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택幽宅

 

 

                                                                                金菊子

남편은 결혼 초부터 집에 대해서는 각별했다. 아마 집 없이 결혼을 했기 때문인지, 내 집 마련에 온힘을 쏟았고 힘겹게 장만한 집도 해마다 봄만 되면 수리를 했다. 작년에는 살고 있는 집을 리모델링하여 딴 집을 만들어놓더니 올해는 죽어서 살 집을 만든다고 몇 주일째 고향에 있는 산소를 손질하고 있다.

오늘은 휴일이니 고향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 커피와 과일을 준비하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돗자리도 준비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강을 끼고 달리는 차창 밖의 경치는 아름다웠다. 가끔씩 가보는 고향이지만 차가 양수리에서 국수리를 향해 달릴 때 창으로 보이는 강가의 풍경은 늘 나를 감동시켰다. 한때는 국수리 마을 강이 가까운 곳에 조그마한 집을 장만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곧 마음을 접었다.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많을 것 같아서다.

고향 마을에는 산수유는 이미 졌고 동네 어귀에 복사꽃이 피어 한결 마을의 정취를 북돋아주었다. 마을을 지나 산소로 올라가는 길에는 노란 들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고, 하얗게 핀 싸리꽃을 따라 걷다가 고개를 숙여 풀섶을 내려다보니 제비꽃, 난초꽃이 작은 꽃잎을 빠끔히 열고 있었다.

산소 주위로는 산 벚꽃이 피어 조용히 누워 계신 할아버지, 큰아버지 내외분 그리고 조금 떨어져 계신 아버님을 기쁘게 해줄 것 같았다.

윗대 어른들의 산소 아래 양지바른 잔디밭에 봉긋이 가묘 세 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가묘 앞에서 세 동서가 반갑게 만났다.

“형님, 가운데 묘가 형님네 유택이 될 것 같네요. 그리고 오른쪽이 우리 집, 왼쪽이 동서네, 땅속으로 통로를 만들어 죽어서도 가까이 지내자고요.”

“그러자고, 그곳에서도 모여 제사를 지내야 되나?”

세 동서는 함께 웃었다.

“어때, 집이 좋아 보이지. 그 속에 텔레비전을 한 대 넣어 줄게.”

내 별명이 김테레비지만 유택 속에까지 텔레비전을 넣어준다고 농담을 던지는 남편은 산소 아래에 영모정永慕亭이라는 조그마한 정자를 만들 계획으로 신이 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자손들이 이곳에 와서 과연 죽은 우리를 오래도록 그리워할까?

내가 죽어서 들어갈 집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묘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여행 중에 보았던 묘들이 생각났다.

 

우리와 달리 서양에서는 묘지를 도시 가운데에 두고 있다. 내가 본 묘지 중에서 인상 깊었던 곳은 비엔나에 있는 중앙묘지다. 그곳에는 음악가들이 모여서 묻혀 있었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특히 요한 슈트라우스와 브람스는 이웃하고 있어, 나는 두 무덤 사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공원묘지에는 꽃들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었고, 묘지 앞에서 꽃다발을 안고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동상이 있는가 하면 한손을 이마에 대고 고뇌하는 남자의 동상도 있었다. 이렇듯 묘지는 귀신이 나오는 으스스한 곳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 그리울 때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공원 같은 곳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 무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은 인도의 왕비 뭄타즈 마할의 무덤인 타지마할이다.

황제 샤자한이 37세에 죽은 젊은 왕비를 위해서 만든 유택! 건축왕답게 무굴제국의 국력을 기울여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돌과 페르시아 건축가 모하마드아사드를 비롯한 뛰어난 기술자를 동원하여 22년 동안 만든 무덤.

낮에는 태양빛을 받아 하얗고, 석양에는 오렌지색으로, 보름달이 뜨는 밤에는 청색으로 보인다는 타지마할. 권력과 부를 소유한 한 인간의 지고한 사랑이 남긴 인류 최고의 예술작품이 바로 타지마할이다.

남편은 권력가도 부도 없는 사람, 그답게 흙 속에 풀잎 떼를 입혀 초막을 장만했다. 새벽에는 맑은 이슬이 내리고 낮에는 무덤 위로 흰구름도 지나가겠지. 저녁에는 석양빛 속으로 조용히 숨어버리는 마을의 모습도 볼 수 있고, 밤에는 찬란한 별빛이 내리는 이 초막에 누워 꿈결같이 살아온 인생과 이생에서 이루지 못한 일, 그리고 깨닫지 못한 일들을 생각하며 나만의 사색의 순간을 누리겠지. 한 가지 위안이라면 내 아들 손자들이 이곳에 찾아와서 놀다가는 모습을 보는 일일거야.

그런데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

사랑하는 것들을 두고…….

사월의 꽃, 오월의 잎, 칠월의 잔디

흰구름, 나비의 춤, 새의 날갯짓,

쇼팽의 피아노곡, 나나무스끄리의 음성

모네의 수련, 로마의 휴일, 겨울 연가

그리고 사랑하는 내 가족.

차라리 이 모든 것을 잊고 떠나야지, 어찌 멀쩡한 정신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인가…….

그리고 누가 먼저 이 초막에 들어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