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또 다른 사람

 

 

                                                                             유경환

눈이 내리고 있어도 물소리가 들린다. 어디쯤 계곡이 있나 보다. 계곡을 꼭 확인하고 싶지는 않다. 물소리만으로 족하다. 모난 성격이, 겨울 산숲에선 눈처럼 부드럽게 풀어지나 보다.

겨우 하룻밤 묵은 곳이지만, 깨끗이 청소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다. 산림청의 휴양림 시설. 열쇠를 돌려주고 다시 길을 떠난다. 걸으면서 찬 물에 사는 산천어를 떠올린다. 왜 산천어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네모진 유리로 내다보던 것과는 달리 겨울 산숲엔 싱싱한 솔잎도 많고 바람도 있고 또 산새도 있다. 산새 소리가 산울림이 될 만큼 적요하다. 이 적요를 물소리는 건드리지 못하나 보다.

겨울 산숲은, 그 하루를 회색으로 시작한다. 움츠린 겨울나무 알몸들의 침묵이 그림처럼 보인다. 눈 속에 움츠린 모습이, 가까이에선 을씨년스럽기도 하다. 무엇인가를 참아내는 그런 묵묵한 표정들이다. 이런 표정을 나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아 눈여겨본다.

겨울나무 기둥 사이로 주욱 뻗은 길이, 흰색을 칠해 놓은 캔버스 모양으로 누워 있다. 곧은 길이어서 산숲의 길 같지 않다. 산림청이 닦아놓은 임도林道인 듯싶다.

‘…이 길로, 그냥 걷고만 싶다.’

이런 생각뿐이지, 그 끝이 어디쯤일 것이라는 것은 생각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삶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 산숲엔 듬성듬성한 숲의 틈새를 채우는 기운이 있다. 동화 속 머리 푼 마녀처럼, 사람을 끌고 다니는 힘일까. 지금 내가 동화나라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철부지라는 생각도 곁들여본다. 거짓말로 코가 길어진다 하여도, 동화나라에 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다.

눈 내리는 길을 좋아한 것은 철부지 노릇을 했던 때부터이다. 철부지 노릇을 털어놓자면 이렇다. 그녀라고만 부를 수 있는 뉘를 좋아했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비어져 나온 수줍음. 말은 차마 할 수 없고 속으로만 좋아한 그 마음은 바이올린 줄처럼 여운을 남겼다. 하지만 눈은 자주 내려주지 않았고, 눈길은 길지 않았다. 그리다가 그만둔, 미완의 풍경화 같은 한때의 등굣길 연정이다.

미숙했던 연정은, 청소년기에 풋풋한 청보리처럼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아직도 그 풋풋함만은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내겐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감정이었으니. 가끔 굽은 길 돌다 마주치는 봉우리처럼, 청소년기의 기억이 되살아나면, 설익은 대로 아름다웠던 때의 기억을 소중히 여긴다. 다시는 그런 청순한 감정을 만날 수도, 만들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하루하루 똑같은 틀 속의 삶에서 정말로 소중히 여길 것은, 보석 같은 기억이 아니라 내일에 대한 바람이다. 내일엔 조금이라도 나은 ‘나’로 변할 수 있을까 하는 바람. 하지만 과연 청소년기만큼 순수할 수 있을까.

크지 않은 나무십자가가 내걸린 뾰족당을 만난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냥 문을 밀고 들어가서, 참으로 오래 간만에 한쪽 무릎을 꿇고 내 모습을 본다. 깊이 가라앉아 있는 분위기는, 그동안 내가 살아온 시간을 빠짐없이 모아 채곡여 놓은 듯 조용하고 숙엄하다.

사실, 때때로 만나는 ‘내 안의 다른 사람’인 또 다른 내가, 언제나 문제인 것이다. 내 안의 다른 나는, 남의 떡을 크게 보여주거나 헛된 것을 부풀여 보여주길 좋아한다.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를 어떻게 떼어놓을지, 오늘도 또 생각하기 시작한다. 겨울 산숲길을 눈 속에 걷는 것도, 바로 이런 ‘연구’ 때문이다. 묘안을 찾지 못하는, 성과 없는 연구이지만 그래도 한 가닥 실마리를 발견할 것 같은 기대감 속에 걷는다. 끝을 짐작할 수 없는 길.

이 길이 어쩌면 내 안으로 들어가는 비밀 입구를 알려줄지도 모른다. 어느 갈림목에서 넌지시 화살표로 일러줄 것도 같은데, 내면으로 이르는 통로이라 그리 쉽게 나타날 것이랴? 혼자 걷기일 경우엔 종종 비밀 통로가 열린다고 하건만…….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넓고 새로운 세계는 언제나 내 안에 숨어 있다. 일찍이 들었던 옛말 그대로, 새로운 세계는 두 눈이 아닌 마음이 여는 세계다. 그것을 눈앞에서만 찾으려 하니, 방황하듯 쏘다니게 될 수밖에.

따지고 보면, 시간이라든가 규범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사람 두뇌가 생각하여 설정한 개념일 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따라오라 마녀처럼 손짓하는 길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평지 그 위에만 있지 않다. 가시덤불로 숨거나 돌밭 또는 깊은 바위 틈새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이런 길을 따라가면서, 생각과 몸이 하나라는 것을,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몹시 힘들어 할 때마다 문득문득 되뇌게 된다. 사유와 육신이 분리될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난 인생이기에, 그것의 조화를 생각해야 하는 부담이 늘 따른다. 그리고 이런 부담은, 뒤로 나자빠질 만큼 무거운 지겟짐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겨울 산숲 눈길을 거닐 땐 이런 지겟짐의 무게를 벗어놓고, 슬펐어도 아름다운 기억들을 되살려가며 소년으로 걷기를 즐긴다. 걷다가 눈사람을 만들어 세우기도 한다. 누가 보면 틀림없이 웃겠지만, 정성들여 눈을 굴리고 얹어서 만든다.

‘안녕… 눈사람아!’

이러면서 남기는 손짓은,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남기는 손인사이기도 하고, 또 철부지였던 때 좋아한 그녀 환상에 보내는 손인사이기도 하다. 끝내는 나의 순수에 대한 손인사가 되고 말겠지만…….

겨울 산숲에 내리는 눈은 사람을 한때나마 대관령 목장의 양처럼 하얀 털사람으로 만든다. 발갛게 언 내 코가 얼마나 길어졌는지, 장갑을 벗고 만져본다. 물소리가 들리니 동화나라 아닌 것이 분명하다. 물 흐린 곳에선 산천어를 볼 수 없듯, 이미 거짓에 찬 현실이니 피노키오의 코인들 더 커지겠는가?

‘잘 있거라… 모든 아름다운 것들아…….’

회색 산울림이 곧장 내게 되돌아온다. 내가 나에게 하는 인사 같다. 겨울 산숲 적요를 깨는 울림도 아름답다. 바로 이때쯤 산새라도 울어주었으면 싶건만, 기다림일 뿐. 그냥 세상의 한 끝처럼 다시 적요다.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사람들에게, 순수의 인사를 손짓으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