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우체국

 

 

                                                                                       鄭鎬暻

‘우체통이 있는 마을 풍경’이니 ‘빨간 우체통’ 혹은 ‘반가운 우체부 아저씨’ 등의 수필 제목을 더러 본다. 이는 컴퓨터가 세간에 널리 퍼지기 전에 엽서나 봉함편지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반가운 소식에 대한 생활적 사무적인 편리함에 보답하는 고마움의 표시이기보다 뭔가에 끌리는 그리움이나 기다림에 대한 포근한 정감에서 붙여진 글의 제목일 것이 분명하다. 봉투에 붙어 있는 우표 그림에 까치가 예쁜 모습으로 모양을 내고 앉아 있는 것을 보더라도 위의 제목들에서 보여 주려는 작가의 의도를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이런 정감 있는 편지글의 예를 한두 개만 들어보자.

 

그리 간 후 안부 몰라 하노라. 어찌들 있는다. 서울 각별한 기별 없고 도적은 물러가니 기꺼하노라. 나도 무사히 있노라. 다시곰 좋이 있거라.

정유(丁酉) 9월 20일

-선조대왕 친서-

 

수일 못 뵈었습니다. 가람 선생께서 난초를 보여 주시겠다고 22일(수) 오후 5시에 그 댁으로 형을 오시게 알려 드리라 하십니다. 그날 그 시에 모든 일 제쳐 놓고 오시오. 청향복욱(淸香馥郁)한 망년회가 될 듯하니 즐겁지 않으리까.

2일 지용 弟

-정지용이 이태준에게 보낸 편지-

 

앞의 옛날 편지글이나 뒤의 지금 편지글이나 할 것 없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한 정겨운 친근감이 손에 잡힐 듯하다.

그런데 요즘의 우편물은 이런 정감 있는 편지보다는 판에 박은 청첩장 아니면 행사 안내장 그리고 이런저런 신간서적의 기증본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로 속결 처분하는 타성적(惰性的) 편리함에 길들여진 때문인지, 인터넷에 올라 있는 젊은 사람들의 연예 정보를 비롯한 각종 기사에 대한 댓글이나 혹은 일상 주고받는 편지글을 보면 도대체 이건 어느 나라 말인지도 알 수 없는 은어(隱語)나 속어(俗語) 또는 욕설 투성이여서 어지럽고 불쾌하기까지 하다.

 

이 몇 년 사이에 나는 틈틈이 써서 문예지에 발표한 변변찮은 글들을 묶어 두 권의 수필집을 출간했다. 남들이 보면 보잘것없는 것들이지만, 내 딴에는 온 힘을 다한 나의 살점 같은 글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을 묶어 책을 만들기보다 더 어렵고 고역인 것이 기증본 발송이다. 하기야 나도 많은 기증본을 받았으니 그 고마움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세를 진 문인이나 친지들의 명단을 뽑아 책 속에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사인을 한 다음 봉투에 넣은, 한 짐의 책 봉투를 지고 우체국에 가면 100 권 이상일 경우 정가의 반액으로 할인해 준다는 선심을 내세워 지역 별로 우편번호를 그 자리에서 분류하라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고역을 치르고서 간신히 발송이 끝난 다음 며칠이 지나서 다시 점검해 보면 그냥 눈감아버릴 수 없는 문우들의 빠진 이름이 계속 불거져 나온다. 그래서 다시 누락된 여러분의 책봉투를 들고 우체국을 찾았더니 손님이 많아 한참을 기다리다 발송 담당 직원에게 내밀었더니 대뜸 하는 말인즉, 등기물이냐고 앞질러 물었다. 그래서 나는 보통우편이라고 말했더니 일반 서적 우편물은 요즘 하도 분실이 많아서 그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가 질 수 없다며 등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일반우편으로 하면 권당 1천 원 남짓이면 되는 것을 등기우편일 경우는 2천 원이 넘는다. 50대의 바싹 마른 담당 남자직원은 얼굴 표정 하나 변함이 없는 너무나도 당당한 말투였다. 지금까지 그런 공갈 협박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 며칠 사이에 돌변한 의외의 처사에 나는 놀라기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책봉투를 되받아 우체국을 나와 버렸다. 최근 우체국 수입을 올리기 위한 아이디어가 기껏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술책을 그들은 태연히 감행하고 있었다.

그 뒷날 나는 그 책봉투를 들고 인근의 다른 우체국을 찾아갔다. 소포 발송물이 많아서 정신없이 허덕이고 있는 우편물 창구의 젊은 담당직원을 바라보고 있던 지국장이 일을 도울 양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오더니 내 우편물을 받으면서 대뜸 등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빠른 등기’로 할 거냐고 했다. 그것도 내일 오전에 닿는 것과 오후에 닿는, 각각 요금이 다른 두 가지 종류가 있다면서 어느 쪽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도둑을 피하면 강도를 만난다’더니 어제 들른 우체국보다 한 술을 더 떴다. 다 떨어지고 찌그러진 늙은이쯤이야 하고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나는 머리가 멍해지면서 피가 위로 솟구쳤지만 꾹 참고 책을 다시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일한 수법의 이 처사는 한 곳이 아니고 보니 이는 틀림없이 수입을 올리기 위한 윗선의 지시에 따른, 이 관내 우체국의 공통한 비상대책이 아닌가 싶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우리 조상은 예로부터 「福德房」이라고 불러 오듯이 우체국도 반가운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는 의미에서 「까치방」이라고 불렀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겹고 친근한 관청이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인심은 마음 같지 않아서 위에 예로 든 따뜻하고 정겨운 편지글이 자꾸만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서투른 글씨와 문장이지만, 또박또박 저간의 소식을 적어 우체국을 찾다가 이런 일을 겪은 뒤로는 발걸음을 딱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싸늘한 컴퓨터 앞에 앉아 토닥토닥 암탉 모이 쪼아 먹는 시늉을 하며, 현대문명의 최첨단을 걷는 자랑스러운 문화인이 되어 명색의 이메일을 한두 줄 적어 보낸다.

가뜩이나 어지럽고 삭막한 세상에 어느 곳보다 친근해야 할 관청인 우체국마저 우리를 버렸으니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초등학교 시절 눈이 하얗게 쌓인 언덕길을 두툼한 편지가방을 메고 힘들게 걸어 오르던 우체부 아저씨의 뒷모습이 새삼 보고 싶으니, 나도 이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만큼 나이가 많이 들었나 보다.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여수수필문학회장.

저서 <까마귀야 까마귀야>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