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도로망

 

 

                                                                                         尹三萬

어릴 적엔, 차 보기가 힘들었다. 큰 길가에 살아야만 목탄을 태우고 지나가는 버스나 트럭 등을 볼 수 있었다.

승용차가 사치품이 아니고 필수품이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홍안의 백발에 면허증을 따고 승용차를 샀다. 이 차로 출퇴근하는 것이 버스보다 훨씬 수월했다. 소시절엔 차를 구경도 못했던 내가 자가용으로 출퇴근 한다는 것이나, 우리식구중에서 아내를 빼고 아들, 딸, 며느리 모두 운전면허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내는 고혈압과 허리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한다. 이웃사람들도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 합병증의 염려가 있으니 큰 병원에 가보는 것을 권하고, 본인도 그것을 희망하기 때문에 확실한 진단을 받아볼 요량으로 서울 아산병원에 예약을 했다.

승용차로 개통한지 수개월밖에 안되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푸른 하늘 아래, 첩첩이 싸인 산골은 확 틔었고 온통 넓은 길바닥뿐이다. 험준한 60령 고개는 쇠 파이프처럼 빵 뚫어 터널을 냈고, 그것이 대전까지 대여섯 군데나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엔 인터체인지를 내어 캄캄했던 산간오지를 환하게 밝혀 놓았다. 덕유산의 늠름한 자태나 산을 휘감아 뻗어 있는 고속도로는 내 눈을 사로잡았고, 짐을 가득 실은 트럭이나 컨테이너들은 거침없이 흐른다. 덕유산 휴게소엔 쉬는 차들이 꽉 차 있고 나는 인삼랜드에서 잠깐 쉬었다가 다시 핸들을 잡았다.

대전에서는 경부고속도로와 만나지고 호남고속도로와 합쳐졌다. 서울방향으로 4차선, 길은 넓어졌으나 광주와 부산 방면에서 오는 차들로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곳에 따라서는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많은 짐을 실은 트럭들은 오르막에서, 힘이 좀 부대끼는 것 같다. 나란히 가는 차들 사이에서 부딪힐까봐 눈이 동글해지고 핸들을 꽉 잡았다.

안양 아들집에서 자고, 양재대로를 거쳐 병원에 갔다. 출근시간이 조금 지났는데도 경마장 부근에서 양재 인터체인지까지 차가 밀려 브레이크를 밟았다, 놓았다 많이 정체되었다. 늘어선 차들은 앞뒤 끝이 보이지 않고 트럭, 택배, 나홀로 차, 컨테이너, 트레일러, 탱크로리 등 차종도 다양하지만 실은 짐도 가지가지였다.

반시간이 훨씬 지나서야 차가 움직였는데, 예약시간이 늦을까봐 마음이 옥죄어 왔다. 낯익은 거리 같으면 걸리는 시간을 짐작이라도 하겠는데, 낯선 길이 되어서 짐작도 못하겠고 마음만 바쁘다. 날쌔게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고, 올림픽 공원을 돌아 병원에 닿았으나 예약시각은 이미 지났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가 검사한 결과를 살펴보곤 고혈압에 대해선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지금대로 치료하는 것이 좋고, 등뼈는 수술할 필요가 없으며 몸무게를 줄이라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한 것을 묻고 싶었으나 다음 환자로 이어졌다. 천리 길을 와서, 겨우 두세 마디 듣고 돌아서려고 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진료실에서 나오는 순간, 순환기모형에 눈이 멈추었다. 가슴 복판에 있는 염통을 중심으로 붉은 핏줄, 파란 핏줄이 온 몸에 뻗어있다. 심장 가까이에 있는 핏줄은 굵고 발과 손으로 가는 핏줄은 가늘었다. 마치 경부고속도로에 얽힌 도로망 같았다.

원료나 제품 그리고 농수산물 등이 빠르게 유통되면 물가가 안정되고 살기 좋으나 길바닥의 요철이 심하거나 바위덩이가 굴러 떨어져서 소통이 늦어지면 물가가 오르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된다. 이와 같이 피톨血球도 산소와 찌꺼기를 정상적으로 실어 나르면 몸이 가볍고 건강하나 핏줄에 장애물이 많아 더디게 흐르면 건강을 해치고, 무리가 온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다.

 정부에서도 원활한 물류를 위해서 새 고속국도를 계획하고 시공하며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심한 고갯길은 낮추고, 굽은 길은 곧게, 좁은 곳은 넓게,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등 시골의 후미진 길에 이르기까지 확장하고 포장한다. 그리고 폭우에 무너진 길이나 산사태로 생긴 흙더미는 포크레인이 파고 덤프트럭이 나르며 불도저가 다져서 눈 깜짝할 사이에 고쳐 놓는다.

 아내가 젊었을 적엔, 몸이 튼튼하여 별 탈이 없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 지면서서부터는 고혈압이니, 비만이니, 골다공증이니 하는 생소한 말을 듣게 되었다. 젊었을 적부터 이런 말을 듣거나 알았으면 사전에 예방하거나 주의했을 터인데,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꼼짝 못하는 판에 이런 말을 들었으니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내 몸속에 흐르는 혈액순환은 마치 양재 인터체인지에 이르는 차의 정체현상 같고, 고속도로 오르막길로 가는 화물차와도 같다. 헌데, 차가 정체되는 것은 길을 넓히거나 새 길을 내면 해결 될 수 있으나, 피의 흐름을 방해하는 널브러진 물건들을 치우는 방법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니 마음만 답답할 뿐이다.

 

 

전 사천초등학교 교장. 경남 서예대전 초대작가. <계간 수필>로 등단(2000년)

한시동인지 <晉陽風月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