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구민정

연초부터 애경사가 연줄이다. 집안 어르신의 칠순잔치를 앞두고 있는데, 이제 갓 사십 중반인 남자의 부음(訃音)이 날아든다. 퇴근길에 귀가 중이던 지인이 병원응급실에 주검으로 누워있다는 소식이다. 그의 가족뿐만 아니라 주위사람들은 갑작스런 소식에 망연자실했다. 한 평생을 무탈하게 살아 온 어르신의 축하연을 준비하는 마당에, 한창 일해야 할 한 가장의 빈자리가 허탈할 뿐이다. 사람이 태어나 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나 대부분 사람들은 예고 없는 이별(離別) 앞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이별연습을 한다. 그런데도 이별 앞에선 늘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삶을 통해 만나고 헤어지는 크고 작은 이별 속엔 스스로 쌓은 마음의 벽에 갇혀 외면하고 사는 이별이 있고,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해 평생 마음에 품고 사는 이별이 있다. 그런가하면 사별처럼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가슴 아픈 이별도 있다.

영원한 이별처럼 아픈 일이 또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배우자와의 사별(死別)로 인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 다음이 자식을 잃은 슬픔이요, 부모 순이다. 연로하신 노모를 여의고도 자식으로서 못 다한 효도로 상심해하는 측근이 있는데, 홀연히 남편을 잃은 여인의 심정은 오죽할까.

몇 해 전 구조조정으로 이직을 한 그는, 불철주야 노력하여 작은 사업장의 책임자가 되었다. 그렇게 굴곡의 세월을 한시름 놓았나싶었는데 비명을 달리하여 주위사람을 당혹스럽게 했다. 주일마다 부부 동반하여 산을 찾던 날, 탁주 한 사발을 들이키며 취중에 내뱉던 그의 말이 귓가에 맴돌 뿐이다. “인명은 재천인 것이여.” 무심코 흘려듣던 그 말이 남겨진 가족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곰씹으며 삶의 무게를 안을 뿐이다.

그런데 그의 장례를 치르기가 바쁘게 떠난 사람을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사업장의 공금을 횡령하여 그의 부인이 거액을 변상했다는 것이다. 평소 그를 아는 측근들은 소문을 못 미더워하였지만, 떠난 사람에 대한 뒷이야기는 소리 소문 없이 나돌았다.

그의 죽음과 때를 같이 하여 어느 방송인의 죽음이 화제다. 그의 장례식에 대규모의 인파가 모여들어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다. 꿈을 좇으며 무명시절 고락(苦樂)을 함께 했던 동료들의 슬픔이 한껏 고조되어 침울한 분위기다. 그런 와중에 그가 평소 해오던 선행(善行)이 뉴스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을 얻고 있다. 감동적인 미담(美談)이 그가 떠난 빈자리를 아름답게 투영(投影)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엔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그 사람의 정신적인 면이라든가, 어떤 상징이 되는 물건을 보며 지난 기억을 회상하게 하기도 한다. 그 방송인은 선행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한몫을 한 반면, 지인의 미미한 실수는 눈덩이처럼 부풀려져 그에게 모든 책임이 전가되었다. 그래서 평소 그에 대한 좋은 평판마저 실추되었다.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으로 인하여 생긴 떠난 사람의 불명예는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신년벽두부터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떠안는다. 이별이 크던 작던 지금 삶 속에서 내 그림자, 내 흔적은 다른 이에게 어떤 빛깔, 어떤 느낌으로 남겨 지고 있는 건지 고민하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행하던 언행이 타인에게 어떻게 각인되고 있을지 한편으로 자못 궁금하다. 이미 떠나 온 자리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뒤늦게 수습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평소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별이 아프기만 한 것일까. 우리는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는 없을 것일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듯한 삶을 산다면,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또한 어느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난 적도, 결코 죽은 적도 없으며 잠시 이 세상을 방문한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별이란 것이 그리 힘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죽음이란, 산자와 죽은 자와의 이별이 아니다. 이는 곧 삶과 죽음에 대한 고통으로부터 해탈할 것을 말한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생들의 마지막 수업 즈음이면, 자신의 비문에 새길 글귀와 유서를 미리 써보도록 권하고 있다. 학생들은 제법 진지하게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다. 또 한편으론 삶을 성찰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반복과정을 통해 행여 짧은 삶을 선고 받은 사람들은 그들 나름의 이별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며, 한 치 앞을 모르고 살고 있는 우리들 또한 갑작스런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편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 속에 소중한 만남을 만들어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채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계간수필>로 등단(2003년). 군포여성문학회 동인. 시문회 회원.

<빈혈로 흘러내리는 달빛> 외 다수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