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그 후

 

 

                                                                                          강금숙

익숙했던 풍경들이 모습을 바꾸면서 또 한 계절이 가고 있다. 하늘은 차고 떨어져 내린 잎들을 바람이 한 곳으로 몰고 간다. 저들도 본래의 자리인 뿌리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수필집을 낸 후,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수없이 들어차던 메일도 요란한 전화벨 소리도 끊긴 지 오래고, 거실 그득히 자태를 뽐내던 양란들도 구실을 다했는지 후줄근히 쳐져 있다. 익숙해져 있던 시각에서 벗어날 때 문득 본래의 모습이 보이는 것처럼 늘 그랬던 적요가 새삼스럽게 가을을 타듯 낯설게 느껴진다.

아주 오랜만에 떨리는 가슴이 되어본 아쉬움 때문일까. 조금은 낯설고 쑥스러웠던 경험이었지만, 행사를 치르고 난 뒤에 오는 뿌듯함과 후회가 뒤섞인 묘한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환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랄까.   

돌이켜보면, 내 삶을 팽팽한 탄력으로 지켜준 활력의 반은 수필이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늘 버겁고 모자람에 안타까웠으나 타성에 젖은 일상에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가져다주었으며 제대로 좋은 수필 한 편 써보고 싶은 꿈은 나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소망을 이루지도 못한 채 세월만 흘러 부족한 글들은 쌓여만 갔지만, 선뜻 그 글들을 외출시키기에는 주저함이 앞섰다. 너도나도 쉽게 책을 내는 요즘에 더불어 공해를 조성하는 일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출판을 결정하자 작업은 오히려 순조로웠다. 게다가 몰두할 일이 있다는 것은 진부한 일상에 활력까지 가져다주었다. 올해 따라 유난했던 더위도 힘든 줄 몰랐으며 다만 걱정스러웠던 것은 글에 대한 염려뿐이었다.

주변 작가들의 수필이나 증정본을 받아 읽으면서 눈물을 훔치고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하는 감탄과 부러움에 잠 못 이룬 적도 있었지만, 때론 의무감으로 읽으려 해도 뒤로 미루게 되는 경우 또한 없지 않았다. 혹여 내 책이 그 짝이 되면 어쩌나 하는 기우로 불안한 와중에 드디어 출간을 하게 된 것이다.

저자에게 하는 의례적인 찬사나 격려는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쉽게 안심을 하거나 감격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알듯 모를 듯 두렵기만 하던 결과가 칭찬 한 마디에 풀려버리는 마법 같은 순간이기도 했다. 미흡하게나마 이 책 한 권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소원했던 부모를 잠시 떠올린 독자가 있었다는 것은 감격이었다. 급물살에 떠밀리듯 괜스레 마음까지 들떴고, 살아오면서 만났던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도 싶었다. 비록 찰나적이나마 내게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해준 공통적인 글의 일부다. 독서량은 많으나 수필을 접하지 못했다는 어느 분의 글이다.

  

-지난 삶을 반추하는 생경한 독서 경험, 오랫동안 혹은 진지하게 사유할 수 없었던 감성과 의식의 경험이었습니다. 제게도 알츠하이머 초기 증상이신 85세의 어머님이 계십니다. 가끔은 우리를 놀라케 하시고, 슬프게 하시고, 때론 웃기시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제 읽은 수필집 《외출》이 생각났습니다. 특히 주말 온가족이 모여 식사하는 대목, 그렇게 전통을 만들어가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정겹게 느껴지더군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은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어머님을 뵈러 가자고 했습니다.

-특별한 기대 없이 읽기 시작한 수필집이 지루한 일상인 부산행을 뜻 깊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연세가 비슷한 제 어머니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최인호 작가의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외출’의 <수정하기 어려운 기도> 글이 엇갈리며 머리를 맴돌더군요. 아! 우리 어머니라고 아련한 추억이며 일상들이 없으셨을까마는 한 번이라도 어머니 말씀에 귀 기울여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싶어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어머님께 뜬금없이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물었습니다....(중략)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할 수 없는 자식 사랑과 부모 사랑의 원형, 날로 세상은 탁해지고 심성은 타산적으로 변해가도 부모와 자식에 대한 근원적인 연민과 배려는 우리들의 영원한 화두라는 것을 확인케 할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설렘과 흥분의 순간은 너무 짧았다. 그처럼 들떴던 기분은 잠시고 무언가 소중한 것을 놓쳐버린 듯 마음 한 편이 헛헛한 것은 왜일까. 가슴 속 어딘가가 뻥 뚫린 듯 허전하다. 책에 대한 긴장이 조금 풀렸다 해서 편안하게 안주하기에는 내 글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 의욕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다.

성글어져 빈 곳으로 남겨진 쓸쓸한 가을이 모든 것을 털어낸 지금의 내 심정과 같아서일까. 아니면 기대와 설렘이 있었기에 허전함은 당연한 순리일까. 되풀이되는 그저 그런 일상으로 돌아온 계절 앞에서 왕성하고 떠들썩했던 지난 여름을 되돌아본다. 목표가 있는 도정, 그것을 향해 도전하는 삶처럼 큰 기쁨은 없나보다.

설렘이 내가 겪을 몫이었다면 허전함도 내가 치를 삶의 일부일 것이다. 다시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가며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시작과 비상을 위해 마음을 추슬러야겠다.

적적하나 차고 청량한 바람이 나를 부추기고 지나간다.

 

 

1994년 창작수필, 2004년 에세이 21로 등단.

국제 소롭티미스트 한국협회 총재 역임. 산영수필문학회 회원.

저서: <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