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박용화

하얀 햇살이 마당 한가운데로 쏟아지는 곳, 어머니가 계시는 집이다. 슬며시 현관문을 열고 둥지를 올려다본다. 텅 빈 둥지는 쓸쓸하기만 하다.

지난번에 왔을 적엔 제비 한 쌍이 둥지를 튼 게 신기했다. 그런데 얼마 전, 새끼 다섯 마리를 낳았단다. 새끼들에게 자리를 내어 준 제비 부부는 둥지 양 옆 귀퉁이에 걸터앉아 간신히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 제비 부부는 힘찬 날갯짓으로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날랐다. 멀리서 어미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면 아기제비들은 요란하게 울어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섯 마리가 동시에 입을 쫙쫙 벌렸다. 낯선 집 처마 밑에 그 작은 몸집으로 지푸라기를 물어다 나르고 흙을 물어 날라 둥지를 틀어 새끼를 낳고, 쉴 새 없이 먹이를 물어 나르는 제비를 보면 숙연해지곤 했다.

고개를 치켜들고 제비집을 올려다본다. 재재거리던 아기제비들은 이방인의 움직임에 신경이 쓰이는지 몸을 쏘옥 낮춘다. 그래도 난 계속 그 자리에 서서 목이 아프도록 아기 제비들을 올려다본다. 어느 결엔가 어미제비가 먹이를 물어오다 경계에 찬 몸짓으로 주변을 배회한다. 어서 비켜서야 하는데도 난 가만히 서 있다. 긴 망설임 끝에 어미제비는 새끼의 입 속에 먹이를 넣어주곤 재빨리 날아가 버린다. 몇 번의 반복으로 제비 부부는 둥지 앞에 서 있는 이방인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고개를 치켜든 채 아기제비들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녀석이 몸을 배배 틀더니 꼬리를 밖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의아스러워 계속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잠시 후, 꼬리 쪽으로 힘을 모으더니 하얀 배설물 한 덩이를 툭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일곱 마리의 제비가 쏟아 놓은 배설물은 하루가 다르게 바닥에 수북이 쌓여 갔다.

둥지 아래에 있는 블록 위에 올라서서 보드라운 아기제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떤 녀석은 머리에 힘을 꼿꼿하게 준다. 싫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다섯 마리를 돌아가며 다 쓰다듬고서야 블록에서 내려선다.

처음엔 그저 가까이서 바라만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어미제비가 물어다 준 먹잇감을 아기제비가 놓쳐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먹잇감은 잠자리였다. 팔을 들어 봤지만 키가 한참 모자랐다. 주위를 둘러보니 블록이 있었다. 블록 두 개를 쌓은 다음 떨어트린 잠자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아기제비의 입에 갖다 댔다. 녀석들은 입을 앙 다문 채다. 몇 번 시도하다 잠자리를 가만히 놓아두고 내려왔다. 그 후론 틈틈이 블록 위에 올라서서 아기제비들을 보는 즐거움에 푹 빠졌다.

얼마 뒤에는 아기제비들을 올려다보면서 갓난아기 어르듯 혀를 ‘똑똑’ 찼다. 그러기를 몇 차례, 아기 제비들은 어르는 소리만 들려도 반응을 보였다. 한 녀석은 가까이 다가오는 이방인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본다. 쓰다듬을 때 머리에 힘을 꼿꼿하게 주던 녀석은 어르는 소리만 들려도 곧바로 몸을 움츠린다. 눈까지 꼭 감고서.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는 녀석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아기제비들로 둥지는 요란법석이었다. 얼마 뒤부터 제비 부부는 아예 다른 곳에서 잠을 자는지 먹이를 물어 나르는 모습만 볼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제비 둥지를 올려다보았다. 둥지에 가득 차 있어야 할 제비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가슴이 퀭하니 뚫렸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다섯 마리의 아기제비들이 나타나 마당 위에서 빙빙 돌았다. 아기제비들이 환한 햇살을 받으며 첫 비행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빙빙 돌다가 둥지에 앉기를 몇 번 반복하더니 이번엔 전선줄에 앉았다.

전선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기제비들에게 다가가 예의 어르는 소리를 냈다. 아기제비들은 놀라지도 날아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멀뚱멀뚱한 표정만 짓는다. 손만 뻗으면 닿을 곳까지 다가서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제비 부부에게도 어르는 소리를 내며 다가가 보았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휙 날아가 버렸다.

마음은 하나라던가. 가끔 이곳에 오면 ‘먹’이란 녀석한테 온통 마음을 쏟곤 했는데, 제비가 오고부턴 틈만 나면 제비 둥지 앞을 서성이느라 ‘먹’한텐 마음이 가지 않았다. ‘먹’은 어찌나 식성이 좋은지 늘 껄떡대는 통에 먹보라고 동생이 지어준 이름의 약자다. 이름하곤 어울리지 않는 작고 우아한 포메라이언 강아지인 ‘먹’은 애교도 많고 말을 잘 알아들어 관심이 절로 갔었다. ‘먹’은 아파트에 사는 동생네가 키우다 자주 짖는 통에 시골로 데려온 지 1년여. 가끔 동생이 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 흥분으로 인한 경련을 일으키며 동생을 졸졸 따라다니는 ‘먹’. 처음 한동안은 동생이 타고 온 차가 떠나면 한참을 뒤따라가다 숨을 헐떡이며 돌아오곤 했단다. ‘먹’의 전 주인에 대한 애틋함은 주인이 바뀌면서 받았을 상처다. 잠시 머물다 떠나갈 내 빈자리에 행여 어떤 상처가 남지 않을까 조바심이 인다.

또다시 날이 밝았다. 습관처럼 둥지를 올려다봤지만 텅 비어 있다. 처음 그날처럼 다시 오겠거니,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영영 떠나버렸는지 제비 가족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훌쩍 가 버리다니…….

서운한 마음을 달래듯 혼자 중얼거렸다.

“제비는 귀소본능이 있어 내년에 다시 올 거야.”

지금도 ‘먹’은 창가에서 하염없이 밖을 내다본다. 동생을 기다리는 건 아닐까, 표정이 사뭇 심각하다. 산다는 것은 늘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맞이하는 것. 창으로 휙 새가 날아가는 그림자가 비치면 혹시 제비 가족이 돌아왔나 허공을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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