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카데미 제12회 강좌 요지]

 

중국 최근 수필의 동향과 특성

 

 

                                                                                      許世旭

중국에서 수필은 문학의 원심이요 국민 문학이다. 2천5백 년이 넘는 긴긴 수필사임에도 문체상·풍격상 고금의 차별이 없고, 문학의 마당에서 노, 중, 청, 소의 나눔이 있음에도 수필에는 사대동거四代同居가 예사롭다.

지난 세기 10년대에 중국은 문학혁명을 감행, 한때 고전문학을 사문학死文學, 현대문학을 활문학活文學으로 차별시했건만 오직 수필만은 문자의 운용만 다를 뿐 그 체재, 풍격, 소재, 주제상 별다른 차별을 보이지 않았고, 춘추전국 때 선례를 보였던 역사수필과 사유수필, 그리고 서정수필의 전통이 맥맥하게 계승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지난 1949년, 정치의 분열과 함께 잠시 그 전승을 멈추었지만, 지난 70년대 말 개혁개방의 이른바 ‘신시기新時期’와 함께 수필은 다시 번영의 광장에 나서게 되었다.

불행했던 시대 또한 수필의 공백은 아니었다. 1949년부터 1956년까지의 첫 단계가 현실 반영의 르포 연대였다. 1957년부터 1966년까지의 두 번째 단계는 사회주의의 붉은 깃발 아래 모든 문학이 매진하던 정치문학의 연대, 다시 1966년부터 1978년까지 세 번째 단계는 문화혁명의 폭풍 속에 문학의 고사로부터 소생까지 곧 기사회생의 연대였다.

신시기는 다양한 광장이었다. 위로는 九十대의 지셴린(季羨林), 짱중싱(張中行), 황상(黃裳), 스즈춘(施蟄存), 양쟝(楊絳) 등으로부터 최근 각종 수필지와 신문 등이 주최한 청소년 수필 현상모집을 통과한 청소년 수필인, 캠퍼스 수필가까지 노, 중, 청, 소년의 작가들이 <산문>, <산문·해외>, <수필>, <중화산문>, <산문천지>, <산문백가>, <미문美文>, <도시미문都市美文> 등 전국적인 발행망을 지니고 있는 근 10종의 수필지를 핵심으로 각종 신문, 잡지까지 마당을 넓혀 다양하게 발표하고 있다.

수필지를 통한 수필가의 진출은 우리나라에 비해 오히려 부진한 느낌이지만 각종 매체를 통한 광범한 진출과 함께 그 호응도는 우리나라보다 열렬하게 보였다.

그 열도는 수필의 다원화가 몰고 온 것이다. 우선 작가의 다원화다. 앞에서 말한 연령은 물론 작가의 직업, 작가의 지역이 그랬다. 시인, 소설가, 평론가, 기자, 학자들의 참여는 물론 과학기술자, 노동자, 농민, 상인, 관료, 군인, 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했고, 그 지역도 확대되어 전국을 망라했다. 거기다 사상·내용·문체의 다원화가 불을 지폈다. 소아小我의 발견과 소아의 누림으로부터 대아大我의 존중과 대아의 반영, 나아가서 우국우민과 민족 반성·생로병사의 관조로부터 희로애락의 발설을 서슴지 않았고, 소품적이고 고사적인가 하면 논설적이고 풍자적, 묘사적이고 내향적인가 하면 명쾌한 지성을 쏟아냈다.

신시기 25년은 대체로 전후반의 변모를 보였다. 그 전반이 문화혁명의 동토에서 해방을 맞은 인권의 회복과 역사의 반성이라면 그 후반은 광도廣度와 밀도를 확대하고 심화한 <대산문>(혹은 문화산문으로 불림)의 활약이 눈에 뜨인다. 그 전반은 빠진 바진(巴金)의 『수상록』이나 『탐색집』, 『창작 회고록』과 류바이위(劉白羽)의 『방초집芳草集』 등 문혁의 회고물이었다.

소위 <대산문>은 지난 세기 90년대 초, 희곡 이론가인 위치우위(余秋雨)가 『길 따라 문화 따라(文化苦旅)』를 내면서부터다. 중국 전통문화 유적지의 실지 답사와 함께 나그네의 감성을 촉촉이 적신 그 기행수필 속에는 역사와 철학의 무게와 글의 넓이·길이가 아울러 있었다.

