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아카데미 제12회 강좌 요지]

 

중국의 최근 ‘문화수필’에 관한 회고와 사유

 

 

                                                                     자오리훙(趙麗宏)

                                                                     김택규(중국어 번역가) 역

‘문화수필(文化散文)’이라는 단어는 최근 십여 년간 중국 문학계에서 한차례 유행하는 단어가 되었다. ‘문화산문’은 십 년 정도 인기를 끌다가 지금은 점차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지금 ‘문화수필’의 흥성과 쇠퇴의 과정을 돌아보고 그 원인을 사유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먼저 ‘문화수필’이 흥기興起한 과정을 간단히 돌아보자. ‘문화수필’이 인기 장르가 된 것은 위치우위(余秋雨)1)의 산문과 관계가 있다. 1992년 초, 상하이 지식출판사에서 위치우위의 시리즈 문화수필집 『문화고려文化苦旅』가 출간되어 국내외에서 광범위한 주목을 받았다. 『문화고려』의 대다수 작품들은 그 전에 이미 상하이의 잡지 <수확>의 특집란을 통해 발표되어 일정한 반향을 얻었지만 책 출간 이후의 반향에는 훨씬 못 미쳤다. 『문화고려』는 겨우 3년 동안 8쇄를 찍으며 무려 26만 권이 팔렸고, 이후 계속 중판되어 아마 발행부수가 백만 권은 족히 될 것이다. 이후 위치우위는 『문명의 파편(文明的碎片)』, 『상하장랭霜河長冷』 등 몇 권의 유사한 수필집을 연이어 집필하여 역시 상당한 발행부수를 기록했다. 아마도 “낙양의 지가紙價를 높였다”는 말로 그의 수필집을 형용할 수 있을 것이다. 위치우위의 수필은 시장이 열렬히 떠받드는 대상이 되었고, 그의 수필에 대한 평론도 곳곳에 넘쳐났다. 이와 동시에 다량의 불법 복제 도서도 출현했다. 위치우위의 수필이 ‘문화수필’로 일컬어지고 일시에 문화수필의 유행이 거론되면서 문화수필 쓰기가 성행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수필을 ‘문화수필’이라고 표방했다. 출판사도 출판 마케팅에서 ‘문화수필’에 중점을 두었다. 그래서 위치우위 이후 많은 작가들이 ‘문화수필’의 집필자로 나서서 책들을 출간했다. 역시 대부분 ‘문화수필’을 표방했지만 고르지 않은 수준의 작품들이 끊임없이 출현했다. 때로는 ‘문화수필’과 무관한 수필가는 수준이 낮거나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한마디로 작가, 출판사, 평론가, 언론, 시장이 공동으로 중국 신시기2) ‘문화수필’의 열풍을 추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신시기의 ‘문화수필’은 어떤 특징들을 갖고 있을까? 위치우위의 다음 술회를 보면 몇 가지 문제들을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언제나 고대문화와 문인들이 깊은 발자국을 남긴 곳임을 알았다. 이는 내 마음속의 산수가 전적으로 자연적인 산수가 아니라 일종의 ‘인문적 산수’임을 설명한다. 이것은 중국의 역사, 문화의 유구한 매력과 나에 대한 그것의 오랜 영향이 빚어낸 결과다. …나는 옛사람이 서 있었던 위치에 서서 선인들과 비슷한 눈으로 거의 변함없는 자연경관을 살피고, 수천 년 전과 다를 바 없는 바람 소리, 새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내가 사는 대도시의, 고적古籍이 소장된 많은 도서관과 옛 문화를 강의하는 대학을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문화의 진실한 발걸음은 산과 물이 첩첩하고 아득한 이 대지 위에 있다. 대지는 묵묵히 말이 없지만 오성悟性을 갖춘 한두 문인이 와서 우뚝 서기만 하면, 오랫동안 간직해온 문화적 의미를 쏴아, 하고 빠르게 쏟아낸다. 활기 없고 연약한 문인도 이 급류에 휘말리기만 하면 천 년을 호흡할 수 있게 된다.”

