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회에서 만난 그녀에게

 

 

                                                                                   이미연

그녀에게 송년모임에 참석하라고 나는 메일과 전화를 여러 번 보냈다. 삼 년 동안 모임에 나오지 않은 그녀에게 다 모인다는 뻔한 거짓말을 보태서 적극적인 자세로 연락했다. 그 말을 믿었는지 모임에 온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다 온다면서 자리가 많이 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얼굴을 보는 것 아니겠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간만에 만나는 문우文友들과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는 그녀가 문득 네게 물었다.

“이 선생, 인일여고 나왔다고 했지. 내 옆자리 선생님도 같은 여고를 나왔는데, 졸업한 지 30년이라는데, 이 선생에 대해 물으니 잘 모르던데, 졸업연도가 언제야? 같으면 한 번 더 물어봐도 되지?”라고 말한다.

“나도 그 선생님 이름만으로는 잘 모르지만, 물어봐도 좋지. 그러나 나를 기억할지는 잘 모르겠어”라고 나는 말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나는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니는 시절 눈에 띄지 않는 ‘말 없는 아이’였다고 답했다.

“왜? 그럼 지금이랑 달라요. 그러면 언제 바뀐 거예요?”

주변의 여러 문우들이 놀랍다는 말투로 내게 물었다.

나는 갑작스런 질문에 그들의 호기심 어린 얼굴을 바라보면서 잠시 할 말을 찾았다. 장내가 시끄러워지고,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주위를 돌리자 ‘정말 그때는 그랬지’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 시절 나는 교실에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우리 집을 사이에 두고 100미터 정도 거리에 있었다. 학교가 우리 동네에 있어서인지 나는 말수가 적어도 지내기가 수월했다.

인일여고仁一女高를 가기 위해서는 집이 있는 부평역에서 비릿한 냄새가 가득한 디젤 기차를 타고 동인천역에서 내려 십여 분 정도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플랫폼에는 선배들과 이웃 학교 남학생들이 드문드문 눈에 뜨였지만, 같은 중학교 출신 친구들은 두어 명도 되지 않았다. 인천仁川에 가니, 학교 친구들은 내가 사는 부평富平을 외진 곳으로 취급했고, 나는 인천에 있는 학교 이름, 동네 이름조차 생소해서 급우들이 무슨 말을 해도 아는 게 없었다. 차츰 인천 지리에 익숙해지고 아이들 이야기에도 끼여 웃을 수 있을 무렵 나는 여고를 졸업했다.

신촌에 있는 대학은 전국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거의 다 모여 있었다. 문리대학에는 신입생이 사백 명이 있었는데, 우리 고등학교 출신은 열 명이었다. “어느 고등학교 출신이니?”라고 새 친구들이 물었을 때, 나는 학교 이름을 말하지 않고 “인천이야”라고 답했다. 그러면 동년생들은 “지방 학생이구나!” 했다. 전철을 타면 한 시간 통학거리여서 가깝게 여길 만도 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을 알지 못했다. 서울 지리와 그 밖의 많은 부분에서 나는 문화적인 차이를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 대학생 언니, 오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아는 것도 말할 것도 없어 나는 입을 다물고 남의 이야기에 경청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학교에만 가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뉴스를 통해 아는 것보다 더 자세하게 더 빨리 알 수 있었다. 듣기를 좋아하여 말없이 이곳저곳을 쫓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기 시작했다. 말문을 열기에는 턱없이 짧은 4년의 시간이 흘러서 부평에 사는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친구가 적은 나는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 들었다.

정해진 과정을 밟아가기만 하던 시기가 사라지고, 나는 무엇을 할지 선택을 해야 했고,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나아가야 할 필요를 느꼈다. 말없이 조용히 물살을 따라가기만 하던 나는, 사라진 물길을 찾아서 두리번거리며 바삐 움직여야만 했다. 어렵게 취직을 하고 학교 밖 사람들을 만나고, 이십대 후반에 들 무렵 결혼을 했다.

지금의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막힘없이 말하고, 모임에 가면 사람들 이름을 대부분 기억하고, 내가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그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수월하게 인사를 나누게도 한다. 어느 모임에서나 적극성을 가지고 참석한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내게 연락할 일이나 잡다한 일들을 시킨다. 그런 지금의 모습에서 혹시 학교 때부터 그랬나 생각했을 그녀와 문우들을 보니 내가 더 난감하다.

지금의 나도 분명히 나이지만, 검은색 털실로 짠 교복 윗옷과 발목을 조이게 만든 바지를 입고 단발머리에 입을 일자로 앙 다문 그 시절의 나도 틀림없는 나임을 어떻게 설명할지 잠시 막막하다. 누군가 불러젖히는 구성진 유행가 노랫소리에 나는 그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던 생각을 접는다. 우리는 지난 일 년 어떻게 보냈는지 서로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 같이 앉아서 밥을 먹고,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 지난 세월을 담아 지금도 우리의 관계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말 없는 미소와 무언가를 털어내는 웃음소리와 세월의 흐름에 허전해지려는 가슴 한구석에 미련을 남기고 서로에게 또는 자신에게 세월이 주는 무게를 담담히 감당한다. 그리고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눈으로 따스한 자신들의 속마음을 상대에게 전하기도 한다.

그녀를 포함한 몇몇 문우들과 나는 한 해 동안 쌓인 가슴 속 응어리 한 조각을 털어내려 노래방을 향한다. 자신의 어느 한 시절을 담아내는 유행가와 그 시절에 대한 자신의 애환이 섞인 애창곡들이 울려 퍼진다. 들어주는 이보다 부르는 이의 세월의 때가 낀 흥이 더 애절하다. 아쉬움이 남아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우리는 털어내도 털어내도 남는 먼지처럼 앙금 하나 남기고, 새롭게 마주할 새로운 세월을 만나러 바람 부는 거리로 나선다. 나란히 걸음을 옮기는 나와 일행은 각자의 집으로 또다시 다가올 일 년 후 송년의 밤을 준비하기 위해서 불빛이 가득한 겨울거리를 서로의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간다.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졸. 그레이스 수필문우회 회원.

저서『단감찾기』(공저),『창으로 바라보는 풍경화』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