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의 회상

 

 

                                                                                   南基樹

1

담 밖 십여 미터 거리에서 밤낮없이 철썩이는 물결을 이웃하여 지내다 보니, 바닷가라는 유다른 생각은 사라지고, 물소리를 이웃하여 지내고 있다는 정도의 느낌만 남아 있었다. 열려 있는 대문을 나서면 길 한쪽으로 둥글게 돌아앉은 돌담을 끼고 무심히 가 닿는 곳이 물가였었다. 날마다 생각 없이 그렇게 대하고는 한 물가였다.

그때(2003년 여름)는 지극히 평범한 나날이 물가로 오고갔다. 해녀들은 음력으로 초이레 경부터 스무 이튿날 경까지 물질을 한다고 했다. 나는 하늘이 높고 날씨가 화창한 때면 곧잘 샌들 바람으로 대문을 나서서 물가를 향하여 걸음을 옮겨놓고는 했다. 그런 날은 해녀가 물속에서 전복이나 해삼을 따가지고 물 위로 올라와서 내쉬는 휘파람 같은 숨소리를 먼 걸음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때면 주변의 바다 밑이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고, 해녀 탈의장 앞에 나 있는 바윗길을 딛고 물가로 내려가 앉아서 물속에 발을 담근 채 햇볕을 쬐거나 했다.

물속에 몸을 담근 채 앉아 있을 때는, 목까지 잠기도록 몸을 낮추고 눈길을 들어서 푸른 물결을 멀리 수평선까지 내다보기도 했다. 그런 때는 짙은 물빛 위로 하얗게 부서지는 하늘이 잔물결을 타고 눈에 시리도록 들어왔다. 가느다랗게 실눈을 하면 초록 물감이 묻어 있는 듯 얼룩얼룩한 느낌이 눈망울 주위에서 맴돌았다. 초록빛이 엉기어 있는 순백의 흰빛이, 핵核이 타오르는 듯, 수평선 끝까지 넘쳐나고 있었다. 찬탄이 절로 나오는 순간들이었다.

물에서 몸을 일으키면, 한낮의 녹음에 묻혀 있는 서우봉이 강렬한 햇빛과 짙은 물빛에 어울려서 동화 속의 세계 같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모든 것이 시간과 장소에 알맞게 짜여 있는 느낌이었다. 정지한 듯한 시간 안에 동심으로 남겨진 마음이 흡족해했던 것인지 모른다.

물 밖으로 드러나 있는 바위 언저리에서는 출렁이는 물소리가 남실남실 자장가 같았다. 볕살이 따끈하게 목 주위에 내려앉으면 손으로 물을 한 움큼 쥐어 끼얹고는 했다. 그렇게 해도 목 주위는 다시 타는 듯이 뜨거워졌고, 발은 점점 시린 느낌으로 저려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물속에 앉아 있었다. 물가에서 시간은 참으로 느리게 흘러갔다.

 

2

바닷가에서 올려다보면 하늘은 넓고 또 높았다. 끝이 없이, 언제나 비어 있었다. 때로는 희끄무레하였고, 늘 티 없이 맑은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마음속 바닷가의 하늘은 빛깔도 바래서 한없이 엷다.

바닷가에서 하늘은 생각을 모아주지 않았다. 마음속 얼개는 언제나 아득했다. 튜브 속의 물감같이 물가에 뉘어져 있던 몸은 눌러서 짜 보아도 흰빛뿐이었다. 그렇게 하늘은 잡히는 적이 없었다. 감각도 증발해 버렸나 싶었다.

흰빛만으로는 아무것도 그려볼 수 없었다. 높고 넓은 엷음 안에서 사물은 태態를 잃고 흐트러지고… 마음도 생각도 어떤 것도 그려내지 못 하였다. 태도 둘레도 그려볼 수 없는 사물은 모두 하늘 같았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나 다름이 없었다.

바닷가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하늘에 넓고 높고 깊게 모여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들이 그 하늘에서 밀려서 내려왔다. 압도되어서, 망연히, 스스로에게 물어보고는 하였다`─`왜? 어떻게? 또 무엇을?

하얀 한낮이 물가에서 검은 돌 위에 뜨겁게 흐르고 있었다. 곁에서 파랗게 남실거리는 물결이 여기서도 보이는 듯하다.

3

모래밭`─`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깔아주는, 노르스름한 모래밭. 이런 모래밭이 북촌의 바닷가에는 없다. 주위는 다 검은 빛깔의 화산암뿐이다.

