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줍기

 

 

                                                                                     吳景子

지루한 늦더위를 넘기고 선들바람이 불어 날씨가 선선해지더니 은행이 길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은행 줍기 계절이 찾아온 것이다. 외출할 때면 늘 비닐봉지를 여러 장 챙겨가지고 나간다. 우리 동네 큰길가에는 은행나무 가로수가 무성하여 은행이 많이 떨어진다. 동네 시장에 오갈 때나 버스나 지하철을 내려 은행나무 아래를 걸어올 때에는 한두 알이든 여러 알이든 내 발치에 떨어진 것은 모두 주워들고 돌아온다. 주워온 은행은 마당 한구석 나무 아래에 쏟아놓고 빈 화분을 씌워놓는다.

은행은 악취가 심하고 피부병이 생길 위험이 있어서 만지기를 피하는 사람이 많지만, 체질에 따라 달라서 내게는 해당되지 않으므로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다.

내가 은행 줍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는다. 삼 년 전 늦가을에 골목 건너편 연립주택에 살고 있는 여인네들이 뒷마당에 모여 비닐봉지에 담아두었던 은행 알맹이를 발려내는 것을 본 후부터이다. 그 날, 은행이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큰 손해를 본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이듬해 가을이 오자 고대하던 은행 줍기에 나섰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 우리 지역 안을 훑고 다녔고, 홍은동 일대와 경복궁 언저리까지 돌았다. 그러나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이 있는지 수확물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한낮에 집 근처에서 우연히 줍는 경우가 성과가 있었다. 골목 밖 건널목 신호등 옆에 서 있는 은행나무에 열매가 많이 열리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나무는 오갈 때마다 나를 붙잡아두는 재주가 있었다. 정지 신호가 풀려 차들이 달리기 시작하면 툭 툭 은행을 떨어뜨려 주었다. 파란 불이 켜져도 차도까지 내려가서 은행을 줍느라 길을 건널 수가 없었다. 신호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나는 그 사랑스러운 나무 곁에 묶여 있곤 했다.

다른 곳으로 원정을 다닐 필요가 없게 되었다. 윗 골목 밖 양복점 앞에 서 있는 큰 은행나무도 은행이 많이 열리는 것을 알았다. 저 아래쪽 건널목에서 신호가 풀린 버스들이 경사진 언덕길을 달려 은행나무 곁을 스쳐가면 은행이 떨어져 내렸다. 기다렸다가 줍고 기다렸다가 줍고, 양복점 앞과 길 건너 신호등 아래를 오르내리면 되었다. 은행을 찾아 돌아다닐 필요가 없었다. 질병 관리본부 뜰에도 큰 은행나무가 몇 그루 있는데 담장 안을 눈여겨 넘겨다보다가 많이 떨어져 있는 날 딱 한 번, 문 안으로 들어가 경비원에게 정중한 태도로 말을 건네 허락을 받아 한 봉지 가득 주워왔다.

남편은 내 은행 줍기 놀이를 못마땅해 한다. 용돈 몇 푼이라도 벌려는 사람들 것을 왜 빼앗아 오느냐고 나무란다. 남편은 내가 은행을 줍는 것을 추접스러운 행동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아요, 하늘이 내게 주시는 것만 주워오는 거예요. 내가 줍지 않으면 발길에 밟히거나 차바퀴에 으깨져요, 나는 항변한다.

하는 수 없이 첫해의 수확은 천 개로 마무리지었다. 천 개를 주우려면 내가 천 번을 하늘에 감사하며 허리를 굽혀서 이루어진 결과이다.

작년 가을 은행의 계절에도 은행 줍기를 시작했다. 오십 개 남짓 주워다 놓은 어느 날, 외출하다가 골목 어귀에서 아랫동네 사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삼십 대 중반의 여자로 남편을 뇌졸중으로 앓고 고등학생인 남매를 데리고 정부 보조금으로 살고 있었다. 기막힌 일은 삼십 세 때 남편보다 먼저 자신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되어 힘겹게 절뚝거리며 운동을 다니고 있는 장애우였다. 그 날 그 젊은이의 손에 은행 봉지가 들려져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의 은행 줍기는 끝났다. 그 후 그에게 슬며시 은행 이야기를 물으니 교회와 이웃에 신세진 분이 많아서 답례를 하려고 주웠는데 아이들이 싫어해서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다시 가을이 왔다. 은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신호등 옆 은행나무 말고도 질병관리 본부 쪽 길가의 가로수 서너 그루와 버스 정류장 근처의 두 그루 은행나무도 인도와 차도에 수없이 은행을 떨어뜨려 주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하늘이 내게 내려주신 선물을 들고 돌아왔다. 손질해 놓으니 오백 개가 넘었다. 뽀오얀 은행 알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목표 달성을 외치며 올해의 은행 줍기를 그치기로 마음 다졌다.

그 이튿날은 도서관으로 자원봉사를 가는 날이었다. 책 두 권과 돋보기와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먹을 과자와 과일과 스테인리스 컵과 음료수를 배낭에 넣어 지고 집을 나섰다. 두어 달 전 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담이 든 것처럼 등과 옆구리가 결리더니 그 날은 골반 쪽과 허리까지 아파 몸을 움직이기 괴로웠다. 언덕 위에 있는 도서관까지 택시를 타고 가려고 길을 건너갔다. 택시를 잡으려고 두리번거리다가 깜짝 놀랐다. 차도와 인도에 은행이 다른 날보다 몇 갑절 더 많이 떨어져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려는지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막바지까지 매달려 있던 은행이 연이어 떨어져 내렸다. 날씨 때문인지 길가에 은행을 줍는 사람도 없었다. 비닐봉지도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휴지를 넣은 작은 봉지를 꺼내 줍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여자가 딱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큰 비닐봉지를 건네주었다.

택시를 타기는커녕 불광역을 지나 연신내역까지 은행을 주우며 걸어갔다. 은행을 주우려고 허리를 굽힐 때마다 배낭이 목덜미께까지 밀려 내려왔고 배낭 안에 든 물건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연신내역에서 되돌아서서 집까지 가며 은행을 더 줍고 싶은 유혹에 시달렸으나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언덕길로 들어섰다. 그 날의 수확은 2킬로그램, 손질해 놓으니 칠백 개가 넘었다. 신기한 일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났다. 배낭을 진 채 수없이 허리를 굽혔고, 돌아오는 길에 장까지 보아 잔뜩 지고 걸어왔는데 몸이 거뜬했다. 허리의 통증을 느낄 수 없었다.

은행을 주우며 다니다 보면 느끼는 게 많다. 내 앞에서 누군가가 은행을 주우며 가고 있거나 은행을 주우며 마주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도 내 몫의 은행은 있다는 것이다. 그가 미처 보지 못했거나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눈 지나치고 갔거나 하늘이 내려주었거나 내 몫의 은행은 내가 노력하는 만큼 그곳에 있었다.

은행을 줍고 돌아설 때면 은행을 내게 준 나무를 올려다보며 고맙다, 하고 속삭인다. 나무를 쓰다듬기도 한다. 건널목 옆의 은행나무는 은행의 계절이 지나고 나서도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릴 때마다 나무를 살살 쓸어준다. 내가 쓸어준 자리는 반들반들하다. 내년 이맘때 나무가 은행을 내게 주는 날까지 아마 백 번은 쓰다듬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