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狂氣와 관련된 생각

 

 

                                                                                       이향아

1.

 

동네에는 으레 ‘미친년’ 혹은 ‘미친놈’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한둘 있었다.

그들은 봉두난발로 옷자락을 풀어헤친 채 공연히 히죽거리고 맨발로 비틀거리면서 구걸하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중얼거리면서 제 나이도 모르고 자식뻘이나 됨직한 어린애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특별하게 대접했다. 누가 봐도 제 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으므로 그들의 언행을 크게 탓하지 않았던 것이다. 무례해도 그러려니 했고 파렴치한 짓을 해도 ‘저놈 좀 봐라, 얼씨구 또 시작했구나!’ 혀를 끌끌 차며 웃어 넘겼다. 그 시절 소위 ‘미친 사람’들은 그 광증을 치료받으러 병원을 출입하기는커녕 집안의 수치로 여겨 쉬쉬하였다.

물론 초기에는 점을 치고 굿을 하여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지만 별 차도가 보이지 않으면 팔자소관으로 돌렸다.

지금은 고향 동네에 가도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다.

나는 가끔 의심한다. 그 시절 ‘미친놈’으로 불리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그들은 정말 본정신이 아니었을까. 정신이 가뭇가뭇하다가도 다시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곤 했지만 오히려 그 멀쩡한 정신이 부담스러워서 일부러 광증의 연막 속에 은신했던 것은 아닐까. 거기서 그들 나름의 생존법을 찾아 마음 편하게 소위 잘난 사람들의 세상을 관람한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이라고 해서 미친 사람이 없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의 기류는  도저히 참아낼 수 없는 일들을 옛날보다 훨씬 많이 만들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광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의 광증은 ‘미쳤다’는 극단의 말 대신 신경쇠약이니 정신불안이니 하는 말로 광증과는 무관한 듯이 우리 생활에 섞여 있다. 과대망상이니 피해망상이니 대인기피증이니 편집증이니 우울증이니 다양하게 세분되어서.  

우리는 이들 광증 가운데 한 가지쯤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어서 누가 미쳤고 누가 성한지 알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옛날처럼 구경꾼을 모으는 거리의 광인이 없어졌다고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다.

 

2.

 

내 자리에서 석 줄 앞에 베이지색 웃옷을 입은 여자가 있었다. 앉아 있는 그 여자의 옷은 많이 구겨졌었다. 나는 앞 사람들의 어깨 너머 사선으로 그 여자를 보았다. 그 여자가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은 찬양대가 찬양을 시작한 후였다.

여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한참 동안 서 있는 것이었다. 아마 찬양대원들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그러는 것 같았다. 여자는 그런 식으로 예배 도중 다섯 번인가 여섯 번인가를 일어났었다.

오늘은 특별히 중국사람 칠팔 명이 한국교회를 보러 왔었고, 팔레스타인의 어느 도시 시장이라는 사람과 그를 수행하는 사람들도 함께 예배에 참석했었다.

여자는 목사님이 외국 손님들을 소개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길게 빼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공연히 일어서서 - 이 ‘공연히’라는 말은 순전히 내 관점에서 나온 말이지만-

바지 허리춤에 끼인 티셔츠를 바지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꽤 오랫동안 계속하였다. 가만히 있기가 불안하거나 거북한 모양이었다. 커다란 생수병을 꺼내어 고개를 마음껏 뒤로 젖히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고, 안약을 꺼내어 한참이나 병뚜껑을 열었다가 닫고, 흔들고 매만지고 하다가 그대로 다시 가방에 넣기도 하였다.

그 여자는 옆 사람들에게 전혀 조심하지 않고 큰 소리를 내면서 마른기침을 하고, 몸을 한껏 뒤로 젖혀 기지개를 펴는 바람에 뒷사람들이 움찔하면서 몸을 피하기도 하였다. 바로 뒤에 앉은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불안했을 것이다.

기도하는 시간 그 여자가 어떻게 하는가 보고 싶어서 나는 가끔 눈을 떴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는 기도하지 않았다. 앞뒤 포켓을 뒤지고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얼굴을 옆으로 돌릴 때 보니까 예쁘지는 않아도 동글동글 귀엽게 생겼는데 서른이 될까 말까 애띤 얼굴이었다.

나는 예배에 몰입하지 못했다. 가끔, ‘자기 안에서 목표를 찾아라’, ‘나를 통제하고 운영하는 능력을 키워라’, ‘허리띠를 조이고 스스로 책임을 물어라’ 토막토막 이런 말들이 귀에 들어오긴 했으나, 나는 건성으로 앉아 있었다. 그 여자를 관찰하는 데에 정신을 빼앗겼던 것이다.

마지막 축도가 끝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는 여자부터 살폈다. 그러나 언제 나갔는지 이미 자리에 없었다.

오늘 또 다른 사람들이 관찰했다면 집에 돌아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교회에 와서 예배에는 전혀 관심이 없이 어떤 여자만을 줄곧 관찰하는 여자가 있더군요.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고 가끔 눈을 뜨더라구요. 오늘 우리 교회에는 두 명의 이상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미친 여자와 그 미친 여자에 빠져 있는 여자.’

 

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휘 하나’를 쓰라고 했을 때, Q는 ‘광기’라는 말을 선택하였다. 다른 학생들이 사랑, 그리움, 별, 꽃 등을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고 주장할 때 Q가 선택한 ‘광기’라는 말은 나를 다소 흥분하게 하였다.

Q는 사랑 하나에 목숨을 걸고 결혼하더니 결혼 생활 2년여에 이혼을 했고 이혼 후 얼마 후에 다시 결합하였다. 가끔 마주치는 Q의 얼굴에는 고즈넉한 우수가 깔려있다. 나는 Q의 삶을 가끔 ‘광기’와 연결시키곤 한다.   

흔히 ‘미쳤다’고 말할 자리에서 ‘돌았다’ 혹은 ‘빠졌다’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미치다’는 도달하다, ‘돌다’는 회전하다, ‘빠지다’는 몰입하다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최후와 극단에 ‘도달하고’, 각도가 정상에서 어긋나게 ‘회전하여서’, 어느 한 곳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상태가 광기인 모양이다. 계집에 ‘미치어’ 살림을 그르치고, 노름에 ‘빠져서’ 세상을 모르는, 돈을 보면 머리가 ‘도는’ 그런 상태.    

그렇다면 광기란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기형적인 편중을 이름인가. 선인들이 강조한 중용을 외면하고 한 곳에만 몰두하여 다른 것은 돌보지 않는 지경, 그것이 광기라면 나도 자주 거기 갇힌다.

광기는 열정이고 사랑이라고 긍정하고 미화하는 소리도 높다. 광기라고 할 만한 뜨거움이 없이는 예술도 문학도 맹물처럼 시시할 것이다. 쓰러지지 않을 만큼만 몰입하고 떨어져 죽지 않을 만큼만 벼랑에 닿아, 조금은 어긋나더라도 아주 비정상은 아닌 시선으로 개성을 지켜나가는 일, 그러나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현대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쓸쓸함을 위하여> 등 십여 권이 있음.

                 한국문학상, 윤동주 문학상 수상함. 호남대학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