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겨진 꿈 이야기

 

 

                                                                                        金鎭植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곧 잊어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 않는 꿈이 있다면 예사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것이 무엇인지 풀지 못하고 있지만, 신비한 꿈인 것만은 틀림없다. 서른을 갓 넘겼을 때의 일이니 사십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그 꿈만은 너무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그것이 무엇인가 하고 늘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꾼 신비한 꿈에 대해 여태껏 자세하게 밝힌 일이 없다. 자칫 꿈 이야기로 웃기는 사람이 되기 싫었고, 신비로운 체험은 말로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희에 이른 지금은 누구의 눈치를 살필 필요도 없고, 조금은 엉뚱하게 전달된다고 하더라도 무슨 이름 있는 산에 들었다가 나와서 도사연(道士然)하기에도 때가 늦었으니 광대가 된들 무슨 대수랴.

이 꿈은 순간적으로 나를 꿇게 하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맑은 정신’을 체험시켰다. 그런 연후 무슨 영검이 있었거나 바깥으로 행동거지가 달라진 것은 없지만 흔히 꾸는 꿈이 아닌 이런 신비한 꿈도 있구나 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의미를 부여한다면 다른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분별이 아닌 느낌이고, 상식이 아닌 관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꿈에 얽힌 이야기를 놓치지 않았고, 그 해몽이나 해석에도 기울이게 되었다. 이를 일러 달라졌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어느 날 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베옷을 입은 대여섯 명의 종자(從者)가 있었는데 그들은 어디론가 나를 안내하고 있었다. 산 중턱에서였다. 갑자기 앞서가던 종자가 멈춰 서서 산중 혈(穴)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엔 여남은 채의 큰 가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 이르기를 천 사백여년 전에 임금이었다며, 그때 이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산세, 저만큼 맞은편에는 움츠린 청룡이 뻗어 수구에 닿아 있고, 산문 밖에는 여남은 채의 기와집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낯설지 않았다.

일행은 다시 숲이 우거진 산길을 따라 정상의 턱에 이르렀는데 바위가 막아서고 있어 길을 망설이고 있는데, 한길쯤 높이에서 흐릿한 불빛의 봉창을 발견하였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봉창으로 겨우 들 수 있었다. 그런데 봉창 안에는 사십 여명의 스님이 가부좌하고 있었지만 추하게 보여 고개를 돌렸는데, 이게 웬 일인가. 벽에는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분노불(忿怒佛)이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았다. 나는 순간 무릎을 꿇고 합장을 하였는데 얼굴에서 땀방울이 비 오듯 하였고, 가부좌를 푼 스님들이 나를 에워싸고 땀을 닦아주었는데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맑은 정신’이었다.

 

눈을 뜨고 꿈인 줄 알았지만 온 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불꽃 속의 금빛 분노불이 내속의 초상으로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맑은 정신은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겪어본 일이 없다.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부처나 보살의 명호와 진언(眞言)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평소에 익숙한 것들이라 하더라도 이처럼 절로가 아니었다. 자신을 의심해보지만 사실이다.

나는 사찰에 적을 두고 다니지 않는다. 어릴 때 어머니께서 절에 이름을 올렸다는 말을 들었지만 법명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았고, 외딴 산속에 있는 그 절을 찾은 일도 없다. 세상일에 바빠서라기보다 믿음에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믿음을 아니라고 하거나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내가 믿음에 이르지 못한 까닭이다. 우리 집에서는 나를 빼고는 모두 가톨릭이고, 그 믿음을 가로막은 일도 없다. 내가 그 믿음에 따르며 함께 해 주기를 바랐던 때가 있었지만, 요사이는 관심 밖이 되었고 나도 그 믿음에 개의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내속에는 분노불이 ‘맑은 정신’을 상기시키고, 내가 만다라인 듯 비나자로나 관세음의 명호와 진언을 절로 외게 하는 것이 그렇다.

사실 나는 불교적 사유에 공감하고 있지만 신자로 이르며 드러내는 것에는 주저하고 있으며, 어떤 믿음을 담보로 하여 절을 찾은 일도 없다. 스스로 닦아가는 자성을 믿음이라는 속박으로 막아서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도 신비스러움을 이야기하고, 연기로 만다라를 연상하고 있으니 여간 어긋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내가 모른다 해도 일어나고 있고, 이것이 내 마음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생각을 접지 않고 두 손을 모으는 것은 내 속에 새겨진 초상(肖像)과 그 맑음 때문이며, 그것으로 도량(道場)을 대신한다 해도 달리 숨기고 쉽지 않다. 내 얕은 식견으로 경계를 넘을 수 없다면 신비는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생각 밖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강석주(姜昔珠) 스님께서는 가톨릭인 우리 집 막내가 불교대학을 들어가는데 거들었으며, 시인 김해석과 작가 이문구, 그리고 우에노 교수(민희식 교수 부인)는 내가 전생에 스님을 했다니 어리둥절하다. 우에노 교수는 어떤 문학행사에 같이 발표하면서 처음 만났고, 숙소의 내 방까지 찾아와서 그랬다. 이분들은 서로 교분이 있거나 만나는 관계가 아니니 참으로 기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일이 나의 행동거지에서 튀어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전생의 스님을 자처해 본 일도 없고, 전생을 상정한 윤회설에 대해서도 불교의 교리 이상으로 믿지 않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분들이 영감이나 직관으로 그랬는지 모르지만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니 의미를 두지 않지만, 연기(緣起)의 무슨 단초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벽과 마주한다. 여기서는 새는 불빛도 작은 봉창도 찾을 수 없다. 들 수도 허물 수로 없는 벽이다.

꿈 이야기가 신비주의로 흐르는듯하지만 나로선 석명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꿈에서 체험했던 맑은 정신과 내속에 새겨져 있는 분노불의 초상이 내가 들을 수 없는 경계 밖의 말을 보내고 있지만, 나는 그것에 감응하고 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손을 모으지 않는가.

분노불은 마(魔)의 권속을 항복 받는 비나자로불의 현신인 명왕이라고 한다. 그것을 그대로 믿는다면, 내게 눌어붙어 있는 마성(魔性)인 욕심과 성냄과 뻔뻔스러움을 꺾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생활 현장의 치열함을 벗어나 무소유로 돌아가야 한다. 속진을 뒤집어쓰고 있는 지금의 처지와는 거리가 있음은 물론이다.

나는 가끔 산과 절을 찾는 일이 있다. 그때마다 그 꿈속의 산과 절을 견주어 본다. 그리고 석굴인듯한 분노불의 거처인 도량道場을 떠 올린다. 내 성의가 미치지 못했음인지 또 다른 마의 권속에 잡혀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인지, 그곳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천 사백년 전의 제왕은 웃기는 일이고, 설령 그런 연기를 지고 있다 하더라도 부질없는 업(業)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 꿈이 사십년의 세월에도 그대로 새겨져 있다면 참으로 질긴 사슬이다.

꿈은 현실이 아니지만 다른 꿈은 다 지워졌는데 오직 이 꿈만이 분노불 앞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체험해 보지 못한 ‘맑은 정신’의 기억으로 각인되어 있으니 불가사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