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安貴順

친구 J를 보내는 장례식 날, 장지로 떠나는 운구차에서 한 여인이 내게 또 하나의 아픈 소식을 전했다. 느닷없이 친구를 보내며 심장까지 떨고 있는 내게,

“한샘씨 말이 예요.” 한다. 한샘씨가 누구냐고 물으니, “왜 있잖아요. 몇 해 전 J씨랑 경주에 갔던 뉴질랜드 분, 그분이 돌아가셨다네요.”  “아! 어쩌다가…, 정정해보였는데….” 알 수 없는 허탈감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죽음이란 누구나 안타까운 일이다.

한샘씨를 만난 것은 몇 해 전 봄날이다. 친구 J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외국손님을 모시고 안 선생 동네로 가는 길이니 점심식사 할 만한 곳을 좀 안내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서양인이라면 뷔페가 좋겠다며 식당을 알려주고 서둘러 나갔다.

뉴질랜드에서 큰 목장을 경영하는 분이란다. 어학연수 가는 한국학생들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분이라 그 댁에서 신세졌다는 학생 두 명이 함께 왔다. J는 서울의 지인에게서 손님이 부산에 머무르는 동안 잘 보살펴달라는 부탁을 받았단다. 그분의 첫인상은 허리에 총을 차고 말을 잡으면 황야를 질주하는 호쾌한 전사를 연상하지만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오래전에 부인과 사별하여 고독한 노년을 여행으로 달랜다고.  넓은 초원에 수많은 양 떼를 거느리면서도 인간의 정이 그리웠을까. 사람이 바글대는 한국이 좋다며 전국을 순회했고 부산은 마지막 코스라 들었다.

다음날 J는 친구내외분과 손님을 모시고 경주에 가자고 했다. 마침 그곳은 ‘세계문화엑스포’행사가 있었고, 만개한 벚꽃도 보고 싶어 따라나섰다. 전날 느닷없이 달려와 푸짐한 점심을 대접하고 말없이 사라졌던 여인이 또 나타났으니 반가웠던지 차에 오르자마자 대뜸 내게 “남편이 있느냐”고 물었다. 일행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짝이 있으면 동행하지 왜 혼자인가 하여 해본 말 일 텐데 모두들 엉뚱한 생각을 하며 웃은 셈이다. 나이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퍽 순박해보였다.  

엑스포 행사장을 둘러보다 마땅한 식당이 없어 한식집에 들렸다. 먹을 만한 반찬은 즐비했지만 맵고 짠 음식이라 서양인이 먹기에는 무리였는지, 젓가락 둘 곳을 몰라 쩔쩔매는 모습이다. 콩잎 짠지를 슬며시 그분 앞으로 밀었다. 별맛이야 있을까만 그래도 맵지는 않으니 먹을 만은 했는지 고맙다는 듯 싱긋 웃어 보였다.

경주는 온통 꽃밭이었다. 만개한 봄꽃들이 슬며시 눈길만 주어도 와르르 무너질 것 같다. 천년 역사 속에 묻혔던 애틋한 사랑이야기도 영상으로 피어나고, 몽롱한 햇살, 간지러운 봄바람도 한줄기 꽃이다. 초원목장의 노신사도 어찌 마음 한 자락 흔들리지 않을까. 그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건넨다. 안타깝게도 나는 영어가 절벽이고, 그는 한국어가 안 되니 서로가 벙어리 냉가슴이다. 창피하고 무안한 생각이 들어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한데 화장실에서 나오면 멀리서 지켜보다 슬며시 다가왔고, 어둑한 공연장을 나올 땐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서로 말이 통했다면 오히려 자연스레 어울릴 수도 있는 것을, 그냥 싱긋 웃었다. 그것도 꽃이었을까. 언어 소통이 안 되니 자꾸 상대의 표정을 살피고 눈치를 본다. 그것이 불경스레 맞춘 눈길이었을까. 화사한 꽃동산을 지나며 그분은 앞서가던 J를 불러 사진을 부탁한다. 지켜보는 일행들을 부르니 싱긋 웃으며 둘이서만 찍잔다. 간지러운 햇살이 목덜미를 휘어감아 등이 자꾸 스멀거린다.

벚꽃이 눈처럼 휘날리는 해안 길을 달려 귀가하는 길이다.  ‘함께 해서 즐거웠다’며 내릴 채비를 하니 황급히 종이를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주소와 연락처일 뿐인데 러브레터 건네듯 살며시 쥐어준다. 처음으로 잡아본 서양인의 손, 털이 보송하니 참 넓고 컸다. 못 알아 볼까봐 인쇄체로 또박또박 적은 글씨하며 간절한 눈빛이 꼭 한번 다녀가라는 마음을 읽었지만 봄이 지나면서 잊고 지냈다. 그 작은 쪽지가 마지막 프러포즈였을까.

장지로 향하는 운구차에서 그녀가 전해준 한샘씨 소식은 너무나 뜻밖이었다. 가끔 그분 목장에 드나드는 한국인들이 있었다. 그분들에게 한샘씨는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한국 여인 한분을 꼭 만나고 싶다. 부산의 J씨와 함께 경주에 갔던 여인, 그녀를 만날 수 있다면 아껴온 재물까지도 기꺼이 나누고 싶다.” 듣고 보니 가정이 있는 부인이라 오히려 누가될까.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었다는데 최근에 한샘씨의 부고를 들었단다.

경주에 함께 갔던 그녀는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도 자꾸 해실해실 웃는다. 눈먼 까마귀도 안돌아볼 늙은이에게 연모의 정이라니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냐는 눈치다. 하긴 무작정 짝사랑만 했지 받아본 기억은 별로 없으니 내게는 분명 과분한 선물이다. 그분이 세상 떠나면서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을 들었다.

“내가 없더라도 한국에서 손님이 오시거든 성의를 다해 모셔야한다.”  

소리 없이 꽃은 피고 지듯 사랑은 그렇게 바람처럼 스쳐갔다. 친구도 한샘씨도 떠나고 쓸쓸한 추억만 남은 날, 장지에서 돌아와 사진첩을 들추었다. 키가 멀쑥한 목동이 천진하게 웃고 있다.

 

 

<월간에세이>로 등단(92)

작품집:<夜來가 하는 말>외

부산수필문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