 

위치우위의 수필이 한 시대를 풍미한 것은 ‘문화’에 대한 이런 명확한 표방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중국 수필에서의 ‘문화수필’설說의 등장은 기본적으로 위치우위에게서 시작되었다. 혹은 중국 대륙에서의 이 개념의 유행이 그의 수필의 등장 이후에 비로소 명확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런 수필은 보통 대대적으로 역사를 언급하며, 옛 문화와 옛사람에 대한 회고와 추억을 통해 역사학의 깊이를 갖춘 호방하고 대범한 수필의 새 경로를 열어 보인다. 이 조류의 선구자는 이전에는 위치우위가 있었고, 이후에는 왕충뤼(王充閭), 비엔위팡(卞毓方), 페이전중(費振鐘), 쑨융(孫?) 등이 있다. 예를 들어 쑨융의 수필집 『사유팔괘思維八卦』는 역사, 철학, 문학, 과학기술을 논한 장편 수필로서 깊고 표일한 사유와 다채로운 문체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문화수필’이 오늘날 중국에서 흥기한 것은 사실 사회적 수요 때문이기도 하다. 1980년대 중후반 중국에서는 일종의 ‘문화열文化熱’이 일어나 문화 관련 담론이 성행하였다. 문화적 과도기의 사회적 텍스트가 동시대 문학 텍스트에 영향을 주어 자연스레 역사, 문화와 관계가 밀접한 수필이 맨 먼저 호응하였다. 그래서 문화적 요소가 수필 속에서 두드러지고 신속하게 지배적 위치를 점하는 한편, 서정과 심미적 요소는 부차적인 위치로 물러났다.

‘문화수필’에 속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3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제재의 문화적 성격이다. 글쓰기의 대상이 그 자체로 문화적 의미가 뚜렷하며 문화적 함량이 풍부한 사회적 현상과 자연경관이다. 예를 들어 『문화고려』와 『전통 밑의 독백(傳統下的獨白)』이 그러하다.

둘째는 문화의식이 강하여 명확하게 문화적 시각과 문화의식으로 대상을 표현, 묘사한다는 점이다. 쑨융의 『사유팔괘』가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셋째는 문장에 깃든 문화적 정취다. 여기에는 스타일, 언어, 묘사 수법, 인문지식의 활용 등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위치우위는 이 점에서 뛰어나다.

오늘날 중국의 ‘문화수필’은 문화 관념을 혁신하였고 그것에서 드러난 문화의식과 문화적 태도는 세속적 문화의식과 명확히 구별된다. 물론 그 창작에 있어 관념의 상이함, 사유의 깊고 얕음, 수준의 높고 낮음, 스타일의 우아함과 저속함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그것은 현대 중국 수필사에서 의심할 여지없이 새로운 분야를 열고 새로운 기풍을 가져와 독자들에게 새로운 인지, 새로운 시야, 새로운 미적 감수성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문화수필’이라는 레테르가 붙은 작품들이 반드시 다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그 중 일부는 수준이 높지 않고 적잖은 작가들이 위치우위를 지나치게 모방하여 ‘위치우위 수필의 복사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듣는다. 또한 일정한 반향을 얻은 작품들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문화수필’의 유행은 어떤 의미에서 상업적 조작의 필요에서 나왔다. 사실 ‘문화수필’이라는 명명이 성공적으로 다수의 수필가, 독자, 연구자들을 유혹하고 이끌어내기는 했다. 그러나 일회적인 단순한 명명의 성공은 항상 많은 이들의 창조력을 빼앗고 감퇴시킨다. ‘문화수필’이라는 말로 80년대 후반 나타난 수필 문체와 이에 따른 수필 창작 현상을 명명하는 것은 사실 학문적 뒷받침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이 명명으로 ‘문화’와 ‘수필’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문화수필’이 안고 있는 문제는 대단히 명확하다.

