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 부는 남자

 

 

                                                                                             남윤원

그 남자에게서는 산 냄새가 났다.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있어서는 아니다. 비알 밭이 많은 이곳 홍천에서는 일을 하러 산 속으로 갈 때면 누구나 이런 차림으로 다닌다.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산 냄새는 나지 않는다.

내가 붓글씨를 쓰러 다닌 지 일 년쯤 지난 어느 봄날이었다. 우리 서예교실에 어떤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그 남자는 바로 나의 앞자리에 와 앉았다. 문화원에서 운영하는 이 서예반은 한문을 배우고 있다. 그런데 얼핏 쳐다보니 판본체의 한글을 쓰고 있다. 산 냄새를 풍기고 있는 이 사람도 그렇고 우리에게 한마디 해명도 없이 이 남자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도 이상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산 사나이와 낯도 익혀졌고 그저 눈인사를 하고 지내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번 볼 때 마다 산 냄새는 지워지지 않는다. 잘못된 나의 느낌일지 몰라도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 궁금증이 한계에 도달했던 어느 날 나는 살고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역시 그러했다.

홍천 읍내에서 동쪽으로 이십분쯤 들어가면 신봉리라는 산골 마을이 있다. 하루 세 번 운행되는 버스 종점에서 산 길 따라 올라가면 관음사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다. 그 암자 위에 여덟 평짜리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있다고 대답했다. 신봉리 골짜기는 계곡도 깊고 산세 또한 예쁘기로 이름 난 곳이다. 특히 그 암자는 혼자 살던 무녀가 세상을 뜬 후 그의 아들이 신당을 관음사라 고치고 스님 노릇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다.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곳이다. 기회다 싶어 나를 초대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다음 주 수업이 끝나고 함께 가자고 쾌히 승낙했다.

강변 주차장에 세워놓은 그의 차는 0.5톤짜리 미니 트럭이다. 운전석 옆에 한사람 앉을 수 있는 앙증맞은 차였다. 화양교를 건너 신봉리로 향했다. 절이 아니라 여염집 같은 자그마한 절집을 지나 큰 절의 조실스님이 거처 함직한 암자보다 높은 위치에 그의 집 컨테이너 박스가 보였다.

단풍 든 신봉리 산속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인적 없는 계곡 속의 가을은 쓸쓸했고 더 없이 적막했다. 붉게 물들어 가는 산속에서 이토록 호젓한 단풍놀이를 즐겨 보기는 평생 처음이다.

여덟 평짜리 직사각형의 박스 속은 혼자 살기에 불편함 없이 꾸며져 있다. 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오면 동서남북으로 몇 발자국씩만 돌아서면 침상, 책상, 주방 수납장이 한눈에 보이고 손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손 때 묻은 집안 물건들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산과도 잘 어울렸다.

화로에 참숯을 넣고 불을 피운다. 산속에서 불꽃 튀는 소리 엇갈리게 포개진 검은 숯 사이로 올라오는 주홍빛 불길이 도발적으로 느껴진다. 연기가 사라지고 불길이 올라오는 화덕에 석쇠를 올려놓고 고기를 굽는다. 풀을 베고 밭을 일군 손바닥만 한 텃밭에 상추, 쑥갓, 배추, 야채를 따서 깨끗이 씻은 야채와 고추장, 된장에 신선주가 나온다.

신선주란 그가 이것을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주는 사이 내가 지어준 이름이다. 겨울에 솔잎을 따서 설탕에 버무려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어 발효시킨 일종의 음료수다. 맑은 뜨물처럼 뽀얀 주스인데 약간의 알코올 성분도 있고 달콤하다. 기분 좋은 솔 향과 맛이 있다. 이토록 귀하고 맛있는 신선주를 마시면서 마음 한쪽은 춥고 서글퍼지고 그랬다. 여분의 화로 불에 칼국수를 끓인다. 국수 국물 끓는 소리 또한 슬펐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것도 물어보지 못했다. 그저 산 남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혼자 살기에 꼭 필요한 공간에서 자기 손으로 짜서 만든 가구만으로 순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산과 너무 어울려서 나는 말을 잃었던 것 같다.

식사 후 산길을 걸었다. 힘들지도 않고 고즈넉한 숲길이다. 끝없이 마냥 걷고 싶은 그런 길이다. 가끔씩 바위도 나타나고 졸졸 흐르는 물길도 만나지고 그랬다. 가람도 몇 개, 잣송이도 두서너 개 주었다. 인적 없는 산길은 또 다른 세상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나무들이 있고 물들지 못하는 바위도 있다. 단풍나무 밑에 넓은 바위가 있다. 그 산 사나이는 바위에 걸터앉아 배낭에서 무엇인가 꺼냈다. 대금이다. 청송곡을 들려주겠다며 음을 고른다.

흐느끼듯 흘러가다 격렬하게 고음으로 호소한다. 포기한 듯 저음으로 내려가다 잔잔하게 체념해 버린 듯 영혼을 울리는 가락이다. 지상의 모든 것을 초월한 천상의 소리다.

멀리서라도 이 청송곡을 듣고 고라니, 토끼, 새가 날아와 화답이라도 할 듯하다.

눈을 감고 대금을 불고 있는 이 산 남자는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는 슬프다. 멀리 허공으로 눈길을 돌렸다.

 

 

자유문학 수필추천 완료(1994)

율목문학상, 자유문학상 수상. 현재 자유문학부회장

저서 ‘소백산 물소리’

눈물 흘릴 권리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