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야, 유야무야

 

 

                                                                                         배채진

출발 두 시간 후에 하동 터미널에 도착, 악양 행 완행버스로 갈아탔다. 발을 저는 할머니가 섬진강 벚꽃나무 옆에서 내릴 때 눈은 본격적으로 광기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예보는 있었지만 이렇게 쏟아질 것 같은 날씨는 아니었는데 지리산 남부 능선 끝자락 가까이에 오니 일기가 달라진 것이다. 흩날리는 눈이 뒤뚱뒤뚱 겨우 걸음을 떼는 할머니에게 덤벼드는 형상이었다. 한 명, 두 명 떨어뜨리던 버스는 악양 골 맨 안쪽의 동매교 까지 왔다. 이번엔 내가 떨어질 차례다. 난 이 버스의 마지막 남은 한 명 승객이었다.

차밭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다. 마침 눈은 소강상태, 틈을 잠시 내어 주고 있었다. 언덕에 서서 돌아보니 악양 벌판이 저 끝 평사리, 그 너머 섬진강 찻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눈발 때문에 훤히 보이지는 않았다. 배낭을 내려 놓자말자 한 잔의 커피, 서둘러 밭으로 나갔다. 농막에서 마시는 커피는 늘 ‘바로 이 맛’이다. 커피 물 끓는 소리도 늘 상쾌한 굉음이다.

오늘 할 일은 거름 포대를 옮기는 일. 여름 이후로 벼르고 벼르던 일이다. 물 머금었기로 무거워서, 오십 포대라 양이 많아서, 엑기스처럼 번져 나오는 닭똥 진액이 볼수록 겁이 나서 차일피일 미룬 것이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번엔 각오를 단단히 했다.

냄새는 사라졌고 진액은 말랐으며 무게도 가벼워졌다. 한 포대씩 옮기다가 두 포대를 시도했다. 눈 쏟아지기 전에 다 옮겨야겠다는 조바심이 무리를 범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외 발통 리어카, 소위 일륜 리어카의 화물 적재량은 한 포대다. 외발통이니 여차하면 옆으로 쓰러지게 된다. 조심조심 운전하여 부릴 곳에 겨우 도착했다. 굴곡이 심한 밭이랑을 넘는 일은 그야말로 ‘돌진, 적진 앞으로’였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니 힘이 부친다.

좀 쉴 겸해서 이번엔 구덩이를 팠다. 팔 때 차나무로부터 30센티 이상 떼어서 파라는 K의 충고를 잊지 않았다. 감나무, 매실나무 옆에도 팠다. 모두 백여 개. 슬슬 내리던 눈은 본격적 하강 작전으로 돌입한다. 금방 그칠 것 같지가 않다. 바람이 숲을 때린다. 시계는 거의 제로였다. 삽을 던지고 걸어 나왔다. 나와서 보니 바른 걸음이었다.

농막의 라디에이터가 들어온 나를 온기로 감싸 준다. 밖을 본다. 악양 벌은 혼미와 환상을 번갈아 연출하고 있었다. 쏟아질 땐 혼미였고 멈출 때는 환상이었다. 판 구덩이를 눈이 다 채운다. 거름 들어갈 자리를 눈이 차지해버린 것이다. 곤두박질치듯 서 있는 리어카 위에도 눈이 쌓인다. 다시 나가야 말아야 하나 잠시 번민에 빠진다. 다지고 다닌 결심을 수행하려면 나가야 한다. 하던 일을 중단해야 할 정도의 눈은 아니다. 하지만 금방 녹아 버려 옷이 젖는다. 우물우물 하다가 내일로 미루었다. 자칫하면 결심이 유야무야될 판이다. 내일 못하면 유야무야되고 만다.

 

밤이다. 홀로 새는 농막의 눈 내리는 밤은 깊고도 깊었다. 비록 끝자락이기는 하지만 지리산 남부능선 시루봉 아닌가. 오늘 따라 적막은 더 두껍다. 하나 둘 켜진 마을의 가로등 불들만 멀리서 눈 속에서 흐늘거린다. 워낙 귀한 불인지라 하지만 또렷하다. 그들은 이 밤,  설원을 지키는 홀로 파수꾼이다. 평소에도 귀하던 움직임이 오늘 밤엔 아예 없다. 어쩌다 움직이는 자동차 불빛이 눈 속에서 희미하게 붉다. 번져 나가는 색상이다.

밤이다. 나 없어도 혼자서 잘 자겠느냐고 걱정하는 편(나는 집 사람을 편이라 부른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일찍 불을 끄고 자리에 눕겠다고 했다. 하지만 바람과 눈, 말하자면 설풍은 나로 하여금 잠자리에 들지 못하게 했다. 초저녁엔 초저녁이라서 자리에 들지 않았지만, 밤이 깊은 지금은 내리는 눈 때문에 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불을 끝내 켜지 않았다. 불을 켜서 쫓아버리기엔 아까운 눈빛이었다. 커튼 걷힌 창밖에 시선을 보내고 있는 시간이 한참 흐른 것 같았다.

눈 내리는 밤을 산기슭에 와서 눈 뜨고 혼자서 보내는 밤의 경험은 처음이다. 양초가 있었지만 불붙이지 않았다. “천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는 노래 말이 이 밤 따라 청승스럽게 여겨진 까닭이다. 열한시를 넘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 때까지 무념으로 보냈다.

다시 뜨니 두시 반이었다. 커튼이 훤했다. 고요하다. 몇 개의 마을 불들만 고요를 지킨다. 달이다. 커튼을 여니 달이 웃고 있었다. 형제봉, 칠선봉, 구재봉 등 악양 골의 봉우리들이 달빛 속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달빛 겹친 눈빛이니 더욱 환했다. 악양 골은 설원으로 변해 있었다.

풍경은 경이였다. 우주 속에 있는 듯 했다. 자다가 깬 것 같지 않게 의식은 명료했다. 고립 속에 혼자 있는 밤중이지만 무섭지도 안 무섭지도, 두렵지도 안 두렵지도 않았다. 섧지도 기쁘지도 그립지도 고독하지도 않았다. 별 생각이 안 났다. 내가 있었고 또 없었을 따름이었다. ‘이런 밤을 내가 보내다니’ 라고 생각할 땐 내가 있었고, 설산, 설원 그리고 달, 달빛에 빠져 있을 땐 내가 없는 거였다. 소리는 굉음이었다.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깨어지는 굉음, 폭발하는 굉음이 아니라, 흐르는 굉음이었다. 바람은 흐르고 있었다. 그 땐 또 나의 있음의 의식되었다.

감히 무아지경이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냥 그대로 그렇게 있은 밤이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유야무야였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말하자면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있었던  설야였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유야무야’, 있다고 말하기엔 없었고 없다고 말하기엔 있는 것이 존재자의 존재, 즉 ‘있음’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존재는 ‘유야무야’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 날 밤 나는 유야무야 존재체험 한번 찐하게 한 셈이었다.

해가 떴다. 거름 포대를 다 옮겼다. 결심을 유야무야 시키진 않게 되었다. 편에게 전화했다. 개선장군처럼의 목소리로 보고했다. 설원의 유야무야 지난밤도 숨 가쁘게 말해 주었다.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알아듣게 말했는지 모르겠다.

 

 

<계간수필>로 등단(2004년).

부산카톨릭대 교수. 부산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