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창

 

 

                                                                                        양성숙

나는 가끔 꿈을 꾼다. 인도 비하리주에 위치한 작은 마을 둥게스와리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꿈. 그곳을 떠나 온지 두해가 넘었는데, 아직도 난 수자타 아카데미에서 보낸 1년의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 느낌이다.  

캘커타에서 열차를 타고 10시간 가까이 달려가야 했던 곳, 둥게스와리. 처음 그곳을 찾아갈 때가 생각난다. 내 안의 경계를 허물지 못해 긴장하여 열차에 올랐었다. 땀으로 번들거리는 이방인의 얼굴, 너무나 다른 체취에 거리를 두고 외면한 채  굳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덜그럭거리는 선풍기 밑에 앉았노라니 어느새 이름 모를 친근함마저 느끼며 편안해졌다. 열악한 환경의 열차여행은 고역일수도 있으나 큰 노력 없이 마음을 열어가는 좋은 시작이 되기도 한다. 외국에서의 자원봉사는 내 나라에서, 내 몸에 익숙해 있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낯선 것들 앞에 한발씩 다가가는 시간이기도 하니까.

 

서쪽으로 난 창 가득히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자리에서 일어나 약간 비켜서서 창밖을 내다보니 땀과 먼지에 더러워진 몸을 씻느라 부산스런 우물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힌디(인도어)로 말을 하기 때문에 거의 못 알아듣는 내용들이지만, 제대로 씻지 않으려는 아이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때려가며 박박 씻기느라 투덜대는 소리는 분위기로 알 수 있다. 아침엔 물 길러 온 아낙들의 남루하긴 하여도 아침 햇살과 어우러져 생생하게 살아나는 원색 사리의 행렬이 줄을 잇는 우물가.

내가 일하고 있는 보건실 창은 작은 영화관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태양의 각도에 따라 풍경이 바뀌는 나만의 시네마천국. 하루하루 시간대에 따라 비슷한 일상의 소리와 그림이 연출되지만 조금도 지루하지가 않다.

낮에는 우물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웅덩이에서 소와 함께 물장난 치며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고, 근처 나뭇가지엔 빛바랜 천들이 매달린 채 펄럭이며 바람과 놀고 있다.

‘후둑후둑’ 소리에 또 다시 창문으로 눈이 간다. 이제 겨우 다섯 살쯤 됨직한 소녀가 제 키의 두 배도 넘는 긴 막대를 이용해 높은 가지 끝의 나뭇잎사귀를 훑고 있다. 나무 밑에서는 또 그 소녀만큼이나 어린 염소들이 그걸 주워 먹느라 분주하다.

때로는 다급하고 슬픈 울음에 고개를 들어 내다보면, 한 무리의 염소 떼가 지나고 난 후, 뒤에 처진 어린 것이 새끼손가락 보다 작은 꼬리를 흔들며 젖 먹던 힘을 다해 부지런히 쫓아가며 지르는 비명임을 알 수 있다.

내 영화관에서는 심심치 않게 특집극도 나온다. 예를 들면 어린애가 길가에서 대변을 보고 항문을 강아지처럼 마른 땅바닥에 비벼서 닦는다던지, 그것도 먹을 것이라고 곁에서 기다리는 비쩍 마른 개도 볼 수 있다.

내게 와서 치료받고 돌아가는 아이가 약봉투를 땅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제 엄마한테 등짝을 한 대 얻어맞는 찬스도 눈에 들어온다. 아니면 약과 함께 얻어 입에 물고 나간 사탕을 학교 밖에서 기다리던 동생의 입에 넣어주는 그런 광경도 있다.

작은 창에서 상영되는 영화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아침 등교 길 풍경이다. 하늘색 교복을 입은 스쿨리더(8학년~10학년생)들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무리지어 내 쪽으로 온다. 아침 햇살을 고스란히 받으며 달려오는 그들의 자전거 뒤엔 제 동생쯤 되는 어린 학생들이 태워져 있다. 이에 질세라 흰 블라우스에 짙은 감색 짧은치마를 입은 저학년 학생들이 달음질쳐 오는 모습이 보인다. 학교에 오기도 전에 힘이 다 빠질까 염려 될 정도로 치맛자락을 날리며 달음질쳐 온다. 가난한 마을이라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해 모두 앙상한 체구들이지만 목소리만큼은 쨍쨍 울린다. 여기저기서 “나마스떼!”, “나마스떼!” 하는 인사. 모두의 이마가 반짝이는 것을 보니 벌써 땀이 났는가 보다.

그들은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을길을 가득 메우고 달려오는 자신들이 얼마나 나를 감격시키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의 학생들이 보건실을 이용하고 있지만 환자가 너무 많은 날에는 내가 피곤으로 잠을 이루지 못함도 알지 못한다.

때때로 내 전용 영화관에도 보수할 일이 생긴다. 나무가 썩었거나 개미가 갉았거나 어떻든 창틀 한 귀퉁이에 구멍이 생긴 것이다. 이 구멍으로 처음 한두 마리의 개미가 출현했을 때만 해도 무심했는데, 그리로 엄청난 개미떼가 쳐들어와서 내 발등을 물어 핏방울을 맺히게 했을 때는 창문의 폐쇄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대형화면 부럽지 않은 나만의 영화관을 폐관할 수는 없었다. 빗자루로 쓸어 내버려도 소용이 없어 개미용 살충제를 뿌렸더니 개미군단은 끄떡없고, 창틀에 매달려 곤충사냥을 하던 어린 도마뱀만 못살고 떠났다. 궁리 끝에 시멘트를 얻어다 구멍을 막고 그 위를 테이프로 봉하는 것으로 보수작업을 끝냈다.

마지막 상영은 오후 5시이다. 홀쭉하고 긴 그림자를 데리고 총총히 학생들이 떠나가면 산이나 들에서 풀을 뜯던 가축들이 제 집으로 향하는 길에 웅덩이에서 목을 축이는 전경 속에 마을을 감싸고도는 야트막한 저녁연기가 화면 가득하다.

다시 아침이 오고 창을 열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 모두가 주연이 되는 나만의 영화가 매일 개봉되었던 곳. 화면은 작아도 늘 새로운, 화질 좋은 다큐 프로가 꿈처럼 계속 되었던 그 작은 창 앞에 아직도 내가 서있다.

 

 

2006년 에세이스트로 등단.

인하대 교육대학원 졸업. 인천 글타래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