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산장

 

 

                                                                               박장원

지는 매화, 툭툭 터지는 벚꽃이 재촉하는 봄.

쌍계사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구례 정거장. 귀가하는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산하고, 상급학교에 갓 입학한 앳된 얼굴들이 띄엄띄엄 섞여 있어 풋풋하다.

섬진강 따라 노오란 꽃망울 맺었던 산수유가 군락을 이루고, 구름이 드리운 강기슭에는 은어들이 떼 지어 몰려다닌다. 멀리 강마을은 고즈넉하고 서산의 해는 설핏하다.

화개장터 지나 촘촘한 벚나무 길을 벗어나니 절 입구가 나온다. 다리 건너 즐비한 밥집, 다닥다닥 노점상들. 최치원이 지팡이로 썼다는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이라는 큰 바위 글씨도 그럴듯하지만, 고목을 거꾸로 세워 장승을 만들었는데 호방한 표정도 표정이려니와 뿌리를 머리칼로 빗댄 것이 재미있다. 거꾸로 선 나무에 어떤 깊은 가르침이 있는 것인지.

저녁 예불을 마친 산사, 종각에는 수척한 스님이 가사자락을 걷어붙이고 겅중겅중 뛰면서 북채를 휘두르는데 섬진강의 은빛 물고기를 불러들이는 듯 신명이 절로 나고, 팔영루 앞의 목련은 하얀 꽃잎을 하나 둘 떨구며 화답한다.

 

날렵한 팔작지붕에 화려한 다포집, 일주문을 나서니 어둑한 산마루.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바로 모퉁이 집 아궁이에 장작불이 타닥타닥 거리고 가마솥에는 하얀 김이 오른다. 환한 불을 보자 마음이 따스해지고 기웃거리며 들어가니 아주머니가 반긴다. 좁은 앞마당 너머 바로 깊은 계곡, 누마루에 걸터앉아 여닫이문을 열어보니 구석에 덜렁 이불 한 채, 절 방같이 적막하다.

자리 펴고 길게 누워 귀를 모으니 계곡 물소리가 여간 아니어 깊어지는 시사詩思가 하릴없다.

입산수도하려고 밤새 뜬눈으로 뒤척였을 중생들의 번뇌가 아로새겨져 있을 법도 하지만, 흙벽 저쪽엔 아가씨들의 억센 사투리가 자장가처럼 감미롭기만 하다.

 

깊어가는 밤, 편안한 잠, 아득한 기분…

부슬부슬 봄비만 촉촉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지리산 자락에 아침이 밝는다.

구름 아래 계곡을 내려다보니 물길이 마치 폭포 같다.

찬물로 머리를 감는데, 옆방의 한 아가씨가 뜨거운 물을 살며시 부어준다. 상큼한 산나물에 아침을 하면서 호사스런 밤을 보내게 해준 산방 구석구석 여기 한 번 저기 한 번 눈길을 준다.

행운유수行雲流水, 하동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청운산장 언저리를 자꾸만 더듬는다.

 

 

<수필문학>과 <계간 수필>로 등단(2001년). 수필평론가.

수필집 『양수리』, 수필평론집 『코끼리 이야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