인적이 드물어서 언제나 한적하기만 한 북촌에서 대기는 싸늘하고 푸르게 정제된 그 맛이 심폐에 아스러지듯 닿을 뿐, 한낮이 한참 지나서도 섬의 서쪽 한림이나 협재 해안에서 볼 수 있는 화사하고 아련한 기운을 띠지 않았다.

오후가 되면 서우봉 잔등이 푸르고 흰 하늘 아래서 느릿하게 그림자 짓기 시작했다. 둔덕들을 경계로 층져 있는 마늘밭의 이랑들은 줄줄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해안의 숲들은 해동마을 해변을 돌아서 해안의 초소까지 멀리서 풍치를 돋우어주었다. 그 모두가 강한 햇빛과 짙은 숲 그림자로 인하여 묵화의 인상이었다.

물 밖으로 드러나 있는 검은 돌들은 가까이 다가서면 뭉툭하거나 예리하거나 모양마다 미끄럽고 날카로운 느낌을 조심스런 마음 위에 던져주었다. 검은 돌들은 희멀겋고 무심한 하늘빛에 대조되어서 번들거리는 물빛을 배경으로 저마다 순수한 느낌을 주었다. 응축된 그 무게 안에 힘이 서리어 있었다.

옥상에 올라서 사방을 휘돌아보는 때면 하나하나가 형상적이었다. 눈앞에, 바다로 열려 있는 무애한 공간이 있었다. 군데군데 묵직하게 돌들이 무리지어 있었고, 사이사이에 색깔들의 강렬한 대조가 있었다. 쉼 없이 노닥이는 물결의 율동이 이 모두를 하나로 아우르고 있었는데, 새롭게 태어나려는 변화의 끝없는 되풀이 같기도 했다. 이러한 느낌이 온몸으로 밀려들었다.

공간과 힘과 율동이 물가에서 하나로 어우러진 음악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것은 몇 가닥의 선율들이 서로 대조되어 드러나는 흐름으로, 자신의 축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변신을 모색하는 음악은 아니었을까……. 퍼져나가는 공간 안에 형상의 고리를 엮어나가는 음악이었으리라.

북촌의 바닷가에서는 내부로 응축된 기운이 늘 유리되어 떠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4

북촌에서는 맑은 밤에도 별빛이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밤 고깃배들의 휘황한 불빛이 수평선을 이룬 위로, 고만고만한 항해성航海星들이 드문드문 눈에 뜨일 뿐이었다. 매일 밤 변함이 없는 현상이었지만, 별을 헤아려보는 마음은 언뜻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별들이 다 어디로 갔던 것일까?

어둑한 물결이 은은하게 밀려오고, 부서지는 물결이 인광처럼 흐트러지고 있었다. 눈길을 돌려서, 물소리를 따라, 휘움한 해변을 짚어나갔다. 서우봉犀牛峯 모퉁이까지 해변을 따르던 눈길이 벼랑 위에서 해안 초소의 조명등에 막히면, 눈길은 해변을 비껴나서 서우봉 봉우리 위로, 하늘로 이어졌다.

덩그러니 어둑한 하늘로 눈길을 가만히 고정시키자 가뭇없던 별빛들이 이윽고 잡혀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별들이 온 하늘에 가득 차 있는 것을 확인하는 마음이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별들은 빛이 희미하여 없는 듯이 느껴졌을 뿐이었다.

별빛을 한참 올려다보고 있으면 끌려들어간 듯이 가물가물 혼미한 느낌이 따랐다. 어둠 가운데에 낮게 웅크린 돌담이 굼틀거리기 시작하고, 적막한 물결 소리가 밤의 침묵 가운데를 괴괴하게 휘젓고, 바람이 살품을 싸늘하게 돌아나갔다. 밤기운이 섬뜩하게 와 닿고, 희미하게 흐르는 별빛 사이로 요기妖氣가 촛불같이 나부꼈다.

 

5

북촌에서는, 하늘과 바다를 대하고 있는 때면 거의 언제나, 자신이 한없이 미소하게 느껴지던 것이 생각난다. 왜 그렇게 느껴지던 것이었을까?

그러한 느낌은 다른 바닷가, 다른 하늘 아래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을는지 모른다. 그동안 몸과 마음과 생각으로 겪어보려 했던 온갖 소치所致들이 이리저리 모아 본 자신의 귀난 얼굴이라는 생각에 실소조차 금하기 어려웠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나간 소치들을 그때처럼 부끄러워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오히려 귀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삶의 일회성에 대한 연민에서 그런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