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의 해와 달

 

 

                                                                                   강철수

중국 정부에서 전설 속의 지상낙원 샹그릴라의 실제 고장으로 인정했다는 티베트 고원지대, 그 미려한 풍광이 TV 화면 가득 펼쳐진다.

웅혼한 자태의 설산雪山을 배경으로 드넓은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과 소들, 뭉게구름 사이를 비집고 피어나는 도라지꽃 빛깔의 파란하늘, 함치르르한 햇살을 받으며 울긋불긋 맵시를 자랑하는 야생화……. 이렇듯 눈부시게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마치 이승이 아닌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한다.

진분홍색 머리띠와 앞치마를 두르고 겨울철 연료인 쇠똥을 줍고 있는 젊은 여인, 그녀의 무구한 얼굴에 어리는 미소가 싱그럽기 그지없다. 팔짝팔짝 뛰면서 그 뒤를 따르는 서너 살의 사내아이, 개구멍바지 뒤로 비어져 나온 동그스름한 엉덩이가 혹하리만큼 예쁘다. 검지로 톡 건드리면 까르르르, 웃음소리가 온 설산에 메아리치지 않을까.

자연과 사람의 온전한 어울림, 모자母子의 모습이 참으로 어여쁘고 행복해 보인다. 원래 샹그릴라는 이곳 티베트 말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의 뜻이라고 한다. 수려한 경관만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해와 달을 비롯한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과 함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야 진정한 지상낙원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만년설이 녹아 물보라를 일으키며 흐르는 계곡의 기슭을 따라 유목민들의 천막주택 몇 채가 서 있다. 출입문일까, 낡은 천막자락이 바람에 펄럭인다. 새까맣게 그을린 몇 점의 취사도구, 한쪽 구석에 대충 개켜져 있는 귀중중한 이부자리……. 전기와 수도를 비롯한 문명의 이기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태고적 삶이다.

“행복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직접 빚은 술을 이웃과 나누어 마시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니까요.”

리포터를 향한 천막집 주인 왕진라이의 대답은 시원시원 망설임이 없다. 문명의 편리가 전혀 없어도 오롯이 행복한 사람, 그의 마음속에는 자연을 사랑하고 이웃을 아끼는 정이 가득할 것이다. 온갖 호사를 누리며 사는 오늘날의 도시인들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저렇듯 자신 있게 ‘나는 행복하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신비의 땅, 은둔의 땅, 영혼의 안식처라고까지 찬탄을 받던 이곳 샹그릴라에도 개방의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다. 정부에서 관광특구로 지정한데다 4천 미터 고원 위를 달리는 칭짱 열차가 개통되면서, 오뉴월 소나기구름처럼 관광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천막주택이 구경거리가 되어 플래시 세례를 받는가 하면, 산 아래 마을에서는 기념품점이나 민박집을 차리는 유목민의 숫자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다. 외국 자본이 들어와 리조트를 짓고 있고 밤에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까지 번쩍인다.

불과 1, 2년 사이에 자급자족 수준이던 주민들의 소득이 100배 가까이 늘었는가 하면, 니당주라는 청년은 민박사업 10년 남짓 만에 큰돈을 벌어 호텔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많은 유목민들이 니당주처럼 큰 부자가 되기를 열망할 것이다. 그 뜨거운 열망은 머지않아 산 위쪽의 천막촌에까지 열병처럼 번져나가지 않을까.

평온하던 초원 위에 네 땅 내 땅 경계선의 울타리가 세워지고, 서로 자기 몫을 더 차지하려고 형제 같던 이웃끼리 다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던 아름다운 풍속도 시나브로 사위어 질 것이다.

시원스레 ‘행복하다’고 장담하던 왕진라이도 결국에는 관광객 상대의 무슨 가게를 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남에게 뒤질세라 밤낮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달리며, 열심히 돈을 벌어들일 것이다. 꾀죄죄하던 살림살이를 반지르르한 그릇이나 전자제품으로 바꾸고, 물방개처럼 반짝이는 자동차, 널찍한 아파트까지 장만하는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 왕진라이는 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는커녕 하늘 한번 쳐다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뛸지도 모른다. 그렇듯 내달릴 때는 자기에게로 들어오는 소득, 얻는 것만 보이고 자신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것, 잃어버리는 것은 낌새조차 채지 못할 것이다.

우리도 옛적에 ‘잘 살아 보자’는 주문을 외우면서 콩 튀듯 팥 튀듯 돌아칠 때는, 귀중한 그 무엇을 잃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었다. 푸근한 자연과 이웃의 따스함이 어떻게 삶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하는지,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문화유산과 전통이 무엇인지를 전혀 모르지 않았던가.

왕진라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이 되면 자신에게 행복을 안겨주던 마음속의 해와 달, 그리고 소중한 이웃이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또한 목숨처럼 애지중지, 부모형제간의 도리나 친구 사이의 신의마저 소홀히 한 채 모아들이고 지키려 했던 것,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보증해 주지는 못한다는 진실도 알게 될 것이다.

허탈하고 낭패스러운 마음,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 지난날 천막집의 즐겁고 흐뭇했던 삶이 못 견디게 그리울지도 모른다.

다른 유목민들도 돈벌이에 열중하느라 마음속의 자연과 이웃을 잃어버림으로써, 행복 또한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샹그릴라 라고 불리는 이곳은 더 이상 ‘내 마음 속의 해와 달’이 아니지 않는가.

TV를 끈다. 씁쓸한 느낌, 문명이 도리어 인류의 낙원을 허물어뜨리다니…….

 

 

<<에세이문학>>등단, <<에세이21>> 천료 2004년

수필집 <<사람들 사이에 길이 있다>> 3인 공저

대건상사 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