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생각하며

 

 

                                                                          李應百

세계에서 우리만큼 교육열이 치열한 민족은 없으리라. 조선조 500년간 동성동본혼 금지로 우성화해 기본적으로 두뇌가 명석해진 2세들을 부모가 자기보다 낫게 가르치려는 충정衷情의 소치라고 본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날 때부터 선善하다고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했다. 수다한 생물 가운데 인연이 닿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축복받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조물주造物主가 일반 동물에게는 생명 보존의 본능, 종족 번식의 본능을 주고, 인간에게는 그러한 본능 위에 창의력創意力을 주었다. 원숭이를 잡는 방법 중의 하나가 통에 손이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내고, 그 안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堅果類를 넣어두면, 원숭이가 손을 넣어 음식물을 욕심껏 움켜쥐고 뽑으려 애쓰나 주먹을 뽑을 수 없어 승강이를 할 때 사람에게 잡히는 것이다. 손을 넣어 음식물을 감지感知하면 손을 빼고서 그것을 여러 방법으로 뽑아내는 창의력이 원숭이에게는 없는 것이다.

사람은 창의력으로 온갖 기구器具를 만들어 생활이 편리하게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지혜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의지에서 그림과 문자가 발명됐다. 처음에는 암각화岩刻畵로 생활 양상이나 기구를 그림으로 바위에 새겨넣었다. 말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생각으로 문자를 발명하고, 문자에 의한 기록으로 이른 시기나 먼 곳에서 정보를 얻어 더욱 지혜가 발달한 것을 문명文明이라고 한다.

사람은 여러 동물 중 가장 총명한 존재인데, 문명에 이르는 과정을 배우지 않으면 지혜가 열리지 않게 된다. 선지先智의 문명을 지향해 가장 훌륭한 인격을 갖춘 인물을 성인聖人이라 한다. 교육을 통해 그러한 인격자를 이상理想으로 지향하고 배우게 되었다.

소학 제사小學題辭에서 ‘사람이 8세가 되면 글방에 나아가 쇄소응대진퇴지절灑掃應對進退之節을 익힌다’고 했다. 물 뿌리고 쓸며, 어른이 부르시면 ‘네’ 하고 분명히 대답하고, 오라 하시면 조신하게 앞으로 나아가 분부分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절차를 익힌다. 처음부터 글자를 배우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청소로 주위를 깨끗이 하고, 응대를 분명히 하며 몸가짐과 행동거지行動擧止를 절도 있게 하는 사람다운 인격 조성의 밑바탕부터 닦아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교육은 책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앞세워, 어떻게 하면 부富의 축적을 효과적으로 빨리 할 것인가 하는 이기심利己心을 조장하고, 인격 조성을 위한 지혜智慧를 도외시함으로써 글을 배운 사기꾼이 늘어나게 되었다. 법과대학에서 법조문만 달달 외게 할 것이 아니라 그 밑에 깔려 있는 근본정신을 먼저 익혀 법망法網을 뚫고 사기행각을 하는 이기적 인간이 될 수 없게 해야 한다.

사람이 고고呱呱의 소리를 지르면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가 가장 천진한 상태라고 본다. 교육이란 그 뒤에 덕지덕지 묻은 사회적 때를 벗겨 본래의 천진무구天眞無垢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본다. 성철性徹 스님이 어린이들을 가장 사랑한 것은 그들이야말로 부처님과도 같기 때문이다.

맹자에 보면 유궁有窮이란 나라 임금에 예羿라는 명궁名弓이 있었다. 그는 활쏘기를 가르칠 때 시위를 끝까지 당겨 마음을 멈춘 뒤 화살을 쏘게 하는 원리를 가르쳤다. 그런데 그의 제자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활을 잘 쏘는 사람은 자기를 가르친 스승밖에 없으니, 그를 처치하면 자기가 천하의 명궁이 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으로 스승을 활로 쏘아 시해弑害했다. 그 사실을 맹자는 제자의 잘못이 더할 나위 없이 컸지만, 그 스승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이런 말을 했다.

