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단풍잎 하나

 

 

                                                                                       구양근

낙엽의 계절이 오면 쓸쓸하다. 낙엽의 계절이 오면 슬프다. 낙엽의 계절이 오면 자기를 뒤돌아본다.

과연 내가 가고 있는 길은 옳은 길인가. 몸가짐을 바로하고 나목이 된 앙상한 가지를 바라본다. 뒷사람이 나를 심히 욕하고 있는 것을, 나는 그것도 모르고 줄곧 가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아침 운동 길은 낙엽과의 대화이다. 주황색, 노란색, 빨간색…. 아파트 담가의 나무에서 보도 위로 떨어진 낙엽이 예쁜 무지개 길을 이루고 있다. 발밑에 밟히는 낙엽의 감각도 다르다. 느티나무의 주황색은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노랑의 은행잎은 약간 미끄럽다. 단풍의 진빨강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다.

리기다소나무의 침엽이 바람에 휘날려 떨어질 때면 하늘에서 한바탕 난무가 벌어진다. 뒹굴며 춤추고 하늘로 솟구치고 옆으로 비행하다 낙하하며 수북이 양탄자를 깔아놓는다.

잎들은 수명이 모두 다르다. 일찍 나래를 접고 자신을 정리하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한껏 버티다가 한 잎씩 서서히 떨구는 나무도 있고, 한꺼번에 잎을 우수수 떨구고 마는 나무도 있다.

오랜 인연을 맺어오던 가지와 이별하고 몸을 허공으로 날리는 낙엽은 할일을 다하고 이제 속세를 초탈한 늙은 스님의 승무이려니.

대개의 나무는 잎이 크면 빨리 떨어지는 것 같다. 큰 오동나무 잎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수양버들은 가지와의 이별이 아쉬운 듯 오래오래 떨어질 줄을 모른다. 가지가 바람에 흩날리며 잎이 말라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마른 피라미 같은 잎을 모두 부지하며 버티고 휘청거린다.

그런가 하면 소나무, 향나무, 주목 같은 상록수는 아무리 눈보라가 쳐도 푸름을 자랑하며 변할 줄을 모른다. 지조가 굳어 감히 그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는 고고함이 있다.

나는 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 산을 오른다. 아내와 같이 구룡산, 청계산, 불곡산 같은 작은 산을 오르기도 하고 우리 과 졸업생들을 데리고 도봉산을 오르기도 하고, 혼자 수락산이나 소요산 같은 곳을 오르기도 한다. 산이 어느 때라고 좋지 않을 때가 있을까마는 가을의 산은 더욱더 감탄스럽다. 온 산이 붉게 물든 가을이면 “아, 아름다워라!” 탄성이 절로 나온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한없이 감사하다. 누가 자살을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길 막고 말리리라.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놔두고 어떻게 죽는단 말인가?”

나는 아침 운동 길에 하릴없이 빨간 단풍잎 하나를 주워 보았다. 순간 도모코가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

그 때 동경대학의 아카몽(赤門) 앞에 어느 기독교 단체의 본부가 있었다. 그 종교는 원조가 한국이다. 기독교가 일본에서만은 도저히 먹혀들어 가지 않는 곳인데 그 종교는 과감히 일본 전도에 나섰고, 그 본부를 일부러 동경 대학 앞에 차린 것이다. 대담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종교인구의 50%는 신교神敎이고, 40%는 불교이며, 나머지 10%가 기타 종교인데, 그중에서도 기독교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비하다. 신교라고 해보았자 별게 아니고 잡신을 믿는 귀신교를 말한다. 우리의 성황당 같은 신사神社가 일본에는 하늘의 별처럼 깔려 있다. 가히 사이비 종교의 세계 본부라 할 만한 곳이 일본이다.

불교 역시 거의 신교화된 것이고 스님은 공동묘지 관리인쯤으로 변모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곳에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짓이다. 그런데 그 종교는 그나마 일본 천재가 다 모였다는 동경대 아카몽 앞에 본부를 차리고 선교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처럼 머리 좋다는 동경대 학생들은 나와라. 나와 1:1로 토론해 보자!”

전도자는 대개 22~23세 정도의 젊은 여성이다. 말을 받아주면 캠퍼스 안에까지 따라 들어온다. 들어와서 섬돌 위에서라도, 공원 벤치나 식당에서라도 토론을 벌인다. 하늘나라를 설명한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설명한다.

아무리 지식이 있고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이라도 하늘나라는 모르는 법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하늘나라를 자기가 다 본 것처럼 소상히 설명한다. 반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나라가 없다고 하면 너무나 허전해서 있다고 인정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인데, 그 종교는 있다고 확신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현실처럼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접근했던 도모코도 22세쯤 되는 앳되고 예쁜 소녀였다.

“나는 한국 유학생입니다.”

“더욱 반갑습니다. 우리 교의 창시자 X선생님은 일본을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해외전도의 첫 나라로 선택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어느 날 불쑥 내 하숙집을 찾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간이 칠판이 들려져 있었다. 잠깐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하더니 칠판을 방에 걸어놓고 원리강의를 시작하였다. 나는 울며 겨자 먹는 식으로 뜻하지 않은 원리강의를 들어야 했다.

내가 여행을 떠나던 날은 꼭두새벽부터 우리 집 앞에 서 있었는지 문을 나서니 종이봉투를 안겨준다. 기차에서 열어보니 아직 온기가 식지도 않은 자기가 손수 준비한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여러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해도 나는 끝까지 거리를 두었고 한 번도 마음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어느 날은 단호히 거절하며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자기가 구원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도모코는 마지막으로 내게 성경을 안겨 주었다. 그것은 그녀가 보던 손때 묻은 성경이었다. 줄도 쳐져 있고 접혀 있는 페이지도 있었다. 겉장도 얼마나 낡았는지 종이로 씌우고 그 위에 다시 비닐종이를 입힌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선물을 받아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성경 안에 눌려 있던 빨간 단풍잎 하나이다. 그곳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구절을 기억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