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선운사, 저거 동백꽃

 

 

                                                                                       한원준

여기 선운사, 저거 동백꽃.

 수많은 감탄사로 나를 현혹했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 이곳에 들어섰다. 그러나 여긴 절이 아니다. 내게 절이란 게으른 거북처럼 조용하고 느려, 생활과 부대낌에 흔들려 흙탕물 일어나듯 부옇게 흐려진 마음이 깨끗이 가라앉는 곳이다.

관광지가 되어버린 이곳엔 새로운 절집을 세우느라 공사판이 벌어졌고, 요란한 전기톱 소음과 피어오른 먼지가 바람에 날린다. 더더욱 상업적인 땡초들이 절집 지붕에 올릴 기와에 바가지 같은 요금을 붙였다. 부적을 고르듯 돈을 내고 소원을 사려는 사람들의 이름이 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여기 선운사, 저거 동백꽃.

절, 아니 관광지 뒤쪽에 동백숲이 있대서, 반가운 마음에 걸음을 빨리 했다. 그러나 천막을 두른 공사중인 건물과 담장, 가로막은 쇠막대로 가까이하기가 쉽지 않았다. 멀리 빙 돌아가 동백 앞에 섰다. 그래, 저거 동백꽃.   

어제부터 미친 듯이 불어댄 바람에 붉은 꽃들이 흙먼지 위에 떨어져 더러워 졌다. 올려본 굵고 거친 나무는 예쁜 정원수가 아니었다. 500년, 600년 묵은 나무는 검고 두꺼운 껍질이 더껑이처럼 흉하고 뒤틀어져 있어서 냄새나는 고집쟁이 노인처럼 가까이 하기엔 두려웠다.

여기 선운사, 저거 동백꽃.  

내가 본 동백꽃들은 화사하고 눈이 부실만큼 선명한 붉은 꽃에 황금빛 꽃술을 머금고 있었다. 그래서 ‘참 고귀한 꽃이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건 내가 알고 있는 동백이 아니다. 작고 초라해 차라리... ...

불만인 내 눈을 보고 곁에 선 친구는 ‘토종이라 그래’ 위로처럼 말을 던진다.

누군가의 시에서처럼 동백은 순결하고 화려하고 안타까운 젊음이어야 하는데, 내 눈에는 늙은 노인의 주름지고 늘어진 피부처럼 보기 흉하다. 노인의 눈곱 낀 눈처럼 차라리 슬프다.

두껍고 짙푸른 잎들 뒤에서 작고 빨간 꽃이 하나 바람에 흔들린다. 붉게 내민 꽃봉오리 위에는 지난해 달린 열매가 시커멓게 말라 헤벌어져선 고집스레 바람의 흔들림에 저항한다. 마치 곰팡이처럼, 버섯처럼 불결한 느낌이 들어 한 걸음 물러선다.

관광객과 수학여행 온 시끄러운 아이들이 함부로 내뱉는 소음에 늙은 나무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제 발아래 그늘을 더욱 어둡게 만든다.

언젠가 몇 줄의 못된 말로 나를 감동시킨 시인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 지금, 그 시인의 말을 따라 여기가지 왔는데, 늙은 시인의 감탄사와는 너무 달라진 여기 선운사, 저거 동백꽃.

기념품을 파는 가게에는 설악산에, 속리산에 있는 똑 같은 물건들을 팔고, 연인과 같이 온 남자는 기념이라고 작은 동백꽃이 하나 달린 가지를 꺾어 들었다. 그리고 이미 피곤하고 따분해 칭얼대며 엄마의 손에 끌려가는 아이.

주위를 둘러보다 멈춘다. 행여 늙은 시인을 감동시켰던 풍경이 또 있을까 했던 마음이 우습다. 괜히 발이 아프고 걸음에 힘이 없다.

젠장, 여기 선운사, 저거 동백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