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다마나 일어나지 말기를

 

 

                                                                                      구양근

올해는 이상한 해이다.

봇물이 터지듯 올 한 해에 좋은 것이 다 이루어지고 만 느낌이다. 집을 매매하면서는 최고의 시점을 잡았고, 자식들의 분가를 아주 성공리에 끝마쳤으며, 오랜 외로움에 종지부를 찍으며 나의 재혼을 성사시켰다. 학교에서도 난데없이 학장으로 선출되더니 단 한 학기 만에 총장의 대임이 주어졌다. 이 모든 것이 올 한 해의 전반부에서 다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아내의 덕으로 돌린다. 내 복에는 이런 것이 있을 리 없노라고…. 기도의 힘을 믿는 아내는 그것을 감지하였는지 교회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아내는 원래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나는 그녀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녀를 따라서 절에 다녔다. 그런데 결혼을 얼마 앞두고 그녀가 갑자기 기독교로 개종을 하였다. 내가 동기부여는 하였지만, 하여튼 나도 교회를 따라 나섰다.

그런데 그 교회가 보통 교회가 아니고 너무나 뜨겁고 소리가 큰 ×××교회였다. 나는 결혼 후에는 집 앞의 가까운 교회를 다니자고 제의하였지만 아내는 그것만은 절대 양보를 하려 들지 않는다. 그 교회에서 은혜를 받았으니 꼭 그 교회를 나가야 한단다.

일요일이면 나는 서툰 운전솜씨를 뽐내며 올림픽도로로 접어들어 여의도를 향하여 달린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교회는 주차에서부터 전쟁이다. 거의 1시간 가까이 먼저 도착하여도 맨 뒷좌석이나 이층 한 구석을 차지하기 일쑤이다. 30분쯤 일찍 간 정도로는 기둥에 가려 단상이 보이지 않는 좌석이나 영상으로만 보는 좁은 간방 같은데서 예배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즐거이 그 날을 은혜 받는 날로 여기며 다니고 있다.

자식들을 분가시키려 집을 팔려고 내놓으니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매물이 없었기 때문에 계약을 하는 날 구매자는 최고의 값을 주겠다고 했다. 그 때 아내는 팔지 말고 좀 더 기다리자고 한다. 구매자에게 미안하였지만 독한 맘먹고 일어서서 복덕방을 나섰다. 그랬더니 그쪽에서 사정을 하며 값을 더 올려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저 사람이 이 집의 임자인가 싶어 팔기로 하였고, 팔고 보니 그 시점은 포물선의 최고점이었다. 서울의 집값은 그 다음날부터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집을 판 돈의 90% 가까이를 아들딸에게 주어서 분가시켰다. 그리고 한 채 남은 작은 아파트로 들어가기 위해 어렵게 전세 돈을 마련하여 입주하였다. 하여튼 짧은 시간동안 아들, 딸을 성공리에 분가시키고 나도 안정을 찾은 것이다.

몇 년 전, 상처한 상흔이 아물어지지 않은 채 나는 심신이 허약 할대로 허약해져 있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외로움과 허전함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그런데 고향도 비슷하고, 전공도 비슷하고,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으며 미모도 갖추고 있는 아주 괜찮은 여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는 젊고 초혼인데다가 그늘진 곳이 전혀 없는 맑은 여인이었다. 하늘의 조화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나는 한마디로 그녀에게 홀랑 빠지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하늘을 날 것 같은 활력을 되찾게 되었다. 결혼에서도 대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대개 대학에서 학장이 되려면 그 안에 작은 보직을 두루 거치는 것이 상식이다. 연구소 소장이니, 학교신문사 주간이니, 무슨 처장 등을 거치고 나서야 겨우 학장이 된다. 그러고도 학장을 거치지 못하고 정년을 맞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데 이렇다 할 보직 한 번 받지 못한 내가 갑자기 출마하게 된 학장선거에서 최다득점을 얻게 된 것이다.

내가 학장이 되었을 때에 때마침 우리 학교는 걷잡을 수 없는 시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당시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의 집단이기주의에 의분을 느꼈던 나는 자신에게 앞으로 다가올 불이익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분연히 가로막고 나섰다. 자의건 타의건 최선봉에서 분란을 막아서는 방패 역할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나로서는 그건 우연히 말려든 일이었고 예기치 못했던 일이었다. 당시에 나는 일엽편주로 격랑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사필귀정이라 했던가! 시위를 주도했던 문제의 총장이 마침내 사퇴를 하자 그 나머지 임기를 나더러 채우라는 분위기로 반전됐다.

지금 나는 언감생심 서울의 한 종합대학 총장직을 맡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로 인해 내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줄도 모른 채,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줄도 모른 채 나는 이 자리에 올라서고 말았다.

나는 지금 자문한다. 과연 내가 여기 서있어도 된단 말인가.

다음 달에는 베이징(Beijing)에서 아시아-라틴아메리카 총장포럼이 있다. 한 나라에 5명의 총장이 참석하기로 되어있다. 외국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런대로 의사소통에 자신감도 있고 다른 나라 총장들과 외연을 넓혀보자는 생각에서 우리나라 대표로 신청을 해보라하였다. 그랬더니 교육부로부터 허락이 떨어졌노라고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도대체 안 되는 일이 없지 않은가. 이제 그곳에서는,

“나는 Korea의 ×××대학 총장 ×××입니다.”

“나는 Brazil의 ×××대학 총장 ×××입니다.”

“나는 Australia의 ×××대학 총장 ×××입니다.”

라고 자기소개를 해야 할 판이다.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 내 주위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올 해 내게 일어났던 이 모든 일들에 대하여 어느 훗날 그 이유를 알게 될는지…….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며 나는 지금 호사다마란 말을 떠올리고 조심스런 마음을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