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초회>

 

둘과 셋

 

 

                                                                                 은서향

핸드폰에서 맑은 새소리가 난다. 내 주보성녀인 모니카 축일이니 그윽한 곳에서 밥이라도 먹자는 그녀의 문자 메시지 소리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사귀는 것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이좋은 커플 같다고도 한다. 함께 다니는 일이 잦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음악에서부터 책, 영화, 옷 입는 취향까지 비슷해서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함께 했으니 서로 닮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듯싶다. 우연이었을까. 부모님이 일찍 돌아간 것, 여자 형제가 없는 것까지 꼭 같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이기 이전에 친자매처럼 정이 깊었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친구는 우리 둘 사주를 보며 남자 여자로 만났으면 천생연분이었을 거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남편들이 그 말을 들으면 질투라도 할까, 슬며시 궁금해진다.

 

처음부터 우리 둘이었던 것은 아니다. 처녀 시절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 다섯이었다. 내 직장은 남산에 있었고, 그녀는 남산 아래의 전화국에 근무했다. 우연히도 다섯 모두 남산을 둘러싼 가까운 곳에 직장이 있었다. 그러니 미혼의 우리가 퇴근하고 만나는 일은 자연스런 일과였는지도 모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명동성당 저녁 미사에 가게 되었고, 성당 마당이 약속 장소가 되었다. 늘 가던 카페로 옮겨 앉으면 신학과 철학이 우리 담론의 뿌리가 되고, 어떤 빛깔의 옷을 입고 사느냐로 가지를 쳤다. 모두 남자친구가 없었던 터라 서로 휴가 날짜를 맞추어 여행도 다녔다. 과년한 처녀들이 나이 먹는 줄 모르고 살았다. 삶의 어려움을 몰랐던 즐겁기 만한 시절이었다.

다섯 중에서 그녀와 나는 수도자가 되고 싶어 했다. 우리와 성향이 맞는 수녀원을 찾아 정릉이나 부산, 대구로 수녀원을 알아보러 다녔고, 나머지 세 친구는 결혼하려고 선도 보고 교제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함께 수녀원을 알아보러 다니던 그녀가 모임에 한두 번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날,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남자 직원과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더 아이러니한 일은 결혼하겠다고 선보러 다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수녀원 입회 소식을 알려왔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한 친구가 바티칸의 울바노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고 혼자 남게 된 나는 서른을 눈앞에 둔 노처녀가 되었다. 초조해져서 나도 서둘러 결혼했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더니 우리 둘과 셋의 모습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수도자가 되려했던 우리 둘은 결혼했고, 결혼하려 했던 나머지 셋은 수도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동경하던 까만 옷은 못 입게 되었지만 그녀와 같은 길을 가게 되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녀는 아들만 둘을 낳았고, 나는 딸만 둘을 낳았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들딸을 한 명씩 나누어가졌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 두 부부가 서로 아이들의 대부, 대모가 되어준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은 가족들과 함께 만나서 식사를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은 그렇게 조금씩 엷어지고 있다. 우리 다섯의 행로를 생각하면 성소聖召란 마음먹고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넓은 의미로 바라보면 우리 둘은 또 다른 성소聖召로 사는지도 모른다. 거룩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지 모르지만,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열차처럼 궤도를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하루의 대부분을 도시빈민사목 소속 성당에서 봉사하며 산다. 무료급식소에서 밥 짓는 일도 하고, 소녀가장의 보호자 역할도 한다. 몸으로 하는 일뿐 아니라 물질로도 아낌없이 돕는다. 내가 보기엔 영락없는 수도자다. 나도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구역 일도 했지만, 그녀를 보면 내가 한 일은 흉내 내기 정도라 부끄럽다. 흉내도 자꾸 내다보면 비슷해지리라 자위하면서. 지금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사는 우리 다섯이 언젠가 한자리에 모이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우리 서로 입은 옷의 빛깔은 달랐지만 언제나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