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 한복판에 서서

 

 

                                                                                        김수봉

널따란 백지 위에 커다랗게 원을 하나 그리고 그 가운데에 점 하나를 꼭 찍는다. 점을 가리키며 ‘이것이 나’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오늘 새벽 산책도 그 들판길을 걸어간다. 시인 이상화를 잠시 떠올려보기도 한다.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앞 부분)

 

이상화가 걷던 들은 이보다 훨씬 더 시야가 툭 트였으리라. 그러나 내가 걷는 이 길은 가르마 같은 논길이 아니다. 문명이 덧칠해 놓은, 트럭과 농기계가 드나드는 농로다.

지난여름의 푸르름, 그리고 한가위를 맞으면서 날마다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던 이 들판, 11월의 중간인 지금은 보리 싹이 올라오고 있다.

이 도시의 한 모퉁이에 이만한 지평선이 펼쳐져 있다는 게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 앞에도 내가 등지고 선 뒤쪽에도 가시거리 끝쯤에 아파트 단지는 있지만…. 또 왼쪽엔 산업단지가 들어섰고 오른쪽엔 누운 소 형상의 야산과 그 아래론 낮은 강이 흐른다. 영산강 상류에 해당되는 그 둔치가 훤칠하다.

들판은 내가 선 자리에서 사방이 1Km 남짓씩으로 가늠되지만 새벽안개가 피어오르는 날이면 무변의 저쪽을 그려보게도 한다.

강을 낀 이 들판, 지난날은 갈대나 억새밭이었을 이 땅을 절대농지로 만들어 준 행정력이 고맙고 고맙다. 딱딱한 콘크리트들이 잠식해 들어오지 못하게 법의 울타리를 쳐 둔 이곳, 우리의 이 들판은 ‘빼앗긴 들’도 아니고 ‘봄도 빼앗길’ 염려가 없다.

이 들판에 서면 나는 완전 자유인. 커다란 원 안의 나를 느낀다. 가을걷이가 이미 끝난 논에는 농부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인기척은 없고 까치, 비둘기, 참새 떼들의 쫑쫑 걸음만 눈에 띈다.

 

들판 한가운데라고 생각되는 곳에서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춘다. 심호흡을 하고 팔을 높이 벌려 ‘하늘 안기’의 체조도 한다. 그리고 시선을 한껏 멀리 보내면 콘크리트 건물 너머의 올망졸망 산들이 보인다. 이때부터 나는 ‘내 생각의 자유’를 누려본다.

산 너머에는 또 강과 산이 있고, 더 멀리로는 바다도 있을 터. 나의 산책걸음으로는 좀체 닿기 어려운 곳에 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고, 도시가 있고, 거래가 있고, 아귀다툼이 있고, 사랑이 있으리라. 그리고 나의 오래된 갈망이 신기루 되어 거기 어디쯤 떠오르고 있을지.

아! 이만한 자유를 맛보는 것도 홍복(洪福). 그러나 결국 나는 갇히어 있음을 깨닫는다. 좀 멀고 가까울 뿐, 도시의 건물들에 싸였고, 강과 산에 싸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진 것 아닌가.

온 세상, 아니 우주공간 속에 좁쌀보다 작은 존재, 나는 너를 싸고 너 또한 나를 싼다는 쉽고도 어려운 이 원리를 새삼 반추해 본다.

 

시선을 당겨 발 아래 보리밭을 본다. 생명, 그래 생명들이다. 서릿발을 견디고 눈더미에 덮이고 혹독한 겨울바람을 이겨낼 생명들이다. 그리고 그 인고의 열매는 삼사월이 되면 다시 아우성 같은 푸르름으로 솟아날 것이며 오뉴월엔 당차게 가시랭이를 펼치는 보리누름을 보여줄 것이다.

몸을 돌리자 발걸음은 버릇처럼 나의 우거(寓居)로 향한다. 거기 더 좁은 우리 속에 나를 가두기 위하여.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애써 안거(安居)의 한숨을 돌리며 거대한 동그라미 속 한 점으로 찍힌 나를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