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가에 앉아서

 

 

                                                                              김애자

집 옆으로 난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작은 연못이 나온다. 징개미재에서 내려오는 골바람 길에 자리한 이 연못을 두고 마을 사람들은 둠벙이라고 부른다. 연못이라고 하기엔 품새가 너무 작은 탓으로 그렇게 부르지만 실은 둠벙이라고 하기에도 크기가 애매한 편에 속한다. 게다가 습지에서 흔하게 자생하는 부들이며 창포 몇 줄기라도 품었으면 좋으련만 고작 개구리밥만 성글게 떠 있다. 다행히 고랭이와 여귀와 나이테의 동심원이 10년쯤은 되었을 느티나무 한 그루가 둘레를 감싸고 있어 궁색하게나마 연못으로서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가뭄이 들면 양수기로 물을 퍼 올려 윗배미 다랑논 한 마지기쯤은 너끈하게 모를 낼 수 있다. 하나 산골의 여울은 근원이 깊어 연못의 물까지 바닥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늘 수초와 물고기들과 수서곤충들이 나름대로 알을 낳고 새끼를 기르는 산실로서 맞춤하다. 더러 어린 개구리들이 길 위에서 사람이나 뱀과 맞닥뜨리기라도 할 양이면 재빠르게 뛰어들어 수초 사이로 숨는다. 녀석들에게 있어선 이만한 은신처를 생활권 안에 두고 산다는 것도 결코 쉽진 않을 것이다.

가끔 못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물속을 들여다본다. 물속에 비친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으면 물속에 비친 자기 얼굴이 미워져 저만치 걸어가다가 그 얼굴이 가엾어 다시 돌아와 우물 속을 들여다보던 시인의 애증과 연민을 짚어보게 된다. 윤동주 선생이 왜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가를 몇 번이나 잼처 찾아갔는지, 그리곤 끝내 우물 속에 추억처럼 서 있는 자화상에서 느끼는 자조와 비애를 이해하게 된다. 누구든 물가에서 환영처럼 물속에 어린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르키소스가 자신의 환영에 도취되었던 것도 자기애가 지닌 본성 탓일 터이다. 나 역시 인간에게 주어진 본 나이 예순을 접어놓고도 생의 바깥 나이를 덤으로 먹고 있다. 덤으로 먹는 나이란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산다고 해도 어딘가 겉도는 구석이 있게 마련이다. 물속에 어린 이 어쭙잖은 자화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내 얼굴이 밉고 가엾어진다. 살아온 날의 절반을 병과 투병으로 힘겨웠고, 뒤늦게 발등에 떨어진 아내와 어미의 몫을 감당하느라 허둥거렸다. 지금은 산골로 들어와 봄부터 가을까지 야생화 가꾸기와 한참가리 밭이랑에서 씨 뿌리고 김매는 일로 소일한다. 그럼에도 이성을 능가할 호기심 한 번도 지녀보지 못한 채 줄긋기로 살아온 생이 때로는 어이없어 타박타박 길을 따라와 물속에서 시나브로 흐르는 구름을 보면서 자기연민에 빠져 서러워하는 것이다. 아직도 산 밖의 세상일이 궁금하기도 하고, 내 안의 경계를 허물지 못해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것들이 많은 것이다.

어릴 적 우물가에서 몹시 울었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내가 몇 살 때였는지도 모를 적에 큰오라버니는 나를 안고 우물가로 가선 내 몸을 반쯤 물속으로 기울이며 저 안에 들어 있는 네 얼굴을 보라고 했다. 좁은 우물 속은 어두웠고, 오라버니가 하는 말은 커다랗게 웅얼거렸다. 나는 놀라워 내 얼굴은커녕 오라버니 목을 으서져라 껴안으며 자지러졌고, 우물은 아이의 자지러지는 소리를 큰 울림으로 되받아쳤었다.

그 후로 우물은 좁고 어두운 곳으로, 그리고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런 우물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6·25 전란이 일어나고서였다. 임시 피난처로 머물렀던 그 집 뒤란에는 우물이 있었다. 햇볕이 자글거리는 한낮의 우물가는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문득 큰오라버니의 말소리가 응얼거리던 이유를 알고 싶어져 우물가로 다가갔으나 돌로 쌓은 축대는 계집애의 턱밑까지 닿았다. 까치발을 들어도 어림없었다. 궁리 끝에 우물가에 놓여 있는 숫돌과 그것의 받침대를 끌어다 놓고 올라서서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물은 깊고 맑았으며, 파란 하늘이 들어 있었고, 파란 하늘 속에는 단말머리 계집애의 얼굴도 들어 있었다. 우물 속에서 본 최초의 내 얼굴이었다.

두레박 줄을 내렸다. 가만가만 내렸지만 두레박이 수면에 닿자 크게 공명하며 하늘도 내 얼굴도 산산조각이 났다. 놀라워 줄을 놓고 방으로 도망쳤지만 그 짜릿했던 감정의 떨림은 아주 오랫동안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했다.

어느덧 가을도 저물어가고 있다. 낙엽이 제물에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 눕고, 여울도 목이 잦건만 연못 속에 잠긴 거뭇한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뜬 달은 한없이 요요하다. 나는 무슨 인연으로 이 두메로 들어와 작고 볼품없는 못가에서 이 사소한 것들을 보면 가슴이 설레고 핏줄이 일어서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것들이 전해주는 그윽함과 애잔함이 성인의 말씀보다 진정하게 가슴에 와 닿는지 그것을 또한 알 수 없어 물그림자만 내려다보곤 하는 것이다.

오늘 밤에도 연못은 또 내 뒤를 따라와 머리맡에 앉아서 새벽까지 다정한 눈으로 잠든 나를 지켜보다가 돌아갈 것이다.

 

 

<수필문학>으로 등단(91년).

한국문협, 월간 수필문학 이사. 충북여성문학, 수필문학진흥회 이사.

저서 『달의 序曲』, 『숨은 촉』, 『미완의 집』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