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아카데미 제13회 강좌요지 】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관하여

 

 

                                                                                      정 진 권

1. 우리 고전수필은 그 표기수단에 따라 한문수필과 한글수필의 둘로 나뉜다. 한문수필은 멀리 신라 최치원(崔致遠)의 「한식제진망장사문(寒食祭陣亡將士文)」을 비롯하여, 고려 이규보(李奎報)의 「주뢰설(舟賂說)」, 최해(崔瀣)의 「예산은자전(猊山隱者傳)」, 조선 초기 권근(權近)의 「기우설(騎牛說)」, 강희맹(姜希孟)의 「도자설(盜子說)」, 중기 이후로는 박지원(朴趾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이서구(李書九)의 「하야방연암장인기(夏夜訪燕巖丈人記)」등, 그 이어옴이 면면하고 그 양도 비교적 풍성한 편이다. 물론 한글수필도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김의유당(金意幽堂)의 「동명일기(東溟日記)」, 유씨(兪氏)의 「조침문(弔針文)」, 작자 미상의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를 비롯해서 조즙(趙城)의 「조천일승(朝天日乘)」, 유의양(柳義養)의 「남해견문록(南海見聞錄)」, 박창수(朴昌壽)의 「남정일기(南征日記)」, 김만중(金萬重)의 「정경부인 해평윤씨 행장(海平尹氏行狀)」등 퍽 다양은 하나 한문수필에 비하면 좀 한산한 편이다. 한글수필에 관해서는 최강현(崔康賢) 선생의 『韓國古典隨筆講讀(고려원, 1983)』을 참고하기 바란다.

오늘 우리가 화제로 삼은 『어우야담(於于野談)』은 본래 한문으로 된 것이다. 그런데 후에 누군가가 한글로 번역을 해서 지금은 한문본과 한글본의 두 가지가 전한다. 일찍이 이병기(李秉岐) 선생이 한글본『어우야담』에서 두 편을 골라 주석한 일이 있는데(『要路院夜話記, 을유문화사, 1949)』) 필자는 대학에 다닐 때 이 글을 읽고 처음으로 『어우야담』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오랜 뒤 김동욱(金東旭) 선생이 이 책의 한문본과 한글본(원문+현대국어역)을 한 책에 나란히 싣고(對譯, 校合) 주석을 단 바 있다(韓國古典文學大系 4, 敎文社, 1984).

필자는 이제 저자 유몽인(柳夢寅)의 삶을 간단히 살펴보고, 이 책(한글본)의 내용을 잠시 검토한 뒤, 이 책에 실린 수필들의 특징을 몇 가지 말해 보고자 한다.

2-1. 유몽인(1559-1623)은 호를 어우당(於于堂, 또는 艮齋, 默好子)이라 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시문(詩文)이 뛰어났으며, 장성하여서는 사서오경(四書五經), 제자백가(諸子百家), 천문지지(天文地志) 등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글씨도 탁월했다. 그는 선조조(宣祖朝)와 광해조(光海朝)에 벼슬했다. 저서로 『어우야담』외에 시문집인 『어우집(於于集)』이 전한다.

그러나 인조반정(仁祖反正) 후에는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반정 직후 「상부사(孀婦詩)」라는 시 한 편을 지었는데, 내용인즉 70 먹은 과부가 젊게 모양내고 시집을 간다면 연지분 앞에 부끄럽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못난 임금(광해군)이지만 버릴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뜻밖에 광해군 복위운동에 가담했다는 무고를 받게 되어 결국 그 아들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나라에서는 정조(正祖) 때 그 지절(志節)을 재평가하고 이조판서(吏曹判書)를 추증했다. 더 자세한 것은 임창순(任昌淳) 선생의 「於于集解題(景文社 於于集·於于野譚 影印本, 1979)」를 참고하기 바란다.

『어우야담』에는, 사람에게는 천명(天命, 命數)이 있어 함부로 해치지 못한다는 뜻의 글이 몇 편 있는데 그렇게 쓴 그도 인조반정 직후 죽임을 당했다. 그렇다면 그 또한 천명인가? 이런 글을 읽노라면 마음이 어둡다.

2-2. 『어우야담』은 야담집(野談集)이다. 야담은 글자 그대로 야사(野史)의 이야기다. 그런데 흔히 이 책을 설화집(說話集)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설화란 그저 이야기라는 뜻이다. 야담이나 설화나 다 아무개(지은이 포함)가 어찌했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 ‘아무개’ 중에는 가령 유성룡(柳成龍, 조선 선조 때의 재상) 같은 유명인도 있고, 안덕수(安德壽, 조선 세종 때의 의원)처럼 오늘의 우리가 그 내력을 잘 알 수 없는 사람도 있고, ‘한 겨집’,‘노비’같이 이름마저 없는 백성도 있고, 경공(景公, 중국 齊나라 임금), 청정(淸正, 일본 장수) 같은 외국인도 더러 섞여 있다. 이런 이야기가 모두 138편이다.

이 이야기들의 구조를 살펴보면 ‘-하더라’식으로 끝나는 것과 ‘하더라+지은이의 감상’으로 끝나는 것의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지은이가 보고 듣고 겪고 읽은 사실들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어서, 재미는 있지만 필자로서는 수필로 읽혀지지 않는다(수필의 소재쯤 될 것이다.). 그러나 후자 중에는 정말 이것이 수필이구나 할 만큼 산뜻한 글이 적잖다. 일반 독서인이 아니고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글에 특히 유의하여 이 책을 읽을 일이다.

2-3. 이제 필자는 이 책에 실린 글들 중 위에 말한 그런 수필의 특징 몇 가지를 말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필자의 눈에 띈 것은 그 길이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200자 4,5매의 짧은 것도 있고 이보다 비교적 긴 것도 있다. 그러나 어떻든 글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만큼의 길이다. 15매 내외에 억지로 맞추기 위해서 늘리거나 줄인 것이 없다.

둘째는 그 문체가 대체로 만연체인데도 간결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글을 아름답게 쓴답시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그런 수식어를 남용하거나 독자가 못 알아들을까봐 같은 말을 이리저리 중복하는 일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셋째는 이 수필들의 거의 전부가 ‘내가 남의 이야기 하는 시점(1인칭 관찰자 시점)’이라는 것이다. 물론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지금 너무 ‘내가 내 이야기 하는 시점(1인칭 주인공 시점)’에 붙박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끝으로 하나는 그 ‘감상’이 퍽 산뜻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체로 찬탄(讚嘆) 아니면 한탄(恨歎)이지만 그 중에는 날카로운 비판정신(批判精神)이 번득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수필들을 읽노라면 무골충 같은 자신의 글이 늘 부끄럽다.

3. 이 책에 관한 조선시대의 평가는 서로 많이 다른 듯하다. 성여학(成汝學)은 이 책을 일러 “편언쌍자(片言雙字)도 세교(世敎)와 무관한 것이 없다(『於于野譚』序).”고 극찬한 반면 장유(張維)는 “문장도 심히 속되고 기록한 사실도 잘못된 것이 많다(『谿谷漫筆』).”고 혹평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대개 긍정적이니 조윤제(趙潤濟) 선생은 “隨筆中 白眉로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있다(國文學史).”고 했고, 김동욱(金東旭) 선생은 “有名無名 人士들의 逸行, 奇話의 集成으로 紀念碑的 著作이라 할 것이다(앞에 말한 책).”라 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평가와 관계없이 우리들 수필을 공부하는 사람이 한번 읽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다. 『어우야담』에 관한 필자의 조잡한 천착을 탓하지 말고 이 책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