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밭 사이에서 길을 잃다

 

 

                                                                                     최순희

지난여름 남제주 감귤밭 한가운데 엉겁결에 별장을 마련하게 된 지인을 따라 내려와 있습니다. 공항에서 한 시간, 성산일출봉에서 7분 거리라는데, 거실 통유리 창으로 저 멀리 일출봉이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입니다. 이웃이라곤 옻닭을 파는 식당 하나뿐 인가가 없어서겠지요? 인기척에 놀란 거미가 황급히 감귤나무 그늘로 달아나 사태를 관망할 뿐, 한낮에도 전후좌우의 사위는 고요하기 그지없습니다.

누드 시멘트벽의 양옥은 애초 어느 가난한 젊은 건축가가 땅주인인 토박이 도예가와 살려고 지었으나 헤어지게 되어 판 거라는데, 생각보다 크고 단단하고 또 모던한 양식입니다. 집 옆으론 도예가의 도자기 공방, 그 옆엔 그녀가 돈이 생기는 대로 쉬엄쉬엄 한 귀퉁이씩 지을 거라는 살림집터이지요. 제 지인은 집을 빙 둘러 버려진 듯 유순한 둔덕과 연못, 거기 무더기무더기 피어난 쑥부쟁이와, 겨울이면 기막힌 향기를 내뿜는 키 작은 제주수선화, 검은 돌담, 감귤밭 사이에 누워 있는 고사리로 뒤덮인 주인 없는 무덤… 등에 마음을 빼앗겨 얼결에 이 집을 사게 되었더랍니다.

독신의 여교수인 그이는 무얼 소유한다는 것이 서울의 작은 아파트 한 칸만으로도 번잡스런 처지이지만, 이 섬을 워낙 좋아하고 또 일상의 공간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어 덜컥 떠맡게 되었다는군요. 온 나라가 ‘일상의 공간’ 하나 마련하는 문제로 너나없이 아우성인 판국임을 생각하면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이겠지요. 한달에 한번쯤이라도 바다를 건너 날아와 며칠이라도 사람 기운을 맡게 하고 관리해줘야 하는 그를 따라 온 저로선, 성가시게 소유 안 해도 되고(물론 능력도 안 되지만) 한 며칠 감사하게 누리기만 하면 되니 집주인보다 더 큰 사치를 부리는 셈이겠지요?

기물이든, 집채든, 사람이든, 일단 소유(‘소유’?!)를 하게 되면 ‘적절한 관리’를 요구하며 끝없이 까탈스럽게 제 존재를 증명하려 들거나 관계 확인을 요구하더란 사실에 진저리를 치면서, 어차피 힘도 안 닿는 ‘소유’는 그만두고 ‘향유’나 하자고 일찌감치 분수 파악을 끝낸 저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호사인 것이지요. 은근히 신이 나서 집을 사라고 부추긴 저 역시도, 집주인처럼, 작은 황야를 연상시키는 무심한 주변풍광에 홀연한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며 심호흡을 합니다. 바로 그 맛을 보라고 초대해준 것일 터이지요.

그런데 어제 낮에 만난 땅주인의 하소연으로는, 여름내 풀을 베어주고 여기저기 꼭 알맞은 꽃을 찾아 심느라 허리 펼 날이 없다는 거예요. 너른 뜰은 그 여인 것이고 집은 이쪽 여인 것인 묘한 소유형태인데, 객인 제게는 가꾸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이 다른 이 정황도 흥미롭거니와, 손대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황량한 효과를 위해서는 더욱더 세심하게 신경 써서 다듬고 풀을 베어줘야 한다는 속내가 글쓰기와도 별다름 없는 일인 듯하여 웃음이 납니다. 사람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기 위해선 만드는 사람이 편해선 안 된다는 조용필의 말이나, 자연미를 최상으로 치는 인간심리를 꿰뚫는 이른바 ‘쌩얼 화장’의 인공자연미를 위해선 더한층 고도의 화장술이 필요하다는 아이러니를 곱씹게도 되고 말이지요.

어제는 도예가가 일러주는 대로 뜰의 무순과 무청, 쑥, 민들레 잎 등등을 뜯어 제주 흙에 감귤나무를 태워 색을 낸 그녀의 오지그릇에 향긋한 비빔밥을 해먹고, 오후엔 신양 해수욕장과 섭지코지를 오래도록 거닐었습니다. 청이끼 같은 파래가 깔린 해변, 겹겹이 색깔을 달리하는 물빛으로 탁 트인 맑디맑은 바다…. 저 멀리 수평선을 따라 커다란 배가 수륙양용선처럼 떠가는 게 신기하여 한참 바라보았는데, 나중에 보니, 그럼 그렇지, 실은 그저 밑 부분을 바닷물 빛으로 칠한 것뿐이었어요. 우리는 스스로의 상상력에 유쾌해져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비 오는 날의 목석원과, 이젠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타버렸으나 그래도 드넓은 억새밭의 늦가을 정취가 여전히 가슴을 뒤흔드는 산굼부리와, 비밀스런 삼나무길이 어딘가로 가없이 이어지는 옛 독재자의 별장이었더란 송당목장과…. 이 섬은 개발이란 이름으로 더 이상 훼손하지만 않는다면 어디 한 곳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번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은 끝없는 무밭 한가운데의 아뜩한 정적일 듯합니다.

