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후하는 봄

 

 

                                                                                    김옥분

넓은 창을 통해 들어 선 햇살은 나른한 일상처럼 납작이 엎드린다. 맥 풀린 자세는 설핏 졸음을 불러오고 잠깐 헛꿈에 허우적대다 화들짝 놀란 고개를 추스른다. 늘어진 일상을 일별하듯 길게 기지개를 펴고는 이쪽저쪽을 헤집고 다닌다. 오종종한 집안 살림이래야 때 빼고 광내도 그만그만한데 분주하게 설쳐대는 내 꼴이 조금은 한심하다.

마무리처럼 비누 거품을 허옇게 일구어 빡빡 소리 나게 손을 씻으며 제법 여유를 부리 듯 손가락을 펼쳐 보는 것이다. 주름이 서너 개쯤 잡힌 굵은 손마디는 지병 같은 일복을 지닌다. 훌쭉 키가 자라 종아리가 훤히 드러나는 댕강 바지를 입은 선머슴 같은 모양새다.

나른한 햇볕 탓이었을까. 흔한 실반지 하나 끼우지 않는 긴 손가락은 더 볼 품 없어 보인다. 평소 취향이 장신구로 치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늘 뒷전으로 밀려나던 패물함을 뒤적였다. 주인의 소박에도 여전히 제 빛을 발하고 있으니 보석은 보석이다.

결혼의 의미를 담았던 원석반지들은 그저 바라보라고만 할 뿐 내 손가락을 거부했다. 그 틈사이로 18k의 링 반지 하나가 눈에 들었다. 안쪽으로 1-8이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반지의 자리는 분명 약지였건만 손마디에 걸리고 마는 것은 세월의 흔적이다.

3월 하늘이 무겁게 내려와 있던 날이었다. 나는 너무 긴장감에 사로잡혀 잔뜩 힘을 준 눈과 입가에는 작은 경련이 일었다. 이름 세자를 꾹꾹 눌려 쓰고는 하얀 분필 가루가 묻은 손을 맞잡으며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라는 말을 서두로 일 년을 잘 지내자며 온갖 수식어를 남발했었다. 어쨌든 무사히 치룬 첫 시간 후의 내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더구나 학창시절 희망사항 란에 조차 기입해 보지 않았던 교사가 되었다. 인생은 운명처럼 내게 예기치 못한 일을 순명처럼 받아들이게 했다. 사도정신에 몰두하기 보다는 내 자신의 소명의식에 들떠서 우왕좌왕했었다. 어떤 연유였는지 다음 해부터 담임을 맡았으며 더군다나 학년 담임 중에 여교사는 나뿐이었다. 한창 사춘기에 빠진 여고생들의 예측 불가능도 내 몫이 되었다.

미간에 내 천자를 그리던 날이 더 많았던 학년을 마감하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정성스럽게 포장한 반지를 내밀었다. 아마 뿌듯함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앞섰던 것 같다. 그 이후로 매년 새로운 아이들과 엇비슷한 날들을 이으면서 반지는 제법 오랜 기간 손가락에 머물면서 성찰의 좌표가 되기도 했다.

세월의 순리처럼 삶의 한 부분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내 청년 시절을 반추할 만큼 의미를 가졌던 반지도 슬그머니 자리에서 벗어났다. 가끔은 예전의 그 목소리들이 전화선을 타고 온다. 열망으로 끊임없이 가슴앓이를 하던 그들은 더 이상 진부한 인생을 말하지 않는다.  그날그날 같은 일상에 진절머리를 내다가도 배시시한 행복을 내보이는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해 간다.

손마디에 걸려 내려가지 않는 반지를 두서너 번 회전시켜 본다. 변심한 애인에게 억지로 매달리는 안타까운 형상이다. 손가락 마디에 걸려 넘어서지 못하는 반지가 지금의 내 모습이지 않을까. 언제나 머물고 있는 자리에서 부족함을 불평하며 허덕였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은 봄날 잠깐 단잠 속에 꿈처럼 스며들 듯 한 시절을 놓고 간다.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변신으로 우리 곁에 머물지 않을까. 내일이면 오늘을 잊었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 그 오늘을 떠올린다. 새끼손가락에 끼어진 반지는 아주 헐겁다. 어쩌면 내 손마디는 옹골찬 희망을 내비치는 표상이지 싶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날을 늘 새로운 기운으로 맞이하는 기원의 역할처럼 말이다.

 

 

1998년 1월 <<책과인생>> 수필공모당선으로 등단

                 2001년 <<문학21>> 수필문학상 수상

                 에세이 포럼 회장 엮임, 에세이 플러스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