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행처우역거馬行處牛亦去

 

 

                                                                                      김 광

나는 못하는 게 너무 많다. 그 중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공포까지 느껴야 하는 고질병이 있다. 무대공포증이 바로 그것인데, 특히 사람들 앞에서 노래라도 부를라치면 정강이부터 떨려오고 현기증을 느껴야 한다. 술이라도 몇 잔 걸쳐야 겨우 만용을 부려보는데, 등줄기에 식은땀이 나기는 매일반이다.

원래 숫기가 없는 탓도 있지만 교통사고로 목뼈를 다친 뒤부턴 말투까지 어눌해져 남들은 보통으로 생각하는 무대 화술도 내게는 자존심으로까지 이어지는 고통이다.

오래 전 서울시 공무원으로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주말에 동기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라 퇴근하자마자 예식장이 있는 H시로 향했다. 식장 부근은 붐비는 사람들로 후끈 달아 있는 게 제법 잔칫날 같았다. 식이 시작되기 직전 나를 본 신랑은 반색을 하며 뛰어왔다. 온다던 사회자가 안 왔으니 나 보고 사회를 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펄쩍 뛰며 고개를 저어봤으나 막무가내였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하얀 목장갑을 내밀었다. 졸지에 마이크를 잡게 된 나는 그때처럼 주례나 사회자가 존경스럽게 생각된 적이 없었다. 딱 마이크를 잡는 순간부터 난 의식이 없는 인형에 불과했다. 뭐라고 떠들긴 했는데 귀에서는 ‘웅웅’ 하는 소리만 들릴 뿐 내 목소린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니 했던 대사를 전혀 기억하지 못 할밖에……. 신랑 신부에게는 길일이고 축복받은 날이었겠지만 내겐 고역으로 점철된 날이었다. 아마 그 날 그 사건으로 얼굴이 십 년은 더 삭았을 게다. 그런데 후일 집들이 때 동기들은 하나같이 그 날의 비디오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야, 저거 봐라. 사회자의 즉석 시 낭송이 압권인데?”

그러고 보니 화면 속에선 내가 식이 끝나고 행진하는 신랑 신부를 향해 ‘국화 옆에서’를 낭송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분위기에도 어울리는 것 같았고 하객들의 표정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나의 무대 진출은 그럭저럭 추억으로 묻혀져가고, 무대공포증도 불치不治에서 난치難治로 격상되었다.

나의 때늦은 공부가 시작된 건 그때부터였다.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끝나면 싫다는 친구들을 데리고 으레 노래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뿐만 아니라 시낭송 모임에도 부지런히 쫓아다녔다. 그럴 즈음 어떤 친구가 별로 발전의 기미가 안 보이는 내게 귀띔을 해 왔다. 이 노래 저 노래 다 배우려 하지 말고 하나만 정해 놓고 집중 공략을 하라는 거였다. 그러고 그 노래가 익숙해지면 다른 노래를 배우라는 거였다.

그래서 맨 처음 배운 노래가 ‘연상의 여인’이라는 유행가였고, 마음먹기에 따라선 난치라고 여겨왔던 이 병이 치유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걸 보면 어느새 내 맘에 건방이 쌓였나 보다. 이 음치에게 누가 노래를 청할 리도 없건만 사람들 앞에 나서서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참 간사한 게 사람 마음이라더니……. 하긴 여기저기 출입하는 동호회가 많아서 여럿이 어울리는 경우도 있고, 또 직접 운영하는 동호회도 있어서 시 낭송도 자주 하다 보니 내가 생각해도 훈련이 많이 된 것 같았다.

이래서 사람은 선천적인 것보다는 후천적인 것에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고질병 덕을 본 것도 많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나로선 생각할 여유도 갖게 되고, 오히려 글 쓰는 데 투자하는 시간이 많았던 게 그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약이다. 노래를 못하면 어떻고, 대중 앞에서 떠들지 못하는 눌변이면 어떤가? 덕분에 여행도 늘 혼자 다니고, 구름 댓 장 흐르는 하늘이나 산 속 바위틈에 내걸린 진달래꽃에 취해 ‘산유화’를 읊조리다 보면 또 다른 풍경이 머릿속에 박히는 것을……. 날마다 되짚고 사는 일상이 어디 그리 만만하기만 하겠는가? 속이 상하거나 기분이 가라앉을 때도 나는 물가를 찾아간다. 여행을 가지 않은 주말이나 휴일에는 하다못해 집 가까이 있는 팔당 상수원이라도 찾아가 물가에 서곤 한다. 주위의 산들이 그대로 잠긴 강물이나 머리를 푼 채로 멱을 감는 수초들 사이로 미끄러지는 물오리 떼의 유영遊泳을 보고 있으면 마음은 어느새 그들의 뒤를 따라 물 위를 달린다.

강이나 호수는 새벽에 찾아와야 진수를 볼 수 있다. 어둠이 옷을 벗는 소리로 사각거리기 시작하는 미명에 집을 나서 차를 지치다보면 강이 가까워질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산들의 자태와 그들의 어깨 위로 떠있는 황黃, 청靑의 경계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강가로 부쩍 다가선 나무들하며 온갖 바위가 모습을 드러낼 즈음 강가에 보이는 신의 조화는 두려움마저 안긴다.

수면에 수없이 작은 물방울의 기포가 떠오르고 그 위로 몰려가는 물안개는 나를 아득한 미지의 세계로 데려간다. 상류 쪽으로 거슬러올라가다 만난 손님들은 또 얼마나 신비로운지……. 멀리서 보면 마치 소복 단장한 여인네처럼, 안개기둥이 절벽에 기대서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런 풍경들을 보고 있으면 마음속에는 근심 따위의 앙금이 남아 있을 리 없다. 그저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하는 생각뿐이다. 답답한 마음에 위로를 받고자 찾아온 강이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는 얼굴 가득히 감사와 행복을 싣고 온다. 오래 같이 산 부부는 서로를 닮는다고 한다. 자연을 닮을 수야 없겠지만, 언제나 관대한 산천을 나는 오래오래 사랑하려 한다. 사는 게 그렇듯 큰 욕심 없이 살면서 산천도 둘러보고 또 사람들 틈에도 부지런히 낄 일이다.

말이 가는 곳이면 소도 간다(馬行處牛亦去) 하지 않던가.

 

 

<문학세계>로 시 등단. <계간 수필>로 수필 등단(2004년). 계수회 동인.

시집 『바람이 사는 나라』, 『구름 몇 장 내게 주더니』, 공저 『시인의 바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