사흘째 날, 늦은 점심을 먹고 새로 난 포장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길가는 온통 청청한 잎의 무밭과 감귤밭, 그리고 다시 무밭과 감귤밭. 그 사이에 갈기를 휘날리는 당근밭이 한 뙈기 있어 몰래 하나씩 캤지요. 가늘고 기다란 게 맛있더란 얘기를 주고받으며 쑥 잡아 뽑고 보니 짧고 굵은 놈. 잠깐 실망했지만 밭가의 수돗물에 씻어 한입 깨무니 의외로 참 달고 맛있더군요.

온 길로 되짚어 돌아가야 했겠으나, 싱싱한 당근 맛에 모험심이 솟구친 것이었을까요. 찻길을 버리고 우리는 밭 사이로 난 고샅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성산일출봉을 등대삼아 각도를 가늠해 보자면 무밭 사잇길로 잠시 걷다보면 분명 집이 나올 것 같았어요. 아까 걸어온 도로가 둥그렇게 휘어졌던 것을 생각할 때 직선거리의 지름길이 될 듯도 했고요. 이 안쪽은 사방이 야트막한 검은 돌담으로 나뉘어진 무밭뿐이었는데, 제가끔 크기가 다른 조각보를 구불구불 이어 붙인 듯한 밭뙈기들의 조형미도 재미날뿐더러 짙푸른 무밭 위에  내리는 늦가을 하오의 햇살을 받으며 두런두런 제주 고샅길을 걷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한동안은요.

어느 순간 문득 이야기를 멈춘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이미 반시간 남짓이나 밭 사이를 걸어왔는데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종잡을 수가 없고, 농부들도 일요일은 쉬는지 방향을 물어볼만한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까는 거실에서 볼 때와 같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던 일출봉이 지금은 토라진 애인처럼 비스듬히 돌아앉아 있는 것이었어요.

성산일출봉이 좀 변덕스럽더란 거야 엊그제 이미 눈치 챈 일이었지요. 맑은 아침나절에는 거실에서도 손에 잡힐 듯 또렷이 바라보이던 자태가 오후 들어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기 시작하면서는 밑둥은 사라진 채 공중부양으로 어슴프레 떠 있는가 싶더니만, 차를 마시다 고개를 든 한 순간엔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알 수 없는 막막한 잿빛 허공 뿐, 언제 거기 해뜨는 봉우리가 있었느냐는 듯 종적조차 가뭇했었거든요.

가슴이 파닥이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청청하기 그지없던 무밭 풍경과 사위에 가득한 정적이 오싹 두려워지고, 머지않아 해가 기울 텐데 이러다 길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평화롭기 그지없는 제주 무밭 한가운데서 길을 잃다니요?

고집스레 앞으로 좀더 나아가던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되돌아 걷기 작했습니다. 미로처럼 뚫린 어슷비슷한 고샅길을 한편으론 혹시 찻소리가 들리나 귀를 기울이고 또 한편으론 일출봉의 각도를 연신 살피며 종종걸음 치노라니, 먼 도시에서 날아와 고요한 제주 무밭 한가운데를 헤매는 우리의 모습이 우리 삶의 어떤 비의에 대한 은유만 같아 핫! 핫! 큰소리로 웃고 싶어지기도 했어요.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별안간 찻길이 나타나더니 미로 어느 구멍에선가 트럭 한 대가 나왔습니다. 무작정 차를 세워 얻어 타고는 “드랭이(들) 가든!” 하며 옻닭집 이름을 외쳤겠지요. 트럭에서 내린 우리는 앞서 산책을 나갈 때 봐둔 이웃의 갈아엎은 무밭으로 내려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천연스레 허리를 굽혀 남은 무를 몇 개 뽑아왔습니다. 저녁 반찬으로 무 조림을 해먹고도 이틀이 더 지난 지금, 저기 말갛게 일직선으로 앉아 있는 일출봉을 바라보면 아득해집니다. 꿈이었나?

지금, 내 생의 다시 못 올 순간들을 밟아 지나가고 있다는 인식이, 무밭 사이 고샅길을 헤매던 하오처럼 선연했던 적도 별로 없었던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