새 잎이 금세 성큼 자라는 걸 보면 검불 같은 것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식이 들자 내 몸이 스러질 때까지 살림살이를 맡아 하는 어머니같이 숭고해 보이기도 한다.

 

남편은 아침마다 내 스케줄을 묻는다.

“오늘 별일 없지.”

“점심 약속 있는데.”

“누구랑?”

“큰애 친구 엄마들.”

“3시까진 들어오겠네.”

“일산까지 가니까 그보단 늦을 걸.”

서로 하루 일정을 알면 갑자기 찾을 일이나 궁금한 일이 있을 경우 대처하기가 쉽다. 그래도 가끔 지나치다 싶어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더구나 요즈음은 휴대전화가 있어 어지간한 불편은 덜어주지 않는가.

여학교인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간다면 남편은, “거기는 지하철 내려서 꽤 걸어야 하는데, 택시 타.” 목적지 가는 길을 걱정해 주기도 한다. 남녀 병학이던 중학교 동기회에 갈 때 남편은 “비도 오는데 사람도 별로 안 오겠네.” 시큰둥하니 반응한다. 어떨 땐 나를 못 믿나, 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가 그래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의 속내의 실체를 알지 못하지만 쫛`쫛`증이란 병명보다는 며느리 볼 때가 되어가는 지금도 나를 아끼고 있다고 위안삼으며 마음 편하기로 한다. 이제는 어떤 모임도 장기 여행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암묵적 합의를 보았다는 친구들이 부럽지만 말이다.

 

우리가 볼 수 있는 진실은 얼마나 될까. 자연의 오묘한 현상이나 수많은 동물, 식물들, 그리고 천차만별의 사람. 그들을 바라보는 입장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그것이 실상에 가깝든 멀든.

곰을 미련하고 둔한 짐승으로 보는 견해는 외양에 치우친 평가라는 설이 있다. 동물 생태학자들에 따르면 지능은 야생동물 중 최고 수준이란다. 양봉 농가를 습격해서 빈 벌꿀 통에 허탕을 몇 번 치면 뚜껑을 열어보고 꿀이 들어찬 것만 건드릴 정도로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서커스단에서 조련하는 데 호랑이 사자와 달리 채찍이 필요 없단다. ‘곰같이 미련한 놈’이란 표현도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옷 수선공을 두고 어떤 이는 무뚝뚝하고 인사성이 없다고 거래를 끊었다는데, 다른 이는 옷도 잘 고치고, 고객의 요구가 비효과적일 때 조언도 해 주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 단골이 되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두 가지 다 수선공의 참모습일 수도 있다. 무엇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한 사람은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해결하고, 또 한 사람은 더 먼 곳으로 옷을 들고 가게 된다.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에 대해 관점을 달리한다는 것은 재미스럽기도 하고 학문에 있어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때론 의견 충돌을 몰고 오기도 한다. 우리는 참으로 단순하게 바라보고 비판하고 결정내리는 것은 아닐까.

내 주위의 누가 낯설어 보일 때, 이해되지 않을 때, 나는 그의 등 뒤로 돌아가 보리라. 이른 봄 단풍나무의 고엽이 멀리서 보면 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남편의 지나친 참견이 무관심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며.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전 연서, 서울 성산여중 국어 교사. <四季>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