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

 

 

                                                                                     김민숙

추수는 싱겁게 끝났다. 손으로 슬쩍 밀기만 해도 힘없이 넘어지는 배추의 뿌리를 잘라내는 것은 너무도 간단했다. 한 아름이나 되는 튼실한 놈을 길러낸 뿌리는 젖 빨린 후의 어미 가슴처럼 허한 몰골이었다. 한번 겨뤄보지도 않고 제 몸뚱이를 포기하는 그는 이제 또 다른 생명을 위한 밑거름으로 돌아갈 것이다. 비를 기다리고 잡초와 힘겨루기를 하고 벌레와 싸우던 한해의 노동을 마감하고 뿌리는 밭고랑 여기저기에 몸을 눕혔다.

지난봄에 친구의 소개로 농장주가 되었다. 농장이라야 열 평의 밭을 한  해 동안 빌리는 주말 농장이지만 스무 해가 넘게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우리가 흙을 손으로 어를 수 있다는 것은 여간한 설렘이 아니었다. 결혼 삼 년 만에 처음으로 집을 장만하고 남편의 이름을 새긴 문패를 대문에 달 때처럼 내 이름을 새긴 팻말을 밭둑에 세우는 일로도 나는 천 석지기는 된 듯했다. 게다가 지근한 거리라 마음만 먹으면 주중에도 한 번씩 들를 수 있어서 텃밭이나 진배없었다.

상치와 쑥갓, 배추, 무씨를 뿌리고 주중에도 몇 차례나 드나들며 싹이 트기를 재촉했다. 아직 바람 끝이 찬 봄날, 씨 뿌린지 두 주만에 실눈을 하고 땅을 뚫어지게 보노라니 잿빛 흙이 푸른 기운을 띠고 있었다. 연초록으로 부풀어 오르는 흙, 무심해 보이는 흙 속에서 생명의 저류를 느끼는 기운 같은 것, 씨앗이 힘차게 흙을 밀어내고 제 몸을 밀어 올리는 경이로움이었다.

하늘을 자주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장화, 호미, 물뿌리개가 전부인 농구를 챙기는 주말은 아침부터 마음이 바빴다. 맑은 공기 한 아름, 밝은 햇빛 한 줄기, 한 주 동안 이 녀석들은 또 얼마나 자랐을까 하는 기대로 마음은 집에서도 밭 언저리를 누볐다. 예쁘고 잘 자란 푸성귀는 친구와 친지에게 나누어 주고 우리 집 식탁에는 작고 벌레 먹은 잔챙이만 올라왔다. 여름 내내 푸른 잎만 먹어대는 나를 아이들은 제 엄마가 전생에 토끼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돈을 벌면 토끼가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넉넉한 놀이터를 마련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더위가 한 풀 꺾이고 나는 더욱 설레기 시작했다. 김장 배추를 심은 후 부터는 거짓말처럼 자라는 그 성장력에 갈 때마다 포만해서 돌아오곤 했다. 밭둑에 서서 한 주 동안 자란 녀석들을 눈으로 재어보고 남의 집 배추까지 죄다 둘러본 다음에야 둑을 내려섰다. 한눈에 휘익 둘러보아도 우리 배추가 단연 최고였다. 모종을 옮겨 심고 단 한 차례의 액체 살충제를 뿌렸을 뿐인데 그렇게 그악스럽다는 병충해도 우리 밭을 비껴갔다. 사랑을 많이 받은 놈이 병도 이기는 법이라는 말이 생각나서 볼 때마다 소리내어 칭찬하고 어루만졌다. 추수를 하면 어디까지 나누어 먹을지를 셈하는 것과 그들이 보낼 경탄도 계산에서 뺄 수 없는 재미였다.

추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몇몇 친구네 아파트 경비실 앞에 배추를 두 포기씩 부리고 챙겨 가라는 연락을 했다. 아침 운동을 함께하는 이웃 형님집 경비실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나누어 먹는 재미도 올해는 마지막이다 생각하니 안고 있는 배추에 새삼 힘이 들어간다. 연결된 인터폰으로 배추를 추수했는데 두고 가겠다고 했더니 마침 오전에 배추를 들였단다. 요즘은 먹을 식구가 없어서 김장도 많이 하지 않는다면서 정성만 받겠다는 것이다. 보물처럼 안고 온 배추를 되가지고 돌아서는데 온 몸의 근육이 일제히 굳는다. 검불이라도 바닥에 흘릴까 경계하는 듯 한 경비원의 눈빛에 새삼 주눅이 든다. 내게는 자식처럼 귀한 녀석인데 문전박대라니.

배추를 안고 아파트를 돌아 나오는데 입구에 배추를 잔뜩 실은 대형 트럭 앞에서 사람들이 배추를 고른다. 한 눈에 보기에도 우리 배추보다 월등히 커 보이는데 한 포기에 삼백 원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쩡쩡 울린다. 나는 싸움에서 진 아이처럼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나누어 주려던 남은 배추를 그냥 집으로 가져왔다. 퇴비를 하고, 시기를 놓칠까봐 해 저문 저녁까지 모종을 옮기고, 땅이 쩍쩍 갈라지는 뙤약볕 속에서 수 십번 길어 물을 주고 쓰다듬으며 가꾼 자식같은 배추 한 포기가 삼 백원이라니. 내 배추가 삼 백원의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나눠준 배추까지 되돌려 받고 싶었다. 한해 농사를 마감하면서 추수를 기다리던 설렘이 싸아한 파도가 되어 가슴 속으로 밀려왔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나는 늘 분주했다. 아이들이 공부를 곧잘 했고 학교 다녀오는 녀석들의 가방을 여는 내 손이 춤을 추었다. 누구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학반 어머니회원들은 나를 반장 대하듯 해서 우쭐하기도 했고 그들에게 점심으로 국수 값 정도를 지불하는 것 또한 힘나는 일이었다. 신문에서 대학 입시에 관한 정보들을 스크랩할 때엔 세월의 더디감이 아쉬웠다.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모의고사의 성적들에 일희일비하면서도 나는 늘 그날을 기다렸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을 뿐 영광은 내 아이의 몫으로 나는 황금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심정으로 추수를 기다렸다. 가끔씩은 별을 안은 꿈에 도취되어 버스 안에서도 이따금씩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입을 가리곤 했다. 수능 발표가 났을 때에야 나는 오랜 꿈 속에서 깨어났다. 당사자인 아이는 오히려 담담한데 그 사이에 결과가 좋았던 성적들만 취했던 나는 오랫동안 아이가 거두어 들인 추수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빈 밭둑에 서서 나는 지금 몹시 허기지다. 추수가 끝난 후의 빈 밭을 보는 것은 강렬한 사랑이 지나고 난 후의 공허로움이다.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기운을 얻는다는 채소밭은 발자국 끊긴 추운 겨울을 얼마나 시리게 보낼 것인지, 또 해가 지면 이 빈 밭에 서있는 내 이름을 매단 팻말은 어린아이처럼 얼마나 무서울 것인지. 싸늘한 바람에 덧난 상처자리가 다시금 아린다.

 

 

<계간수필>로 등단(2005년)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