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길

 

 

                                                                                           신현복

잘 닦인 아스팔트 고속도로를 버스가 달리고 있다.  

멀리 보이던 길 끝의 풍경이 가까이 다가오나 싶더니 순간 뒤로 물러서며 나를 배웅한다.  그리고 곧 뒤이어 다가와서 나를 스쳐가는 새로운 한 폭의 풍경들.......

버스가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서서히 고속도로로 진입하게 되면, 맨 앞자리에 앉은 나는 넓은 차창으로 와 닿는 풍경들을 보며 비로소 안도한다.  일상을 벗어난 사유의 날개가 길게 뻗은 도로처럼 자유로워지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이 가능하면 길어지길 원한다.

먼 길을 갈 때는 고속열차보다는 버스를 이용할 때가 많다.  정해진 시간에 맞추어 가야하는 부담감과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서 목적지에 닿는 그 짧은 시간에 대한 못 마땅함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 가까이에 살았던 나는 버스를 타고 학교 다니는 것이 무척 좋아 보였다.  등교 시간마다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을 챙기며 빼곡 들어찬 버스에서 힘들게 내려서는 친구들의 그런 모습조차도 부러워서, 우리 집도 학교에서 먼 곳에 있으면 했었다.

서울에 있는 대학을 오게 되면서 나의 먼 길 가는 것의 바람은 실현되었다.  

그 무렵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방학이면 고속버스 이용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간다는 기쁨보다는 먼 길을 가는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집을 떠나는 맏딸을 어머니는 울면서 배웅을 하셨지만,  나는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쭉 뻗은 고속도로를 보며 또 다른 나를 꿈꾸는 희열을 만끽하곤 했었다.  먼 길을 가는 차 안에서의 생각은 모든 것이 다 자유로웠고 모든 것이 다 가능했기에.......

결혼을 하고 서울에 살면서 지금까지, 명절 때는 물론 집안의 일이 있을 때 마다 친정과 시댁이 있는 먼 길을 가는 일이 일상사가 되고 있다.  

시부모님의 생신과 명절은 물론 구남매의 막내인 우리가 챙겨야 할 조카들의 결혼식 등....... 어른들이 안 계신 지금은 명절과 성묘나 기제사 때문에, 그리고 친정어머니의 병중이었을 때는 꼬박 일 년을 병원과 친정을 오가곤 했었지만 차를 타고 먼 거리를 다니는 시간이 지루하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다.  

어렸을 때 나의 바람이 간절했기 때문일까.

홀로 되신 친정아버지를 뵈러 가는 일이 아니더라도, 요즈음 남편의 사업처가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 먼 길 가는 일이 더 많아 지게 되었다.  

언제나처럼 고속버스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넓은 차창을 바라본다.

시시때때로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풍경을 보며, 먼 길을 가는 것이 마치 우리가 살아 가는 과정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삶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슬프게.......

일탈을 꿈꾸며 또 다른 나를 갈망하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마냥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  

 

지난해 12월 마지막 날 외조부님이 세상을 뜨셨다.

이미 오래전 치매의 외할머니를 손수 간병하고 떠나보낸 후, 당신의 맏딸인 내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 삼년을 더 머물다 가신 것이다.

1905년 평양에서 출생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일제치하와 공산치하에서 개신교의 목회자로서 묵묵히 모든 어려움을 견디며 여러 교회를 전전하셨던 인고의 세월…… 아득한 전설의 인물처럼 오랜 동안 먼 길을 걸어 오셨기에 한 시대의 마지막 증인으로써,  102세를 두 달 남겨 놓고 그 해를 마무리 하신 것이다.    

외할아버지께서 오래 사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후 부터였다.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면서 몇 년 만 더 사셨으면 하던 우리의 간절한 바램만큼,  어머니 몫의 세월을 살고 가신 할아버지.  예전의 멋있는 모습은 흔적이 없는 야윈 영정 사진을 보며 나는 조금 울었다.  내 어머니가 살아야 할 생을 대신 사는 것 같은 할아버지를 원망했던 죄송함 때문에.

긴 세월 살아오신 할아버지에게 삶은 어떤 모습으로 남겨 졌을까.  참으로 먼 길을 오래 지나 왔다고 생각하셨을까, 아니면 그래도 못 다 이룬 것이 있기에 아쉬운 삶이라고 생각하셨을까.

젊은 날 내게 다가 온 삶이란 끝이 안 보이는 아득한 먼 길을 가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나도 이렇게 많이 와 버리지 않았는가.

난 오늘도 달리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길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가 끝없이 이어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