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정지

 

 

                                                                                        오정순

나는 한동안 토요일마다 인사동에 다닐 계획이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여러 갈래인데 매주 다른 길로 다니는 중이다. 집에서 1차로 압구정동까지 버스로 간 다음, 압구정역에서 안국역까지 전철을 이용하는 날이다.

역사에서 전동차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남자를 만났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번도 씻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남들이 보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돈을 세어 주머니마다 분산하여 넣고 있다.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시선을 흩뜨리지 않았다. 글을 쓰면서부터 모든 대상을 집중하여 관찰하는 버릇 때문에 가끔 아이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하지만, 사람을 관찰할 새로운 대상으로 보고 있는 내가 싫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제법 많은 돈을 세는 것을 보면서 조금 안심했다.

전동차를 탔다.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앞에 한 돌쯤 지난 아기를 안은 남자가 우는 아기를 어르느라고 진땀을 뺀다. 1년만 지나면 내 아들도 저렇겠거니 생각을 하며, 혹시 넣어둔 사탕 한 알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무심결에 핸드백을 뒤진다. 없다.

지퍼를 연다. 그 안에 수놓아진 장신구 나비가 나왔다. 얼른 집어 들고 아기 앞으로 갔다. 아기는 신기한 듯 뱅글뱅글 돌리는 나비를 보다가 울음을 그쳤다. 나는 손가락을 내밀라고 했다. 아기는 잘 따라 했다. 이 때다 싶어서 얼른 아기 손가락에 끼워주고 웃어보였다. 아기도 따라 웃었다. 마치 작은 인류애를 실천한 듯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후, 두 정류장 쯤 지나 그들이 문 있는 데로 가자 어디선가 날씬한 여자가 그 아기의 엄마로 등장한다. 인디언핑크빛 털 점퍼를 입고 고운 손에 매니큐어를 정갈하게 발랐다. 긴 손가락을 곱게 폈다가 가방의 손잡이를 잡으며 그 아기의 엄마가 되어 문을 빠져 나갔다.

어이가 없었다. 아기는 엄마 쪽으로 가자고 보챈 것이었다. “세태구나” 싶어 우리가 살아갈 이 시대에 대한 정신교육을 받은 것 같았다.

 잠시 후, 역사에서 만났던 그 남자가 구걸의 손을 내밀고 다닌다. 다른 곳을 거쳐 내 앞에 서서 손을 살짝 건드린다. 나는 “오늘은 마음 닫았음”이란 듯 입을 다물고 반응을 하지 않았다. 대체로 내 앞에만 오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내 얼굴에 “나는 주겠음”이라 써진 것 같아 나도 버텨보았다. 그 남자가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전동차를 타고부터 내내 커다란 염주를 무릎 위에 놓고 돌리던 내 앞의 남자가 속도 모르고 들으라는 듯  외친다.

“이리 오슈. 줄 사람을 봐가며 졸라야지 안 줄 마음인데 서 있으면 되겠수?”

여느 때 같으면 얼굴 붉어질 수 있는 상황인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속으로 ‘많이 주슈’ 라고 말한 듯 한데 표정으로 읽었을라나 모르겠다.

그 남자는 호주머니에서 200원을 꺼내 건네주고 나를 쳐다보았다. 하마터면 신음소리를 낼 뻔했다. 인색한 사람은 인색해 보이는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했던가. 나는 웃고 싶었지만 가만히 쳐다보고 웃어주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너나 잘 하슈’ 할 걸 그랬는가 싶다.

그는 다리를 떡 벌리고 앉아서 무릎께에 염주를 든 손을 얹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만인이 보는 자리에서 보란 듯이 염주나 묵주를 굴리는 사람치고 상당히 괜찮은 사람 드물다. 성서 속의 ‘과부의 동전 한 잎‘도 아니고 남 야단쳐가며 내미는 동전 두 잎의 신사는 내 눈에 참으로 딱해 보였다. “나 착하오”라고 욀 것도 못되는 인격의 길이, 잘라서 쓸 곳도 없을 것 같은데 혼자서 득의만만이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나도 언젠가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라도 상대적으로 저런 기분이 들게 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으니까 기분이 야릇해졌다.

안국역에서 내려 인사동 허리께에 이르렀다. 지난주에 찻잔의 뚜껑이 깨져서 어느 가게에 들러 굴러다니는 것을 2000원을 주고 샀는데 맞지 않아 그와 유사한 제품이 있는 가게에 들렀다. 뚜껑만 파느냐고 물었더니 상세히 묻고 지하 창고에서 가지고 나왔다. 무늬가 다른 것보다는 민자로 색만 같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찾아왔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그냥 가져가라고 한다. 조금 전의 상처 입은 마음이 금방 나아버렸다.

우리 안에는 사랑하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낭패보고, 그 낭패로 해서 일시적이나마 손이 오므라들고, 그 여파로 생색내는 사람을 만나면 상처받고, 상처 입은 마음은 누군가의 너그러운 손과 친절한 마음으로 치유 받는다. 나는 그런 세상을 1시간 안에서 다 보았다.  목적지의 계단을 오르며 1시간의 역사를 정리한다.

상처에 갇혀있지 말기, 1회의 경험을 일반화 시키지 말기, 구시대 감각에 매여 있지 말기,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기, 친절한 태도를 이용하지 말기, 그리고 낭패감을 맛보는 횟수가 늘어나더라도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기를 약속한다.

내 마음은 제어장치가 약해 연민으로 한번 열리면 가속이 붙는다. 그러다가 급히 멈추면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다른 후유증을 낳으며 중심을 잡을 때까지 시간이 걸린다.

도로표지판의 ‘일단 정지’ 선은 차 사고를 막기 위한 예비선이다. 감정도 충격 사고를 미연에 예방해가며 사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세상 속으로 나가야 사람을 만나고, 만나야 일이 생기고, 일이 생겨야  깨닫고, 깨달아야 반복 실패하지 않고, 실패가 적어야 ‘관계’에 자신이 붙는다.

나는 토요일이 돌아오면 지난주에 깨달은 내용을 가슴에 담고 나가서 머리보다 가슴이 앞서 나가는 행동 특성을 조율하기 위해 ‘일단 정지’선에서 한번쯤 멈추어 설 것이다. 사랑은 묻고 원하면 들어주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하면서 완성되는 것이니까.

 

 

1993년 현대수필로 등단. 현대수필 편집위원 및 초대문인회장역임

한국문인협회회원 펜클럽 회원. <전 >안산초등학교 교사. 계몽사 편집디자이너

저서 ≪그림자가 긴 편지≫ ≪나는 사람꽃이 좋다≫ ≪줄의 운명≫ ≪지갑속의 쪽지 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