첫번째 문제는 역사, 문화 지식의 소개와 과시에 만족한 나머지 더 깊은 사유와 현 시대와의 교감이 없다는 점이다. 한 평론가는 이에 대해 “역사, 문화수필의 곤경은 작가들의 역사 지식의 결핍에 있다기보다는 역사의식과 심오한 정신적 식견의 결핍에 있다. ‘역사의식’이 없으면 작가는 자료를 초월해 통찰할 수 없으며, 진정으로 역사, 문화와 정신적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오히려 사료에 좌우되고 기만당하기 십상이다.”

두 번째 문제는 분량이 쓸데없이 많고 내용이 복잡하며 형식이 천편일률적인 동시에 주제가 방대하면서도 명확히 서술되지 않는 데 있다.

세 번째 문제는 진정성의 결여다. 글 속에서 작가의 진실한 성정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책상머리의 지식은 결코 마음속의 학문, 수양, 감정과 일치하지 않는다. 많은 작가들이 자기성찰이 부족하고 역사 서술시 자신의 권력을 끊임없이 팽창시키며 스스로를 전지전능의 형상으로 빚어낸다. 그 결과로 독자들의 반감을 사고 있다.

더욱이 문화‘대大’수필의 심각하고도 보편적인 문제점은 작가들이 자신의 영혼과 정신의 촉각이 닿지 않는 부분에서 거의 예외 없이 사료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작가들은 본래 배경일 뿐인 사료를 인용해 글의 주체로 만든다. 그 결과, 개인적인 상상력의 공간이 협소해지고 자유로운 심성의 서술과 영혼의 심도深度 표출이 크게 제한된다. 역사의 힘은 작가에게 있어 비역사적인 방식으로 도달되며, 그 목적은 역사의 정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 속 비밀과 이어지는 영혼의 통로를 얻기 위해서다. 그런데 현재의 문화수필 작가들은 역사에 진입할 때, 종종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문화적 태도를 표출한다. 그들은 글 속에서 항상 변증하고, 해명하고, 독자들에게 역사는 이런 것이지 저런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들의 한정된 자료가 결코 정통이 될 수 없음을 망각하는 듯하다. 그리하여 다수의 역사, 문화수필이 총체주의와 사회 여론의 낡은 담론 및 제도 속에 빠진다. 그것들은 한결같이 왕조, 권력, 지식인, 지조, 인격, 충성, 반항, 비정, 인생무상 따위에 골몰하여 신선한 발견이 거의 없다.

수필 창작이 일종의 ‘집단 창작’, 즉 개성 결핍과 유형화의 대규모 글쓰기 조류로 전락할 때, 그런 창작 방법은 보통 막바지에 다다른다. 어떤 문체가 새로운 울타리를 쌓으면 그것은 반드시 쇠퇴기로 접어든다. 이른바 ‘문화수필’은 이미 그것이 처음 생겨난 반대편을 향해 점차 나아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수필’의 폐단을 깨달았고, 말 잘하고 과장적인 많은 비평가들이 ‘문화수필’을 부정하면서 그 쇠퇴를 조장하고 가속화시키고 있다.

사실 나는 줄곧 ‘문화수필’이라는 레테르에 찬동하지 않았다. 수필은 수필일 뿐이다. 무엇을 쓰건, 어떻게 쓰건 모두 그 안에 풍부한 문화적 함의가 있다. 역사와 문화를 정면으로 논하더라도 굳이 ‘문화수필’이라는 말을 덧붙여 표방할 필요는 없다. 내 생각에 좋은 수필은 반드시 세 가지 요소, 즉 정情, 지知, 문文을 갖춰야 한다. 정은 바로 진정이며 작가의 진정 어린 태도이다. 그리고 지는 바로 지식이며 사물에 대한 작가의 고유한 인식과 견해이다. 마지막으로 문은 곧 문채文采로서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방식을 뜻한다.

‘문화수필’의 열기가 지나간 후, 중국의 수필 창작은 아마도 비교적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수필가. 시인. 중국 상하이 작가협회 부주석.

<월간 상해문학上海文學>사 사장.

중국정치협상위원(한국의 국회의원에 상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