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최예옥

지나간 자리에 남는 것은 세월만큼의 무게다.

지난 밤 창문을 뒤흔든 바람의 흔적은 부러진 나뭇가지이고, 눈 내린 다음날은 휘장을 걷어내지 않아도 그 안에 사연이 있음을 안다.

사람의 기억 속에 지닌 흔적은 대부분 살아온 이력을 말한다. 아버지의 낡은 수첩에서 내 어릴 적 흔적을 마주한 날, 잊고 살아온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치며 시간을 훌쩍 40여 년 전으로 돌려놓는다.

아버지의 유물은 갑작스런 별세로 누가 챙길 새도 없이 오가는 사람들 손을 타고 하나둘 없어졌다. 나중에 수습을 하고보니 돈이 될 만한 것 외에 소소한 흔적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너무 어린 나이라 아버지의 유품을 간직해야겠다는 생각마저도 없었다.

지난여름, 친정산소 벌초 때 오빠가 작은 수첩을 꺼냈다. 구월의 햇빛아래서 그것은 빛바랜 아버지의 체취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ㄹ’과 ‘ㄴ’ 받침이 또렷하고 위는 크고 아래는 갸름한, 한눈에도 알아 볼 필체였다. 지갑보다 작은, 휴대용 전화번호부 크기만 한 얄팍한 수첩의 가운데 쪽을 펴는 순간 바라보던 형제들은 모두 숨이 멈춰진 것처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곳에는, 내가 처음 백일장에 나가 입상한 동시 두 편이 아버지의 낯익은 필체로 적혀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한다. 목포로 전학을 하고, 지방 신문사 주최백일장에 나가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새 연필과 필통을 사주고 손수 연필을 깎아 차곡차곡 필통에 넣어 주었다. 크기와 색깔을 맞춰 쪽 고르게 정리를 하고 질 좋은 지우개를 갖고 다니는 것은 학생이 지켜야할 기본이라고 말씀하셨다. 군인이 전장에 나갈 때 무기를 손질하듯, 학생은 학교 가기 전에 필기도구와 책가방을 가지런히 챙겨놓아야 수업을 들을 때 자세가 발라진다던 말씀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목포는 40년 전엔 집집마다 수도가 있는 집이 드물 만치 퇴락한 곳이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책가방도 변변한 것이 없어 보자기에 싼 책을 어깨에 둘러메고 다니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아버지 덕에 나는 필기구만큼은 항상 최상급의 질 좋은 것을 갖고 다녔다.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면 내 책가방 속을 구경하려고 모여들곤 했다. 질 좋은 노트에 매끄럽게 써지는 연필로 쓴 글씨는 잘 쓰지 못해도 돋보였을 것이고, 백일장에 나갈 사람을 뽑는데 한 몫을 했다.

그때 입상한 시를 시화로 만들어 한동안 집안에 걸어두었는데 잦은 이사로 잃어버렸고 내 유년의 추억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했다. 그 흔적이 아버지 수첩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고무풍선’이란 제목의 시와, 다음해 다른 신문사에서 주최해 입상을 한 시도 적혀있었다. 잊고 있던 추억의 한 조각까지 덤으로 얻은 셈이다.

그 시 두 편을 가보라도 되는 양 압화로 액자 만드는 후배에게 부탁해 예쁘게 꾸몄다. 작고 앙증맞은 꽃들 속에서 지난 추억의 한 자락이 얼룩진 자리를 감추고 흔적으로 남아 있다. 시의 완성도를 떠나 그 것은 40여 년 동안 침묵 속에 갇혀 있다가 다시 책상 앞에서 자꾸 허물어지려는 마음자락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어떤 유산보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온다. 정신을 가다듬게 하는 죽비가 되어 마음자락 느슨해질 때 아버지의 손길을 회억하게 한다.

조선시대 부부 학자로 선비로 이름을 남긴 미암 유희춘과 부인 송덕봉의 일기가 있다. 벼슬살이 하면서 떨어져 있던 시기에 부인과 나눈 사담에 가까운 일까지 소소하게 기록해 놓고, 부인은 남편에게 집안일과 노비에 관한 일까지 애절하면서도 당당하게 담백한 필체로 적어 나간 글이다. 그 일기가 발견되면서,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조선중기 사대부 집안의 생활상과 남녀 신분격차의 문제, 애정관과 가사 일까지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 사람의 기록은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고 후대에는 한 시대의 생활상을 엿보는 자료가 된다.

아버지의 작은 수첩에도 큰 오빠가 태어난 날의 날씨와 언니가 태어난 방의 위치, 아이를 하나 더 얻게 된 당신의 소회가 간략하게 메모되어 있다. 임지를 옮길 때 그곳의 위치와 동료의 이름, 직위, 학교 분위기까지 그때그때의 심경을 가감 없이 적어 놓았다. 수첩은 비록 얄팍하지만 수십 년 걸친 아버지의 연보가 요약되어 있어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30여 년 교직에 머물렀던 행적이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다른 형제들은 수재 소리 들을 만치 공부 잘하고 각자 위치에서 두각을 나타내 걱정이 없었는데 유독 늦게 난 막내가 마음에 쓰였는지 그 수첩 중간에 적힌 두 편의 동시가 아버지의 애틋한 부성을 대변하는 듯하다.

무엇이든 기록하기 좋아하던 아버지를 닮아 해가 바뀌면 작은 새 수첩을 마련한다. 주로 그날 다녀온 곳과 본 것에 대해 짤막한 감상을 적거나 글 쓰는데 필요한 자료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하는 것인데 해가 거듭될수록 메모할 양은 넘쳐나지만 기록은 대부분 일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원고청탁 날짜가 임박한데 글거리가 떠오르지 않을 때면 그 수첩이 요긴하게 쓰인다.

해마다 한 권씩 장만한 수첩이 열 권을 넘어서면서 지난 흔적들을 간수하는 것이 부담이 된다. 하루 날을 잡아 컴퓨터에 입력해놓고 수첩들은 불살라버릴까 고민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제일 먼저 정리하는 것이 사진과 지나온 메모장이라고 한다. 3년 정도 쓰지 않는 물건이나 철 지난 옷은 미련 없이 버리면서도 여기저기 메모해 놓은 종이들은 한 장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다.

어느 날, 내가 훌쩍 떠나고 난 다음, 내 궤적들을 다른 사람이 정리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어떤 흔적을 남겨야 할까. 쓰지 않는 물건을 정리하듯 마음자락에서 때 없이 이는 혼란함까지 여과 없이 적힌 내 수첩의 흔적들을 정돈해야 겠다. 수십 년이 지난 다음, 내 얼룩진 삶의 흔적이 드러나게 될 때 어느 누가 있어 애틋한 마음으로 나를 다시 회상해줄까.

 

 

현대수필로 등단.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학회 회원.

수필집 <그녀가 아름다운 이유> <비껴가는 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