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퍼즐 맞추기 (1)

 

 

                                                                                        김희재

사진첩도 아주 오래 묵으면 그렇게 바스러질 정도로 삭는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여고 졸업 30주년 기념행사 때 쓸 영상물을 만든다고 그 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편지 등을 찾아서 내 놓으라는 행사준비위원의 등쌀에 베란다에 빼곡히 쌓인 앨범들을 다 뒤져서 고등학교 때 정리 해 놓은 것을 하나 간신히 찾아냈다.

앨범은 손으로 만지기조차 겁이 날 정도로 아주 낡고 먼지투성이였다. 행여 거칠게 다루면 형체도 없이 부서질 것만 같아 조심스레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밖으로 나왔다. 고운 총채로 묵은 먼지를 대강 털어 내고 표지를 들추어 보니 내 글씨라고는 믿기지 않는 겉멋이 잔뜩 든 필체로 이것이 내 고등학교 시절의 기록임을 알리는 표제가 써 있다. 지금 읽어봐도 이해가 잘 안되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심오한 문장을 1973년도에 썼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 나이에 무슨 인생을 안다고 그런 말을 써 놓았는지...... ‘잔망스런 계집애’란 단어가 딱 어울린다.

 

앨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진들은 하나같이 다 사이즈도 작고 그 속에 찍힌 얼굴들도 작았다. 특히 교복을 입고 찍은 단체 사진에서는 내 얼굴이 어느 것인지 찾아낼 수조차 없다. 사진은 대개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가서 찍은 것이고 간혹 교정에서 선생님과 친구들 틈에 끼어서 찍은 것도 있었다. 지금 애들에 비하면 거의 표정이 없다시피 한 그 시절의 아이들. 처음엔 이런 게 있었나 싶을 만치 낯설었는데 희한하게도 차츰 그 때의 정황이 서서히 아주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우리의 기억주머니가 아주 튼실했던 시절의 기억이기 때문일까?

나이가 들면 우리의 뇌 속에 있는 기억 주머니의 끈이 느슨해져서 보고 듣고 느꼈던 모든 기억들은 쉽게 놓치게 되는데, 한창 뇌 기능이 왕성했던 시절의 기억은 웬만해서는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들이 현재의 자기는 누구인지 모르면서 아주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은 어제 일처럼 기억을 해 내는 것이라나.

처음부터 끝까지 설렁설렁 넘기다 보니 희한한 사진들이 몇 장 눈에 띄었다.

교복도 아니고 평상복도 아닌 아줌마 한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 사진이 대 여섯 장이나 있는 것이다. 가정집은 아닌데 응접실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전화를 받으며 웃기도 하고, 차려 자세로 서로 손을 잡고 서있기도 했다.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아이의 독사진도 있고, 일부러 웃는 웃음이 분명한 미소를 짓고 그럴듯한 포즈를 연출하고 있는 사진도 있다. 자세히 보니 사진마다 아이들이 입은 한복이 서로 바뀌어 있었다. 어떤 것은 아이의 키에 비해 치마가 껑충하니 짧아서 치마 밑으로 검정 운동화 신은 다리가 훤히 다 드러나 보였다.

이게 무슨 사진일까?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는 생활관 교육이 없었는데 언제 한복을 입고 이렇게 사진을 찍었단 말인가? 아무리 보아도 기억이 나질 않아서 한참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자 그 때의 정황이 또렷이 재생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스튜디오 시설이 없던 그 시절에 학교 근처의 어느 사진관에서 촬영 세트를 갖춰 놓고 한복까지 빌려주며 사진을 찍어 준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로 큰맘을 먹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우르르 책가방을 든 채로 몰려갔다. 아직 전화도 흔하지 않았고 양옥에다 응접세트를 갖추고 사는 집이 많지 않을 때라 그랬는지 우리는 거기 놓인 싸구려 소파와 탁자, 장식용 조화를 보고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아했다.

별로 구색도 갖추지 못한 몇 벌의 한복 중에서 그래도 맘에 드는 것을 골라 교복 위에다 걸쳐 입고 저고리 바깥으로 교복이 삐져나올세라 옷깃을 마구 구겨서 집어넣고는 영화배우라도 된 양 폼을 잡았다.

요즘 애들이야 다들 탤런트 뺨치게 포즈도 잘 잡고 표정도 다양하게 사진을 찍지만 30년 전의 우리는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어서 카메라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기가 입은 옷보다 친구 것이 더 예뻐 보였는지 사진 한 장 찍고 서로 옷 바꿔 입고, 또 한 장 찍고 또 바꾸고.... 다들 독사진도 한 장씩 찍었는데 나는 사진 값 걱정에 끝내 못 찍었던 생각도 났다.

‘저런.... 내 앨범 속에 정작 내 독사진만 없네.’  

우리가 그때 한복을 입고 그리 들떠서 좋아하며 사진을 찍은 것은 요즘 애들이 머리에다 분홍 가발, 초록 가발을 쓰고 희한한 복장으로 사진을 찍는 거랑 비슷한 심리였을 것이다. 아무리 세월이 바뀌어도 인간의 발달심리는 거기서 거기로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증명해 보이는 사진 속의 그 아이들은 지금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그 아이들은 하나같이 내성적이고 남 앞에 좀처럼 나서지 못하는 축이었는데 무슨 맘을 먹고 그렇게들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혼자서는 죽어도 못했을 불여우 짓을 친구들과 어울린 바람에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어지간한 일로는 들뜨지도 설레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되어 버린 내게도 그렇게 재잘대며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찡하고 막연한 그리움에 눈물이 핑 돈다.

잊고 있던 내 유년의 기억은 그렇게 몇 조각 기억의 편린 덕분에 확연히 윤곽을 드러내었고 마침내 나를 30년 전으로 회귀시켰다. 마치 비어있던 퍼즐 판의 한 귀퉁이가 마침내 제 조각을 찾아 밑그림을 맞춰가는 것처럼.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제1회 화랑문예전 수필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