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자아

 

 

                                                                                        박현정

어느 모임의 일행과 버스를 타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버스는 힘겨운 비탈길을 오른 후에 학교 건물이 모인 데라고 짐작 되는 곳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과 나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실내에 들어서서 주변을 보니 함께 온 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갑자기 나타난 여러 낯선 무리들의 분주함 속에 있게 된 나는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서성거렸다.

한참 후 나는 다른 방으로 옮겨져 일행을 만났다. 그들은 멋진 옷으로 갈아입고 여유를 부리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딱하게도 나는 알던 이들과 다시 만났으면서도 왠지 위축되어 뭐가 뭔지 모르는 채 어색해 했다.

  눈을 뜨니 꿈이다. 그래도 꿈이니까 괜찮다는 마음보다는 현실 안에서의 내 모습과 꿈속의 상황이 비슷하다 싶어 마음이 외로워진다. 늘 경험하는 이런 상황들이 왜 매번 겪을 때마다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가. 삶이란 하루하루가 새 날이듯이 마음 또한 항상 새 마음이기 때문일까. 내가 잊고 극복했다고 믿은 고뇌가 다시 솟아오를 때면 인생은 그저 끝없는 반복의 다름 아닌가 하고 절망한다.

살아오면서 무엇을 하거나 누구와 함께 하면서 별다른 기쁨을 느껴보지 못한 것만 같다. 진정으로 내가 원한 것은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한 채 그럭저럭 지내온 것 같기도 하고, 사실은 내가 정말로 바라는 것이 뭔지 잘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스스로에 대해서조차 모호하게 인식하다보니 내 가능성도 바라는 바의 확신도 없이 흘러가는가 싶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힐 때면 나를 돌아보며 되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냐고.

뭔가를 선택하여 어느 만큼 하고, 어디까지 가보면 길이 보여 남들처럼 안정감을 누리고 살리라는 기대를 한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보면 희망은 내 어리석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라져 버리고, 정작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느낌과 그 동안 뭘 했나 하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이 일이, 이 사람이 맞겠지 하고 찾아간 길에서 다시 막다른 골목에 이른 느낌이 들고는 한다.

그런 골목에서 내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 된다. 널리 알려진 미국의 한 여류 작가가 쓴 작품 이름이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다. 마음 안에 닿지 않는 열망과 황량한 사막을 안고 살아가는 등장 인물들의 내면 풍경에 공감되는 책이면서, 더 마음을 끄는 것은 책이름이다.

학교 다닐 때 누군가로부터 이 책이름을 듣고 왜 사냥꾼인가 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사는 여럿이 함께 짓는 성격이 강하고 반복되는 계획 속에서 수행된다. 이와 달리 사냥은 함께 시작하여도 결국은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며, 예상하고 계획해도 늘 다른 상황에 맞닥뜨려지기 쉽다. 농사보다 개인의 기량이 더 잘 드러나는 일이 사냥이다. 그래서 책 속의 고독한 영혼들은 사냥꾼이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농사보다는 사냥하는데 적합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보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해야 하는 일에는 익숙하지가 않다. 또 미리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전망하는 적극적인 인생을 살지도 못한다.

어른의 지시에 억지로 움직이는 아이처럼 예상하지도 원치도 않은 상황에 대처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저절로 어떻게 되겠지, 누군가 해주겠지 하는 안이한 환상 속에 허우적거리며 버티다가 막바지에 가서야 내 손으로 하지 않으면, 스스로 애쓰지 않는 한 아무것도 될 수 없음을 실감하는 그 때에야 꾸무럭대기 시작하는 것이다.

삶의 시작에서 나는 기쁨보다 두려움을 먼저 학습한 탓에 조심성이 지나쳐 미리 겁을 먹고 주저앉은 것인가. 아니면 현실 감각이 무딘 탓인가. 변화를 강요당하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는 내 속성을 운명이 미리 감지하고 나를 끌고 온 것일까. 별다른 의욕도 없이, 남다르게 챙겨주는 이도 없이 홀로 헤쳐온 내 시간들이 기적이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를 키운 것은 막다른 골목에 선 자의 위기감이었을까. 시작과 과정 가운데서 나를 에워싸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느낌이 오히려 나를 삶 속으로 던지게 하는 추진력이 되었는가. 그런 절박함이 나로 하여 뭔가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럼에도 삶은 체험하고 누려야 한다는 교훈이 작용하여 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이끈 것 같기도 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외로운 사냥꾼에게도 때로 도취된 상태가 찾아올 것이다. 자신을 존중할 수 있고, 자기만의 개인기가 활짝 피어날 때. 고독 속에서도 충만함이 느껴질 때. 사냥꾼에게는 남과의 경쟁이 아닌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개방적인 성격으로 생애 내내 지속된 명성과 부유함 속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행복한 화가였다고 기억되는 루벤스는 자화상을 별로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 반해 굴곡진 사생활 가운데 자신의 예술적 한계 속으로 파고든 렘브란트는 자기 분석을 통한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로 유명하다. 지나친 자기 응시는 고단한 인생을 가져오는가. 아니면 삶이 고단했기에 자기 속으로 파고든 것인가.

꿈속에서처럼 북적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곁에서 소외감에 젖을 때나, 세상의 속도와 경쟁에 아연할 때면, 문득문득 박탈감이 느껴지며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나를 무겁게 한다. 지나가는 삶 속에서 자기 시간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때는 위험한 함정에 빠지기 쉬운 순간이다. 그것은 지루함이나  불안과 같은 막연한 얼굴로 다가와 마음을 휘저어 감정의 질곡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다루기 까다롭고 지배하기 어려운 것은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복잡한 감정들이 감수성을 키우고, 고통의 에너지를 승화하여 자기 시간을 보내는 방법에 따라 자신이 만들어지는 방향이 잡히기도 할 것이다. 기쁨과 슬픔, 강점과 약점 같은 것들은 단지 하나의 얼굴에 드리우는 명암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세월 속에서 외로움이 지나쳐 나를 속박하지 않기를, 실망감이 차올라 내 마음을 할퀴지 않기를. 버리지 못한 어떤 감정이나 상황이 달려들어 나를 넘어뜨리지 않기를 소망한다. 하늘은 파랗고 햇빛은 가득한데, 내 시간은 어이없이 지나가버리고 어쩐지 무엇에인지 모르게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밀려들 때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고, 분명 나만의 세상이 있었다고 내게 확인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나도 그 많은 삶의 주인공들처럼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었으며 운명의 심부름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이러한 긍정과 초월 사이에서 움켜쥔 자아를 내려놓고 더 큰 나가 되어 가볍고 빛나게 날아오를 수 있기를 꿈꾼다.

 

 

<계간수필>로 등단(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