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초회>

 

가면무도회

 

 

                                                                                       이종화

선율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연주가 끝났다. 난 춤을 추고 있었다. 가면을 쓰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상대의 가면에도 관심이 없었다. ‘에잇, 가면 속 얼굴을 알게 뭐람.’ 새 연주가 시작되기 전에 어서 새 짝을 찾아야 한다. 이번에는 어떤 가면과 어울려 볼까. 아니지. 그 전에 다른 가면을 써 봐야겠다. 분위기를 바꿔봐야겠다.

사람은 겹겹이 가면을 쓰고 산다. 그래서 어울림은 가면무도회 같다.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의 거짓은 진실처럼 보인다. 알고 싶어도 알고 싶지 않은 척, 말하고 싶지만 관심 없는 척,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남의 업적은 대수롭지 않은 척, 신경은 쓰이지만 그렇지 않은 척, 해주기 싫지만 타이밍을 잡지 못해 하지 않은 척, 곤란하면서도 태연한 척,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지만 대범해서 그런 건 신경조차 아니 쓰는 척, 그러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면 모르쇠로 돌변하는, 이 세상은 그런 가면들이 사는 곳이다.

가끔은 귀여운 가면도 있다. 좋아하지만 안 그런 척, 일부러 왔으면서 우연히 만난 척, 깜짝 파티를 준비했으면서 오늘이 그 날이었냐는 재미있는 가면들. 그런가 하면 용기 있는 가면도 있다. 숨고 싶지만 앞으로 나서고, 부끄럽지만 깨끗하게 시인하고, 곤란하지만 맺음이 분명해 상대에게 불필요한 기대를 심어주지 않는 가면들. 반상盤床에서 포커페이스가 되는 돌부처, 연막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지혜, 잘난 체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별, 가슴이 무너져도 그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내공 깊은 이들은, 가면무도회를 멋진 빛의 행렬로 바꾼다.

가면들이 사는 세상에서 가면 없이 규칙만 지켜준다면, 가면은 날 보호하기 위한 탈이다. 아니, 목표가 된다. 소싯적부터 ‘큰바위 얼굴’을 바라보며 자란 아이가 마침내 그 숭엄崇嚴한 얼굴을 닮아갔다는 호손의 이야기처럼, 언젠가는 내가 썼던 가면이 미래의 내 얼굴일 수도 있을 테니까. 기왕 써야 하는 가면이라면 그런 가면을 쓰고 싶다. 내 잘못을 감추기 위한 가면, 순간 모면謀免하기 위한 가면을 쓰지는 말아야겠다. 부끄럽더라도 태연한, 곤란하지만 소신을 지키기 위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보이기 위한 가면을 쓰고 싶다. 그리고 만나는 가면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언제나 바람일 뿐이지만.

가면을 쓰는 것은 자신의 의도를, 그 복잡한 감정을 감추고 싶을 때뿐이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 그들의 후예인 우린 항상 감추고 싶은 것 같다. 가면과 가면이 만나면, 우린 거울을 보는 것이다. 수많은 거울에 비친 부끄러운 자화상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내밀고 춤을 청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일까. 이따금씩 가면을 벗은 용사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건, 과연 그들의 용기를 진정으로 존경해서일까. 아니면, 우리 대신 그런 일을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일까. 걱정이 앞선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솔직해서 매를 번 이들. 그들의 맨 얼굴에 쏟아진 세상의 비난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무도회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가면을 벗고 싶지만, 벗을 수가 없다. 단지, 닮고 싶은 가면을 고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