위치우위는 수필계의 돌풍이었다. 그의 문화적인 장편수필은 수필의 폭을 활짝 넓혔다. 이제까지 학계에서 소리를 죽이고 있던 많은 학자가 여기에 동참했다.

사학자 왕충뤼(王充閭)는 『상전벽해는 말없이(滄桑無語)』를 내면서 고대 지식인들의 역사적 명운을 조명했고, 문학자 린페이(林非)는 역사 속의 일인 군자나 지사와의 대화를 시도했고, 정치학자 비엔위팡(卞毓方)은 마오쩌뚱, 루쉰(魯迅), 쳔뚜슈(陳獨秀), 마인추(馬寅初) 등 현대사의 정치 인물을 수필적으로 논평했고, 역시 정시학자 량헝(梁衡)은 문학사상 애국적인 화제를 남겼던 신기질辛棄疾, 이청조李淸照, 임칙서林則徐 등의 작가를 현대의 시각으로 재평가했고, 소설가 펑지차이(馮驥才)는 주로 문화유산의 보호를 주장하는 작품을 시리즈로, 역시 소설가 류신우(劉心武)는 베이징의 옛날과 현대를 풍속적으로 대조하는 시리즈로, 문화사가 리챵빠오(李長葆)는 자연 생태의 파괴를 우려하면서 민족의 전통 역사와 대조 해설하고 있다.

이밖에도 짠커밍(詹克明)은 과학수필, 저우타오(周濤)는 국방수필, 저우쇼훵(周曉楓)은 동물수필, 류량청(劉亮程)은 후공업사회의 낙후 농촌을, 대만의 류요뚱(逯耀東)의 음식수필 등 전문 지식을 수필의 제재로 삼는 특례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대수필은 대체로 그동안 소외당했던 인텔리겐치아가 그들의 철학적, 문학적, 문화적, 역사적 지식을 재료삼아 오늘날 우리가 면대하고 있는 우주적, 인생적, 예술적 고뇌를 풀어내려는 진지한 노력이다.

그것은 중국 수필이 수천 년간 전승했던 정情, 사事, 이理의 정립鼎立 전통을 보다 장편화, 광역화, 다원화한 결과며 동시에 수필이 문학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진출하는 노력인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개혁 개방 이래 급속한 성장 속에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속도의 공포와 정서의 고갈 등 그 치유 방법으로, 자유 민주의 구현 방법으로, 문화적인 소질의 제고책으로, 그리고 친정親情, 우정, 애정의 회복 방법으로 시의적절했다.

인텔리의 대산문, 곧 문화수필 외로 지역수필 또한 특성으로 꼽을 수 있겠다. 서북지역의 광막한 사막을 쓰고 저우타오(周濤)와 중서부의 황토고원을 쓰는 쟈핑아오(賈平凹), 티베트를 쓰는 마리화(馬麗華), 내몽골의 초원을 쓰는 펑츄즈(馮秋子), 신강의 대사막을 쓰는 류량청(劉亮程), 만주지방을 쓰는 수수(素素), 중원지방의 역사 유적을 쓰는 쩡앤잉(鄭彦英) 등을 비롯해 한 지역의 인문지리적인 풍속, 경관을 쓰는 작가가 늘고 있다. 그래서 황하 계열, 양자강 계열, 서남 계열, 서북 계열, 티베트 청해 계열 등 광역화의 현상이 늘고 있다.

위의 수필들이 장편성, 사유성, 역사성, 시대성을 공유한 대산문이라면 이와 상반되는 서정 소품 또한 그 전통을 견지하고 있다. 그들은 단편이요 서정적이면서 자아적이면서 미려했었다. 그래서 중국의 최근 수필 또한 대산문의 물결이 출렁였지만 내밀한 작은 수필이 ‘문학의 경기병輕騎兵’적인 역할을 톡톡히 맡아왔었다. 결국 크고 작은 두 가지 갈래가 공존했다.

그러나 중국 또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수필이 수필로서의 체성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곧 수필이 지나치게 설교적이고 소설적이고 시가적이란 지적이었다. 그리고 스스로의 개성을 상실한 채 유행을 따르는 경향을 경고했다. 그 안에는 여행의 자유화와 함께 너나 나나 기행문을 쓰는 현상을 꼬집었는데 특히 가이드 북 같은 글을 매도한 것들이다. 어쩌면 중국의 백화제방 그 맨 앞 대열에 수필이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