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쩍은 일탈

 

 

                                                                                     최병호

내 탓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게 한 (起緣)은 되었을 것이다. 허락 없이는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던 그 시절 그 분위기에선 그런 짓도 한 용기일 수 있었기에 말이다.

그날 나는 ‘꺽다리’ 부(副)씨가 자리를 뜨자마자 별생각 없이 그의 안락의자에 덥석 앉았다. 등받이가 포근했다. 자지바지하게 기댄 채 왼쪽으로 살짝 밀어보았다. 가뿐하게 원을 그리곤 여운처럼 반 바퀴를 더 돌았다. 테이블 뒷벽의 텅 빈 공시판(公示板)이 조용히 눈앞을 가로막았다. 어쩐지 허전하게 느껴져서 백목을 쥐었다. 엉뚱하게 또닥거려졌다.

“무두일(無頭日).”

“36방향 앞으로 갓!”

무슨 일이람. ‘악바리’ 장(長)씨 못지않게 목을 세우고 있던 ‘꺽다리’마저 갑자기 자리를 비운 터라, ‘무두일’이야 그렇다 쳐도 ‘36방향 앞으로 갓!’은 무엇인가. ‘무두’란 말도 그 ‘두’자가 두령(頭領)을 말하는 것인지 두목(頭目)을 지칭하는 것인지 애매하지만, 어떻든 뒷말이야말로 돌출변이가 아닌가.

  

까마득한 지난 날, 내 고장이 계엄사령관의 포고령만으로 톱니바퀴 돌 듯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사령부에서 중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불러 제식훈련을 시켰다. ㅅ이라는 중위의 서릿발 같은 구령일하(口令一下)에 군대처럼 편제된 학생들의 행(行)과 오(伍)가 사방팔방으로 정연하게 분산되었다가 되돌아오곤 하는 훈련이었다. ‘36방향 앞으로 갓!’은 그 분산의 막바지 구령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방향전환이라면 고작 전후좌우, 반좌반우(半左半右) 정도밖에 모르던 내게 36방향이란 분산은 긴장 속의 다채로운 경이였다. 나는 그때 그걸 무슨 자유의 본령이나 된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런 역설이 불쑥 튀어나온 게 아니었을까! 아련한 그 입력이 새삼 엄청나게 느껴졌다.

 

악바리는 자주 자리를 비웠다. 침을 튀기는 평소의 사자후(獅子吼)와는 다른 일면이었다. 걸핏하면 업무협의차 상도(上道)였다. 출근도 안 하고 직행하는 경우도 있었고 잠깐 얼굴만 내밀곤 서둘러 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직무일반을 사실상 꺽다리가 챙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는 비교적 꼼꼼한 성미로 악바리의 강변에 대해서도 이따금 정중하게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매사를 장중(掌中)에 넣고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었다.

그날도 악바리는 상도하고 꺽다리가 목을 세우고 있었다. 공교롭게 오후에 ‘관내 기관장회의’가 소집되어 꺽다리가 훌떡 자리를 떴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의 자리로 다가가 그런 어설픈 낙서를 하게 되었다.

동료 간의 정의 때문인지 나의 그런 비례(非禮) 따위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허락 없이는 자리를 뜰 수 없는’ 그 서슬은 허락할 사람의 부재(不在)로 ‘베잠방이에 무엇 새듯’ 슬금슬금 ‘36방향’으로 빠져나갔다. 틀에 짜인 행보가 퇴근까지 자유로운 시·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갑시다!”

나도 손을 번쩍 들었다. 삽시간에 별관 탁구대 둘레로 자칭 챔피언들이 모여들었다. 그동안 몇 번인가 은밀히 모인 바는 있었지만 그날은 마치 공식행사처럼 다들 당당했다. 꽃불 튀는 열전, 파이팅 소리도 그 손길만큼이나 날카로웠다.

퇴근길에 상호마저 ‘그 집’인 그 술집에 들였다. 먼저 자리 잡은 바둑파트의 동료들이 손아래 삼촌이나 만난 것처럼 반겼다. 한참 ‘그대는 죽일 놈, 나는 살릴 분’ 하고 거품을 투기는 사이 하루해가 가볍게 저물었다.

그 후, 나는 눈여겨 살피다가 ‘무두일’만 되면 이를 재빨리 공시하는, 직제에도 없는 기록계가 되었다. 그게 거듭되면서 퇴근길 ‘그 집’에서의 ‘주흥담론’은 차츰 빛깔을 달리했다. 너, 나가 아닌 나라와 민족의 문제가 되었다. 처음엔 우리뿐인데도 주변을 쓱 한번 훑어보고, 조심스럽게 ‘잡혀갈 말로’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매번 뱃장이 두둑해졌다. 누군가가 들으면 진짜 ‘덜컥’할 수밖에 없는 대담한 나라걱정들을 되뇌었다.

우리는 그런 이심전심을 ‘양식(良識)의 발현’이랄까, ‘민주의식의 구현’이랄까, 제법  그런 것으로 치부했다. 그렇다 보니 ‘그 집’에서의 한 순배는 비밀결사라도 하는 것 같은 근엄한 분위기가 되기 일쑤였다. 자투리 시?공의 묘한 변태지만 그에 대한 뿌듯한 자긍심은 얼굴을 확확 달아오르게 했다.

 

세월이란 역시 무상(無常)한 것. 정례적인 인사발령으로 모두들 이리저리 옮기다 보니 그야말로 ‘36방향’으로 헤어진 꼴이 되었다. ‘허락 없이는 자리를 뜰 수 없는’ 그 휘잡기 따위 서슬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 두 상사는 아무래도 불편을 좀 겪지 않을까 했는데 끄떡없었다. 오히려 ‘악바리’는 상경(上京)을 걱정해야 할 자리로 영전이 되고 ‘꺽다리’도 승진하여 빳빳한 장(長)씨가 되었다.

그렇던 어느 날, 서울 역 대합실에서다. 등 뒤에서 내 어깨를 덥석 조이는 손길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돌아서보니, 만면에 웃음을 띤 왕년의 상사다. 그는 재빨리 내 손을 감싸 쥐며 흔들어댔다.

“아니! 안녕하셨어요. 여전히 바쁘신가 봐요.”

“참 오랜만이야. 거기서도 탁구 잘 하시고? 그때는 여러 가지로 고마웠어요. 그 바람에 ‘무두일’에도 누구 하나 뺑소니친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야.”

“예?!”

나는 갑자기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우린 결국 그의 손바닥에서 곱사춤 춘 격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어쩜 그럴 수가?

웃는 낯으로 그냥 겸허하게 헤어졌지만 치미는 허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쟁취한 것 같았던 그 ‘자투리 시·공’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에 이은 ‘그 집’에서의 ‘우국담론’은 그럼 무엇인가. 그것도 또한 까마득한 중학생 시절, 계엄사 운동장에서 익혔던 ㅅ 중위의 ‘36방향’이란 땅바닥놀이 같은 것이라 해야 할 것인가. 세상 참….

웬일인지 서울 역 대합실 천정이 자꾸만 올려져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