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이야기와 ‘바가’ 이야기

 

 

                                                                                     김병권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바다’ 이야기에 정신을 팔고 있노라니, 불현듯 ‘바가’ 이야기가 생각난다. 바다와 ‘바가’는 어음상語音上으로는 비슷하게 들리지만 그 뜻은 영 판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연상작용連想作用이 일어나는 것일까…….

바다 이야기는 성인 오락게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전국에 만 오천여 개 업소를 허가하여 온 국민으로 하여금 도박중독증에 걸리게 한 대사건이다. 불과 일 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이 바다 이야기 게임에 몰려든 돈이 28조 6천억이었다니 이 어찌 망국 풍조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땀 흘리지 않고 돈 벌게 해 준다는 불한당不汗黨들의 꼬임에 놀아난 서민 대중들. 농민과 도시민을 불문하고 도박증후군에 감염된 사람들은 지금 이 희대의 사기극 바다 이야기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아니 이 나라 방방곡곡에서 단말마적 비명을 지르며 분노와 허탈감을 곱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정책의 잘못은 인정하지만 그 과정의 비리는 없었다”고 미리 발뺌부터 하고 나왔다. 조사도 하기 전에 비리가 없다는 단정도 사리에 맞지 않거니와 잘못된 정책이라면 그 자체가 비리의 소산일 텐데 이 무슨 해괴한 말장난을 꾀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사건의 본질을 놓고 호도하려는 말장난을 우리는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중국 고사에서 익히 알고 있다.

중국 최초로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시황이 죽은 후 온갖 간계로 무능한 태자 호해胡亥를 이세황제二世皇帝로 등극시킨 조고趙高라는 간신은 스스로 재상이 되어 모든 정사를 전횡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종내에는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엉뚱한 야욕까지 품고 자기에게 순종할 조정 중신들을 선별하는 흉계를 꾸미게 된다.

하루는 문무백관들이 참석한 어전회의御前會議 석상에서 조고는 사슴 한 마리를 끌고 와 임금에게 바치면서 “이 말은 흉노족이 가장 아끼는 명마名馬인데, 폐하를 위해 진상하오니 애용하시기 바라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임금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허허 웃으며, “승상은 참으로 이상한 말을 하는구려. 이것이 사슴이지 어찌 말이란 말이요?”라고 나무랐다.

그런데도 조고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러면 이것이 말인지 사슴인지 이곳에 있는 만조백관에게 물어 보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정의감이 강한 몇몇 승상은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것은 말이 아니고 사슴이옵니다”라고 한데 반하여 약삭빠른 여타의 아첨배들은 “이것은 조고 재상의 말씀대로 명마가 틀림없사오니 어서 소납笑納하시옵소서”라고 하는 것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되다 보니 바른 말을 한 몇몇 사람들은 조고의 살생부에 등재되었다가 훗날 아무도 모르게 처형당하는 비운을 맞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한 와중에서 이세황제인 호해는 조고를 불러 말하기를 “짐은 천하의 쾌락을 다 누리면서 일생을 마음 편히 살고 싶으니 모든 정사는 경이 알아서 처리해 주기 바라오!”라고 하여 조고의 전횡을 추인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리하여 조고는 자기의 경쟁자인 이사李斯를 죽이고 선제先帝의 충신들을 모조리 제거함은 물론 더 나아가 왕자까지 살육함으로써 명실공히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실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조고 역시 자기가 세운 삼세황제三世皇帝 자영子嬰에 의해 피살의 비운을 맞게 되었으니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말이 헛된 것이 아님을 입증한 셈이다. 이렇듯 역사의 지침指針은 언제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을 가리키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예화라 하겠다.

일본어日本語에는 바보나 멍청이를 가리켜 ‘바가’라고 한다. 더 비하하여 욕설조로 말할 때에는 ‘바가야로’라고 한다. 이 ‘바가’는 마록馬鹿이라는 한자로 표기하여 일반적으로는 바보나 멍청이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 말의 참뜻은 위의 고사를 어원語源으로 하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자, 잘못된 것을 위압적으로 협박하여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자, 그리고 남을 속여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억지 쓰는 자를 빗대서 하는 말’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단순화시켜 놓고 볼 때에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자가 바보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여 그 억지 논리를 마지못해 긍정케 하는 짓은 오히려 상대방을 바보로 만드는 행위가 아니던가. 그러므로 이런 것은 철두철미 계산된 간계나 협박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 할 것이다.

원래 일상적으로 파생되는 사회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각양각색의 인간욕구를 하나로 통합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한 가지의 해답만을 도출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잘못된 정황情況을 정확하게만 파악하면 그것을 바로잡고 개선하기 위한 처방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정확한 진단診斷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사건의 정확한 진상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사과까지 한 마당에 왜 아직도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지, 또 그 실패한 정책입안의 책임자를 가려내어 준엄하게 처벌하겠다는 결의는 왜 보여주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건 처리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의혹은 점점 증폭되어 민심은 더 흉흉해지기 마련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간 사방에서 불거져나온 대소 사건들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간계나 지록위마 식 협박성 말장난으로 끝나서는 아니 된다. 온 국민이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납득할 수 있도록 소상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지금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이 ‘바다’ 이야기가 저 ‘바가’ 이야기의 닮은꼴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찌 필자만의 소회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