 

정나라에서 위나라를 치기 위해 자기 나라 명궁을 앞세워 위나라를 쳐들어가게 했다. 그 소식이 위나라에 전해지자 정나라 명궁을 대적할 위나라 명궁이 “나는 오늘 꼭 죽었다” 하면서 오늘 쳐들어오는 정나라 명궁의 이름을 듣자 “그렇다면 나는 살았다”고 했다. 주위에서 의아해 물으니 “정나라의 명궁은 내 제자가 활쏘기를 가르쳤는데, 내 제자는 사람의 됨됨이부터 가르쳤을 것이므로 정나라 명궁이 나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윽고 정나라 명궁이 맞닥뜨려 “선생님은 왜 활을 안 잡으십니까?” 했다. 위나라 명궁은 “심기가 불편해서 활을 잡을 수 없네.” 정나라 명궁은 “저는 선생님의 제자 아무개 스승께 활쏘기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은 저의 할아버지 스승이십니다. 제가 어찌 선생님을 향해 활을 쏘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나라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서 화살 4대를 뽑아 촉이 꽂힌 둘레를 망치로 쳐 활촉을 뽑고, 촉이 없는 화살로 4번 위나라 명궁을 향해 쐈다. 활을 쏠 때 4대를 쏘는 것은 그렇게 할 때 목표물에 틀림없이 적중되기 때문이다. 촉이 없는 화살로 위나라 명궁을 쏨으로써 정나라 명령을 수행하는 한편, 할아버지 스승의 생명도 구한 것이다.

 

맹자는 이 예화를 들면서 예羿가 제자의 인격 조성을 소홀히 함으로써 시해를 당했으니, 잘못이 그에게도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것은 지식과 기술 이전에 그 사람됨부터 기본을 닦아야 할 것이다.

또 이런 실례實例가 있다.

한자漢字의 제자製字 원리에 심취돼 자원옥편字源玉篇 상上을 내기도 한 모 변호사가 어느 때 유지들의 모임에 심히 흥분된 표정으로 들어서면서 “세상에 자식을 미국 유학시키는 부모는 돈 들여 불효자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하고 스스로의 경험을 토로했다.

“내 자식이 공부가 출중해 미국 유학을 시켜 국제변호사 자격을 따게 했지요. 딸애도 공부를 잘해 제 오라비를 따라가 그 애도 국제변호사 자격을 따, 일가와 근동에서는 경사가 났다고 온통 축하 분위기를 이루어, 걔들 뒷바라지하노라 힘들었던 생각이 그 순간 확 풀리면서 스스로 흐뭇한 자세가 취해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그 애들이 귀국을 하겠다 하기에, 글쎄 그곳서 자리잡는 것도 좋을 텐데 하면서도, 그래도 제 어미 아비가 있는 고국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이 갸륵해 그리 하라 했지요.”

그리고는 “마침 서울서 멀지 않은 지방 도시에 좋은 자리가 있어 오누이가 함께 그리로 가 자리를 잘 잡고, 수입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다 되고, 한 달이 다 돼도 오누이가 다같이 편지는 고사하고 전화 한 통화 없는 것입니다.”

한숨을 쉬고 이어 “옛사람이 ‘효도라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좋은 데 구경을 시키는 것보다, 마음을 편코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라’ 했는데, 이 애들은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순간순간 기가 차올라 혈압이 멋대로 올라가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이럴 바에는 어느 부모가 애써 자식 미국 유학시키겠는가 자탄을 하게 됐지요. 물론 미국 유학해 사람을 다 버리는 것은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국위를 선양해 효도를 하는 이도 있긴 하나, 대부분이 저 잘나 출세한 것으로 착각해 콧대가 높아져 부모는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이 비일비재지요.”

듣던 우리는 염려스러워, 아직 철이 덜 들어 그럴 것이니, 철이 들면 차차 나아질 게 아니겠느냐고 좋은 말로 위로했지만, 그 소리가 귓등으로도 안 들리는 듯 흥분 상태를 좀체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시골서 실농군이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맏이는 아직 집안사정이 넉넉지 못해 초등학교만 마치고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게 하였다. 실농군 둘이 열심히 농사를 지으니 집안 형편이 차차 나아져 둘째와 셋째는 서울 유학을 시키고, 집안형편이 좀더 나아지자 막내는 미국 유학을 시켰다. 그런데 그 중의 제일 효자는 공부 뒷바라지를 가장 적게 한 맏이인 예가 비일비재이지 않은가. 공부가 높아질수록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어진다는 것은 지식과 기술로 출세해 경제면에서 여유 있게 사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 때문이니, 그것은 인격 교육이 소홀한 데서 온 결과라고 본다.

부모는 그 변호사의 경우처럼 그리 흥분할 것이 아니라 여유 있는 마음으로 가끔 내려가 보기도 하면 정이 들 수 있어 효도가 싹틀 것인데,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데 지금의 네 행동은 그게 무엇이냐는 상대적 논리로 풀 것이 아니라 넉넉히 끌어안음으로 당쳤던 마음을 풀어주었어야 했을 게 아닌가도 여겼다. 그는 그 후 얼마 안 있다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 그 자녀로 하여금 철이 난 뒤에 바칠 효도의 기회도 앗아간 것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