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_회_추_천]

 

 

집시

 

 

                                                                                         신 명 희

마치 훵한 불빛아래 유랑극단의 천막 속으로 들어 온 것 같다. 소잡한 나무의자에 무릎을 접고 다닥하니 붙어 앉았다. 아이샤도우를 짙게 칠한 진홍빛 블라우스의 여자가 남자들의 기타연주와 기묘한 노랫가락에 따라 발장단을 구른다. 허공을 쏘아보며 팔을 위로 올리자 어깨와 허리가 만들어내는 선이 오선지위의 높은음자리를 그린다. 프릴달린 치맛자락을 모아 쥐고 빠르고 현란한 발동작으로 스텝을 이어간다. 구두에 박힌 징소리가 마룻장을 뚫을 듯이 높아지고 엇박자의 리듬이 박달나무 방망이로 두들기는 다듬이소리처럼 들린다. 숨 가쁜 집시의 플라멩코 춤이 끊어졌다 힘차게 이어지고 나풀대는 긴 스커트자락이 파도처럼 휘감기며 쏟아진다. 격한 율동 따라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이 얼굴을 덮는다. 눈에서 검은 빛이 쏟아져 내린다. 증오인지 열정인지 모를 야릇한 빛이다

낮에 알함브라 궁전으로 가는 차 속에서 창밖으로 보았던 사크로 몬테 산비탈의 동굴이 생각난다. 육백년 전 그라나다에 모여든 집시들이 둥지를 틀고 살던 토굴이었다. 지금은 밖으로 집을 달아 지은 곳도 많지만 드문드문 시커먼 구멍이 눈길을 끈다. 산자락엔 지중해의 상아빛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진다. 그들은 벽에 회칠을 한 어두운 동굴 속에서 검은 살빛 같은 노래를 부르고 불꽃같은 춤을 추며 산다. 딴 세상을 떠도는 것 같은 무희의 검은 눈은 속이 보이지 않는 집시의 토굴처럼 깊었다.

인도 코카서스지방에서 기원한 집시부족은 이집트 체고등지로 쫓겨 다니다가 세계각지로 흩어졌다. 이태리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정착한 집시들은 자신들을 ‘평원의 도망자‘라고 불렀다. 그들은 저녁이면 모여서 즉흥적인 노래와 춤을 추며 오페라 식으로 하루의 일과를 풀어냈다. 또한 손발을 이용한 경쾌한 리듬으로 일상의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풍요로운 안달루시아 지방의 전통춤에 유랑집시의 춤이 혼합된 격정적인 무용이 플라멩코다. 선술집의 탁자위에서 아리따운 집시처녀가 춤을 추면 귀족들은 가면을 쓰고 귀부인들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구경을 하러 다녔다고 한다. 차츰 집시들이 잔치 집에 불려 다니다가 이슬람의 벨리댄스와 인도 춤과 융합되어 스페인의 민속춤으로 자리 잡았으니 집시들의 방랑문화가 한포기 뿌리를 내린 셈이다.

결혼 후 고향집을 떠날 때 친정아버지 앞에서 큰절을 드렸다. 한복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입은 딸에게 아버지는 강바닥 반석처럼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친정집으로는 오지 말아라.”

나의 뿌리를 자르고 떠나는 심경은 섭섭함과 미지의 도시에 대한 서먹함으로 얼룩졌다.

얼마 후 부모님들도 상경하시고 십여 년 만에 다시 고향을 찾았을 때 낯익은 흔적들은 찾을 수 없었다. 기억속의 고향집 마당과 개울물, 동네 신작로와 토란잎 우거진 밭둑길에 나의 뿌리가 있다고 여겨왔는데. 분명 있어야할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린 기억들이 다 지워진 곳에는 그리움도 뽑혀나갔다. 어쩌면 나도 뿌리 없는 집시가 된 건지도 모른다. 가슴속에 드러누운 자궁속 같은 아늑함은 떠도는 그리움이 되었다.

모로코로 가는 배를 기다리며 타리파항의 골목길에서 구경을 하는데 느닷없이 집시들 대여섯 명이 나타났다. 요란한 장신구와 검은 머리가 치렁한 여자들과 사내들이 순식간에 우리 일행을 에워싸고서 뭐라고 떠들어댔다. 가라고 소리 지르며 간신히 빠져나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도와주는 척하며 물건을 훔치는 떠돌이 집시들이라고 했다.

“우주에는 영원한 주인은 없다. 모든 것은 다 신의 소유다. 그러므로 우리가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신의 물건을 잠시 빌려 쓰는 것이다.”

모멸과 의심 속에 살아남은 방랑부족의 억척근성이 억지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주의 주인 없는 땅에서 쫓겨 다니지 않고 영원히 뿌리내리고 싶은 아우성이며 한숨인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아버지가 이룬 삶의 터전에서 땅에 박힌 나무처럼 붙박이로 살아왔었다. 그러나 뿌리가 뽑히면 뿌리는 발이 되어 흙을 박차고 나와 떠돌아다닐 터이고 나 또한 집시가 되어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수십 년을 산다 한들 흙 없는 아스팔트길에 뿌리를 내릴 수는 없나보다.

집시여인들은 물방울무늬의 스커트를 휘두르며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얼굴로 가장 화려한 춤을 춘다. 발이 안보일 만큼 빠른 탭과 애절한 노래는 떠도는 혼을 부르고 유랑의 한을 달래는 주술 같은 의식인지도 모른다. 팔 동작은 한손을 높이 들어 사과를 따서 먹고 어깨 뒤로 던져버리는 손동작이라고 한다. 그들이 버려야 할 것이 사과고갱이뿐이던가? 기타소리가 그칠 때까지 쉬지 않고 버린다. 그러면서 손뼉소리 없는 귀머거리 박수와 소리 나는 경쾌한 박수를 번갈아 친다. 고달픈 세상을 소리 없이 외면하는 손짓이고 수백 년 고인 한을 토하는 격정의 몸짓임에 틀림없다.

생각하니 스물여섯 해를 고향에서 살았고 또 스물여섯 해를 부천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뚜렷한 이유로 살았지만 언젠가부터 떠나지 못해 살아왔다. 만나 온 시간만큼 사람의 가슴에 정을 내릴 수는 있어도 꿈의 시원은 돌아오지 않으니 어디에 뿌리를 내릴 것인가. 나도 유랑의 무리같이 플라멩코라도 배워야 할까보다. 화려한 무대에서 잘 생긴 무희들이 예쁘게 추는 플라멩코가 아니라 동굴 같은 무대에서 핏물같이 붉은 한을 풀어내는 집시의 춤! 나도 한번 추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