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초회>

 

자투리

 

 

                                                                                  도혜숙

욕심은 사람의 눈과 마음을 큰것 쪽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집도 큰 것을 좋아하고 승용차도 큰 것을 가지고 싶어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생기는 좀더 편하게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리라.

나 남 없이 살기가 어려운 때가 있었다. 근검절약이 생활의 미덕이었고 알뜰하게 살림 잘하는 주부가 되는 것이 여인들의 소망이던 때는 해진 옷을 기우려고 해도 덧댈 만한 헝겊 한쪽이 아쉬웠다.

나는 진주 중앙시장에서 자투리 베를 파는 가게에 종종 갔었다. 필베를 잘라서 팔다가 남은 어중간한 자투리는 정상 가격의 반 값에 살 수 있었다. 한 마(90센티미터)가 못 되는 자치는 그저 주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걸 가져다가 아이들의 옷을 만들었다. 내 아이들에게 손수 만든 옷을 입히는 엄마의 행복감은 경험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풍성한 화수분이다.

친구에게서 가죽 반코트 하나를 얻었다. 난로 가까이 섰다가 앞자락 한쪽이 눌어붙어서 못 입게 된 것이다. 생일선물로 남편이 사준 옷인데, 입지도 못하고 버리기도 아까워 속상해하는 친구를 데리고 나와 위로 점심을 사주고 얻어왔다.

못 쓰게 된 앞판 하나는 버리고 성한 앞판과 등판, 그리고 소매 두 쪽을 모두 6.5센티미터 크기로 정사각형 조각을 만들었다. 조각마다 가장자릴 돌아가면서 송곳으로 스물네 개의 구멍을 뚫었다. 코바늘을 가지고 구멍 사이로 뜨개실을 뽑아 올리면서 짧게 뜨기와 사슬뜨기를 하였다. 백서른 개가 넘는 조각들을 모두 마름모꼴로 이어 붙여서 재킷을 만들었다. 목 부분에는 털실로 짜서 칼라를 달고, 소매 부리에도 털실로 멋을 내었다. 보풀거리는 털 칼라와 소매 부리가 가죽이 풍기는 냉기마저 봄날로 만든다. 세상에 그 누구도 만들지 못하는 옷을 내가 만든 것이다.

남은 조각들은 병뚜껑을 올려놓고 여러 개의 동그라미를 그려서 가위로 오렸다. 더 작은 조각도 백 원짜리 동전만한 동그라미로 오려 만들었다. 그것들도 짧게 뜨기를 했다. 큰 동그라미는 핸드백이 되고, 작은 동그라미는 손지갑으로 태어났다. 10년도 더 지났지만 그것들은 내게는 못 잊을 애장품이다.

옛 생각이 나서, 한복 바느질을 하는 동생한테서 비단 헝겊 한 보따리를 가지고 왔다. 쓸 만한 것들은 골라내고 버린다는 것들인데, 그 중에서 색깔이 고운 것만 골라서 가져온 것이다. 헝겊 보따리를 풀었다. 쓰고 남은 조각들이라 색깔도 여러 가지에다 모양이 제각각이다. 네모난 것, 길쭉하게 생긴 것,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하게 생긴 것, 끼리끼리 가려 모았다. 이것으로 무엇을 만드나?

성경에서는 인간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다. 인간의 수명이 팔십이라고 보고 사람의 한평생을 한 필의 베라고 본다면, 천명을 안다는 시간의 구비는 베 한 필의 여덟 마디 중에서 이미 여섯 마디에 접어들었다. 나는 어느새 두 마디 자투리로 줄어든 셈이다.

동전만한 조각도 핸드백에 비늘이 되거늘, 이 조각들을 이어 붙인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무지갯빛 필베가 될 것인가. 다섯 마디를 다 쓰는 동안에 더러는 자의로, 더러는 타의로 잘려나간 편린들을 생각하면서 재봉틀을 내놓고 조각 천들을 하나하나 기워 잇는다. 퍼즐을 맞추듯이 부지런히 이어 붙인다. 인생처럼 아롱다롱한 시간들이 엮여 나온다. 꽃밭 같은 언어들이 종알거리며 방에 쌓인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자투리가 된 나, 남은 자투리로나마 밤을 덮어버리는 별 밭 같은 언어의 이불보 하나 만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