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와의 산책

 

 

                                                                                    김지연

레오를 데리고 자유공원 산책길에 나섰다. 따뜻한 햇살이 퍼져 있는 공원에는 나뭇가지마다 새움이 부풀었고 산수유가 여기저기 터지고 있었다.

“레오야, 옛날처럼 어디 또 뛰어 달아나봐.”

레오는 나를 빤히 올려다보면서 까만 머루알 같은 눈을 굴린다. 그 눈빛이 “저도 이제 눈치 차릴 나이는 됐거든요” 라고 하는 듯하다. 녀석은 내가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내 발치로 더욱 바싹 붙어서 걷는다.

레오는 초등학교 때 호주로 간 손녀가 키우다 두고 떠난 마르티스 종인 애완견이다. 냄새에 민감한 나는 동물을 싫어한다. 손녀는 떠나던 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내 품으로 안겨 들면서 말했다.

“할머니, 레오 잘 부탁해. 아빠에게 들었어. 할머니는 원래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그래도 레오는 이쁘잖아?”

“그래, 걱정하지 마. 가서 공부나 잘하고 와. 레오는 할머니가 맡아줄게.”

단단히 약속을 했다.

그렇게 해서 레오는 나에게 맡겨졌다. 며느리가 유학길에 오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자 나는 그들보다 혼자 남은 아들이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걱정하는 내게 아들은 자위하듯 말했다.

“어머니, 애들 공부할 동안 나도 ‘기러기 학교’에 입학한 거라 치고 공부나 하죠 뭐.”

어느덧 6년이 흘렀다.

손자들이 떠나던 그해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이 온 천지를 뒤덮은 어느 날 레오를 데리고 자유공원으로 나섰다.

뿌드득 뿌드득 기분 좋은 소리를 들으면서 레오와 함께 눈이 쌓인 길을 걸었다. 그런데 자유공원으로 들어설 즈음 갑자기 눈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오는 팔짝팔짝 뛰다가 목줄을 잡아채더니 쏟아지는 눈 속으로 달아났다. 엉겁결에 줄을 놓친 나는 당황하여 레오를 불렀다. 허둥지둥 녀석을 뒤따랐지만 아무리 뛰어도 잡을 수가 없었다.

하얀 레오가 하얀 눈 속으로 구르듯 하더니 가뭇없이 사라졌다. 게다가 점점 거세게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앞을 가렸다. 눈앞이 아찔했다. 순간, 레오를 간절히 부탁하던 손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나가던 청년에게 전화를 빌려서 집에 있는 아들에게 급히 연락했다.

“어머니, 너무 걱정 마세요. 그 놈이 약아서 오가는 산책 코스를 알고 있으니까 집으로 찾아올 겁니다. 눈 속에 뛰지 마시고 어머니가 넘어지시면 더 큰일이니까.”

아들은 짐짓 여유를 부렸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안심이 되었지만 온몸에 기운이 싸악 빠져 눈이 쌓인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눈발이 걷히기 시작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아닌게 아니라 레오는 벌써 돌아와 있었다. 아들이 연락을 받고 아파트 앞마당으로 내려갔더니 차 밑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더란다. 그때 레오는 사람으로 치자면 천방지축 철없는 나이였다.

호주로 떠난 아이들은 겨울방학에나 잠깐 돌아왔다. 그들이 돌아오면 온 집안이 왁자지껄하다. 한동안 집안에는 훈기가 돌고 사람 사는 집 같다. 그러다 방학이 끝날 무렵 다시 세 식구가 다 떠나 버리면 집은 다시 적막강산이다. 공항에서 세 식구를 배웅하고 돌아올 때면 아들의 얼굴을 나는 차마 마주 보지 못했다.

내년이면 아이들 둘 다 대학에 들어간다. 호주엔 대학생이 되면 더 이상 보호자가 그곳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제 곧 며느리는 돌아온다. 아들은 기쁜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어머니, 아득하던 기러기 학교도 내년이면 7년 만에 졸업이네요.”

참 멀고도 아득하던 세월이었다. 이제 며느리가 돌아오면 아들이 전화를 몇 시간씩 붙잡고 있는 모습을 보지 않게 될 것이고 전화를 끊고 나서 한쪽 어깨가 아프다던 말도 듣지 않게 될 것이다.

자유공원에는 풋풋한 봄 내음이 가득하다. 산수유 그늘에 빈 의자가 있어 그곳으로 가 앉았다. 레오는 내 발치에 앉아 졸고 있다. 까칠하게 변해버린 털이 안쓰럽다.

또 하나 삶의 간이역을 지나고 있다.

 

 

패션디자이너

2003. 에세이포럼 <책과 인생>, <자동판매기> 등단

에세이스트 회원, 과천수필동인회 회장.